“포맷 비즈니스로 한류 물레방아 돌려야죠”…K콘텐트 포맷수출하는 황진우 대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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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간 인기리에 방영 중인 연애 예능 프로그램 '나는 솔로'의 포맷 수출용 영상. 사진 썸씽스페셜

3년간 인기리에 방영 중인 연애 예능 프로그램 '나는 솔로'의 포맷 수출용 영상. 사진 썸씽스페셜

젊은 남녀 10명이 한 마을에 모인다. 실명을 제외한 자기소개를 진행한다. 나이와 직업은 물론 지역, 취미, 자녀 계획 등 소개는 세부적일수록 좋다. 합숙하며 11가지 정도의 미션을 진행한다. 여타 연애 예능과 차별화된 점이라면, 참가자들이 출연 시점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결혼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3년간 방송되며 화제 몰이 중인 연애 예능 프로그램 ‘나는 솔로’(ENA·SBS Plus)의 제작 포인트다. 짝짓기 예능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은 만국 공통이다. 해외 방송사와 제작사들이 '나는 솔로'의 포맷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지난 달부터 이 프로그램의 포맷 수출을 진행하고 있는 곳은 포맷 비즈니스 전문 스타트업 썸씽스페셜(Something Special)이다.
기획부터 유통·마케팅, 제작, IP(지적 재산) 관리까지 전 과정에 걸쳐 국내 콘텐트의 해외 현지화를 돕고, 역으로 글로벌 IP를 한국 또는 아시아로 가져와 로컬 버전으로 제작하기도 한다.

포맷 비즈니스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달은 황진우(48) 대표는 4년 전 썸씽스페셜을 차리고, 이같은 사업에 뛰어들었다. 지난달 25일 서울 강서구의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 하나가 잘 되는 것보다 IP를 활용한 포맷 비즈니스의 성공이 더 큰 성과를 부른다. 전 세계적으로 콘텐트가 소비되는 요즘 같은 때엔 포맷을 상품화하는 데 큰 관심을 기울여 K-드라마, K-예능의 흐름이 끊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맷수출기업 썸씽스페셜 황진우 대표. 사진 썸씽스페셜

포맷수출기업 썸씽스페셜 황진우 대표. 사진 썸씽스페셜

황 대표는 포맷을 레시피(recipe, 요리법)에 비유했다. 그는 “유명 요리사의 레시피가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방법을 담고 있는 것처럼 좋은 콘텐트를 만드는 노하우를 담은 것이 포맷”이라면서 “프로그램·영화·소설 등 유명 IP나 창작자의 아이디어를 레시피처럼 체계화하고, 플랫폼·언어 등 국가별 상황에 맞게 재구성해서 새로운 콘텐트로 재생산할 수 있도록 돕는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CJ ENM에서 PD 생활을 하던 그가 포맷 비즈니스를 접하게 된 건 2010년 tvN 기획개발팀장을 맡으면서부터다. “당시만 해도 한국엔 포맷 수출이라는 개념은 없었고, 'SNL'이나 '마스터셰프'처럼 포맷을 수입해 한국판을 만드는 일을 주로 진행했다. 2년 정도 해외 프로그램을 국내로 가져와 현지화하는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리 프로그램을 포맷화해 수출하는 사업으로 연결됐다”고 황 대표는 말했다. 포맷 수출 전담 인력 등을 꾸렸고, 인기 예능 ‘꽃보다 할배’ 포맷을 17개국에 판매하는 등 성과를 냈다.

하지만 포맷 수출을 위한 국내 방송 사업자들의 인식과 준비는 미진했다. 그 배경엔 “중국 시장에 대한 높은 의존도가 깔려 있었다”고 황 대표는 지적했다. “2015년 하반기 기준 방송사 프라임 타임(주요 시간대)의 80%에 해당하는 프로그램을 중국에서 수입했을 정도로 중국 시장은 국내 프로그램을 닥치는 대로 사들였다. 한국의 프로그램 수출은 중국이란 한 국가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가만히 있어도 팔리니 굳이 포맷 사업을 위한 전문 인력이나 체계를 마련할 생각은 하지 않았고, 중국의 한한령(한류 제한 조치) 이후 900억원대였던 중국 시장의 규모가 순식간에 100억원대로 추락했다”고 덧붙였다.

썸씽스페셜에서 자체 개발한 음악 게임 프로그램 '더 비트박스'(The Beat Box). 사진 썸씽스페셜

썸씽스페셜에서 자체 개발한 음악 게임 프로그램 '더 비트박스'(The Beat Box). 사진 썸씽스페셜

“이제 해외 시장에 K-콘텐트를 직접 어필(appeal)해야 할 때입니다.”
황 대표는 “한국의 포맷과 콘텐트에 대한 해외 수요는 높지만, 여전히 국내 방송사업자들은 완성된 프로그램을 판매할 생각만 하고 IP를 상품화해서 적극적으로 제안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한국 드라마가 비싸다는 이미지가 강한데, 출연료나 제작비를 높여서 일시적인 화제작을 만드는 것보다 완성된 IP 비즈니스 모델을 짜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면서다.

그는 포맷을 통해 국내보다 해외에서 성과를 냈던 사례로 자체 개발한 오리지널 예능 ‘더 비트 박스’를 들었다. 이 프로그램은 국내에서 방송되기도 전에 해외로 포맷이 수출돼 제작됐고, 네덜란드 지상파에서 자체 목표 시청률인 18%보다 4%p 높은 22%를 기록했다. 2022년 12월부터 두 달 간 MBN에서 방영했던 예능 ‘배틀 인 더 박스’(Battle In The Box)는 국내 방송 전 영국·미국 등 23개국에 포맷 수출이 성사됐다.

황 대표는 "글로벌 OTT 등은 포맷을 기반으로 콘텐트를 확장하고 있다"면서 "보편성의 기반 위에 각국의 니즈(needs)를 충족하는 포맷 개발에 힘쓴다면, K-콘텐트의 새로운 흐름이 시작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물은 한 번 흘러가면 끝이지만, 물레방아는 계속 순환하며 에너지를 만들어내죠. 포맷 사업 역시 꾸준히 새로운 사업 모델을 개발하고 전문 인력·수익 다각화 구조를 만든다면, 한류의 물레방아가 가능해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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