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광하고 전시하고…엉덩이가 뭐길래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88호 24면

엉덩이즘

엉덩이즘

엉덩이즘
헤더 라드케 지음
박다솜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미국 대중문화매체들은 엉덩이가 대세로 떠오른 2014년을 ‘엉덩이의 해’로 명명했다. 킴 카다시안의 ‘페이퍼’ 등 잡지들, 인스타그램, 빌보드 차트, 미국 내 성형외과 등 모두가 엉덩이 타령이었다. ‘브라질 엉덩이 리프트(BBL)’라는 미용 성형수술 횟수가 급증했다. 둥글고 빵빵한 카다시안 스타일 엉덩이를 만드는 비결을 알려주겠다고 약속하는 잡지도 있었다.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에서 엉덩이는 남들에게 공유할 수 있는 상품으로 등장했다. 엉덩이(butt)와 셀피(selfie)의 합성어인 벨피(belfie)를 인스타그램에 올릴 때마다 팔로워가 늘고 이는 광고 제의, 피트니스 고객 증가 등으로 이어져 수입이 짭짤해졌다. 대중음악 업계도 엉덩이 특수에 올라탔다. 제니퍼 로페즈와 비욘세도 ‘엉덩이의 해’에 편승했다.

저자는 잘 발달한 엉덩이는 다른 동물에게서 보기 힘든 인간 고유의 특질이라고 전한다. [GettyImagesBank]

저자는 잘 발달한 엉덩이는 다른 동물에게서 보기 힘든 인간 고유의 특질이라고 전한다. [GettyImagesBank]

엉덩이가 뭐길래 도대체 사람들은 신체의 한 부위에 이렇게 열광하는가. 큐레이터 출신의 저널리스트인 헤더 라드케가 지은  『엉덩이즘』(원제 Butts)이 엉덩이에 관한 모든 것을 파헤쳤다. 엉덩이와 관련된 문화사 지식을 깨알같이 모으고 각계 인사들의 생생한 인터뷰를 곁들여 멋들어진 글솜씨로 빚어냈다.

약 190만 년 전 아프리카 초원 사바나 지역에 살았던 최초의 엉덩이 달린 고인류 호모 에렉투스는 두 발로 서서 걷기도, 달리기도 했다. 양쪽 골반 위에는 불룩 튀어나온 큰볼기근이 달려 둥글고 강한 엉덩이를 지탱해 주었다. 잘 발달된 엉덩이는 다른 동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인간 고유의 특질이다. 임신과 수유 등에 지방이 더 많이 필요한 여성은 일반적으로 남성보다 엉덩이와 허벅지, 가슴 등에 지방을 더 많이 저장한다. 그래서 ‘여성적’이라고 해석되는 신체 곡선이 발달했다는 학설이 있다. 이러한 연유로 특히 여성의 엉덩이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주목의 대상이 돼 왔다.

엉덩이와 관련해 가장 쇼킹한 대상은 ‘호텐토트의 비너스’라 불렸던 아프리카 코이족 여성 세라 바트먼이다. 노예로 팔려간 바트먼은 19세기 초 영국 런던 피커딜리와 맨체스터, 프랑스 파리 등에서 유달리 큰 엉덩이와 신체를 관객들에게 드러내는 공연을 했다. 사망한 뒤에는 파리의 조르주 퀴비에 박물관, 오르세미술관 등에 그의 신체가 전시되는 기가 막힌 운명을 맞기도 한다.

라드케가 지은 이 책에는 이 밖에도 여러 가지 엉덩이 에피소드들이 다양하게 담겨 있다.  버슬(bustle)은 19세기 후반 유행한 일종의 여성용 ‘인공 엉덩이’ 속옷이었다. 엉덩이를 강조하기 위해 허리에 묶는 아코디언 형태의 틀이었다. 20세기 초  패션 디자이너 코코 샤넬과 폴 푸아레는 코르셋과 버슬을 버리고 몸의 곡선을 강조하지 않는 간편한 패션을 선보였다. 일러스트레이터 고든 콘웨이는 엉덩이가 없고 호리호리한 여성상을 그려 냈으며 신여성 ‘플래퍼’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2차 대전 후 대규모 생산 기성복 시대엔 날씬하면서도 적당히 볼륨감이 있는 몸매의 소유자였던 너태샤 와그너가 패션계의 표준모델로 각광받았다.

1980~90년대엔 배우 제인 폰다와 피트니스 사업가 그레그 스미시가 에어로빅으로 단련하는 ‘강철 엉덩이’ 시대를 풍미했다. 반면 속옷 캘빈 클라인 모델로 유명한 케이트 모스는 깡마른 몸, 시크하고 중성적인 느낌, 얼음처럼 싸늘하고 무관심한 분위기로 90년대 패션을 주도했다. 섹스심벌 제니퍼 로페즈는 90년대 말 큰 엉덩이를 부각시킨 전략이 주효해 대박 났다. 패리스 힐튼의 친구그룹으로 출발했던 킴 카다시안은 2007년 섹스 테이프 유출 사건 후 본격적으로 엉덩이를 내세워 성공가도를 달렸다. 지금도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는 허벅지 뒤쪽 근육과 엉덩이 근육을 위아래로 흔들며 엉덩이 살을 터는 춤인 트워킹(twerking) 열풍이 이어지고 있다.

이 책은 엉덩이라는 주제로 인종차별, 성차별, 페미니즘, 페티시 등 다양한 관점의 문제의식들을 두루두루 짚었다. 대중문화나 패션 등과 관련한 비즈니스 측면에서 보건, 비판적 시각으로 보건, 단순히 재미로 보건 엉덩이백과사전으로 독보적인 책이다. 팩트체크 차원에서라도 한 번쯤은 꼭 정독할 만한 가치가 차고도 넘치는 책이다.

한경환 자유기고가 khhan888@gmail.com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