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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여자에 4000달러 주면 평양 가" 이 말에 탈북 결심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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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4·10 총선 유일한 탈북민 당선인 박충권

강찬호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박충권 국민의미래 비례대표 당선인(38)은 4·10 총선 유일의 탈북민 당선인이다. 북한에서 엘리트만 갈 수 있는 국방종합대에 입학해 탄탄대로를 걷다 탈북한 뒤 서울대 공학박사와 대기업 연구원을 거쳐 국회에 입성했다. 북한 인권단체의 선전물이나 한국 드라마를 한 번도 본 적 없이, 자생적인 사고 끝에 단신 탈북한 점에서 삶의 궤적이 남다르다.

“국방대 학생조차 배고픔 달고 살아”

엘리트 꽃길 대신 탈북을 결심한 동기가 궁금합니다.
“국방대 3학년인 2005년 학생 간부가 됐어요. 소속 중대(학급) 80명의 사상교육을 지휘하는 요직이죠. 이 자리에 오르면 학내 보위부 지도원의 지도를 받는데, 이때 북 체제에 처음 의심을 품게 됐어요. 간부가 되자 지도원이 방으로 저를 불렀는데 시뻘건 글씨로 ‘우리의 생명’이라 적힌 액자가 붙어있는 등 분위기가 살벌했어요. ‘생명’이란 김일성 왕조를 뜻합니다. 지도원이 ‘네 중대 김○○ 학생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요. ‘괜찮은 아이’라고 답하자 ‘친구랑 술에 피를 타 마시며 의형제 맺자고 했다더라. 사상이 의심스러운 친구’라고 하더군요. 중대에 보위부 스파이들이 깔려있어 80명 전원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더라고요. 등골이 오싹했어요. 나중에 지도원과 친해져 술자리를 하면서 ‘누가 스파이냐’고 물으니 ‘1조엔 최○○, 2조엔 조××’ 식으로 귀띔해줘요. 다 착하고 말 없는 친구들이었으니 제가 얼마나 놀랐겠어요. 80명 중 8명, 10%가 스파이더라고요. 이러니 친구들 앞에서도 하고 싶은 말을 절대 못 하는 거예요  북한이 어떻게 사람을 통제하는지 그때 깨달았는데 이건 시작에 불과했어요.”

‘급우 중 10%가 보위부 스파이’ 알고 북 체제 회의 품어
‘노동당 간부 내연녀에 달러 줘야 평양 배치’ 듣고 경악
북, 고교생 해킹전사 양성…스위스 은행 해킹이 방학숙제
탈북자가 ‘배신자’ 소리 듣는 현실 깨려 국회 진출 결심

북한 국방종합대(현 김정은국방종합대)에서 재료공학을 전공한뒤 탈북한 박충권 당선인은 “미사일 전공자로서 나라의 안보가 우려돼 기업 연구원에서 국회의원으로 변신을 결단했다”고 했다. 김성룡 기자

북한 국방종합대(현 김정은국방종합대)에서 재료공학을 전공한뒤 탈북한 박충권 당선인은 “미사일 전공자로서 나라의 안보가 우려돼 기업 연구원에서 국회의원으로 변신을 결단했다”고 했다. 김성룡 기자

체제에 회의를 품게 한 계기가 이어진 건가요.
“그렇죠. 국방대에서 사상교육용 ‘노작’ 수업을 하는데, 김정일이 썼다는 ‘사회주의는 과학이다’ 논문을 공부해요. ‘사회주의는 전체주의·행정명령식·병영식’이란 서방의 비판을 반박하는 내용인데 읽어보니 ‘그 비판이 맞네’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람은 생각이 다 다른데 왜 유일사상을 강요하냐는 의심이 이어졌죠. 북한 당국은 또 남한의 ‘광우병 쇠고기’ 시위 소식을 전하면서 이명박 정부를 비난했어요. 그런데 저는 ‘남조선은 반정부 시위를 할 수 있고, 우리라면 앞뒤 안 가리고 먹을 미국산 쇠고기도 거부할 만큼 삶의 수준이 다른 나라네’란 생각이 들었죠. 북한은 배급 수준이 최고인 국방대 학생들조차 배고픔을 달고 살아요. 단백질은 한주에 두 번, 비지국·순두붓국이 전부고 고기는 명절에만 줘요. 인간의 바닥을 경험하죠. 이런 가운데 탈북을 결단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생깁니다.”
그 계기가 뭡니까.
“졸업을 앞둔 4학년 때였어요. 국방대 졸업생은 대개 출신 지역 군수공장에 배치돼요. 한데 다들 선망하는 평양에 배치되려면 돈을 써야 해요. 액수도 정해져 있어요. 전 그걸 몰랐죠. 어느 날 평양 고위층의 아들인 한 친구가 ‘충권아, 평양 가고 싶어?’ 하더니 ‘4000달러쯤을 예쁜 여자한테 주면 돼’라고 해요. ‘예쁜 여자가 누군데?’라고 물으니 ‘노동당 간부의 여자(첩)’란 거예요. 울분이 터졌어요. 그때까지 노동당만은 썩지 않았을 거라 믿었는데, 그 유일한 믿음마저 무너진 거죠. 이틀간 잠 못 자고 고민한 끝에 탈북을 결심했습니다.”
탈북을 실행한 과정이 궁금합니다.
“2007년 국방대 졸업 후 고향 함흥에 내려간 뒤 가족을 돌본다는 핑계로 군수공장에 안 가고, 장사를 해 돈을 벌었어요. 이 과정에서 알게 된 탈북 브로커를 1만 달러에 고용한 뒤 2009년 3월 북·중 국경 도시 무산에 잠입해 한 달간 은신했어요. 북한이 은하 2호 발사로 축제 분위기였던 그해 4월 10일 새벽 1시가 D-데이, H-아워였습니다. 브로커가 알선해준 두만강 변 한 집에 숨어있다 개구멍으로 강둑에 진입해 엎드려 있었죠. 근처에 숨어있던 브로커가 ‘가라!’고 속삭이는 순간 맨발로 강에 뛰어들었어요. 주변에 국경경비대 초소 2곳이 있었는데 브로커가 매수해둔 대원들이 근무를 개시한 직후 입수한 거죠. (왜 맨발입니까.) 신발 신으면 소리가 나 위험해요. 워낙 적막한 심야라, 물에 뛰어들 때 ‘텀벙!’하는 소리도 굉장히 크게 들려요. (수심은.)  키가 177㎝인데 머리 쳐들면 턱까지 잠길 정도였죠. 강에 얼음이 남았을 만큼 수온이 낮았지만, 워낙 긴장해 차갑다는 느낌도 안 들더군요. 사방이 칠흑이라 건너편이 안 보였지만 브로커 얘기대로 앞만 보고 직진하니, 10분쯤 만에 중국 땅이 나타나더군요. 맨발로 마구 뛰었어요. 나중에 보니 발이 피투성인데다 동상 직전이었어요. 숲이 나타나자 브로커가 준 번호로 휴대전화를 거니 중국 측 브로커가 나타나더군요. 조선족인 그를 따라 은신처에 도착하니 도시락을 주면서 ‘북에선 쌀밥 구경 못 했을 것’이라고 해요. 부끄러움과 분노가 치밀어 ‘사람 무시하나. 가져가라’고 소리 지르니 ‘미안하다’고 하더군요.”

중국 공안, 여권도 안 보고 “통과”

대한민국에는 어떻게 들어왔습니까.
“북한 사람으로 보이면 안 되니 중국 옷으로 갈아입은 뒤 인천행 크루즈가 운항하는 단둥까지 트럭으로 하루 넘게 달려 도착했어요. 마중 나온 한국인 브로커가 푸른색 대한민국 여권을 주더군요. 진짜 여권인데 다른 사람, 어떤 한국 여성의 여권이더라고요. 놀란 내 얼굴을 본 브로커가 ‘통과시켜주니 당당하게 내밀라’고 해요. 출국 게이트에서 중국 공안에 여권을 건네니 정말 얼굴도 안 보고 도장 쾅! 찍어 보내주더라고요. 한시름 놓고 오후 4시쯤 배를 탔지만, 배가 북한 바다를 빠져나가는 자정까지는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이튿날 아침 배가 인천항에 도착하자 브로커가 ‘경찰이 보이면 북에서 왔다고 하라’고 해요. 입국장에 들어가니 경관 2명이 있더군요. ‘북에서 왔습니다’고 하니 놀란 표정을 짓다 국정원 직원에 인계하더군요. 6일간 조사받았습니다. 북한 국방대에서 개발 중인 탄도미사일 현황과 미사일 관제 센터 위치 등 의미 있는 정보를 알려줬죠.”
성장사가 궁금합니다.
“할머니 손에 자라다가 10살 때부터 군인이자 노동당원인 아버지와 살았어요. 당시는 고난의 행군 시절이었죠. 뺨이 움푹 들어간 친구가 어느 날 학교에 나오지 않으면 아사한 거예요. 5~6세 꼬마들이 들판에서 풀 뜯어먹는 걸 보기도 했어요. 중학생 때는 1년 반 넘게 학교 안 가고 놀았어요. 겨울에 난로조차 못 땔 만큼 열악하니 누가 학교 갈 생각하겠어요. 저처럼 고난의 행군 시절 중·고교를 다닌 82년생~88년생이 북한에서 최저 학력 세대가 된 이유죠. 그러다 중학교 졸업이 다가오면서 아버지 강권으로 벼락치기 공부 끝에 고교에 입학한 뒤 열심히 공부해 전교 3등으로 졸업했어요. 1, 2등 친구들은 해커부대로 빠졌어요. 북한은 전국 고교에서 수석·차석자를 해커부대로 데려가 전문가로 키워요. 북한 해킹 능력이 세계 3~4위권인 이유예요. 그 친구들이 휴가차 귀향했을 때 ‘네 부대에서 뭐하니’라고 물었더니 ‘말하면 안 돼. 스위스 은행 계좌에 돈이 얼마나 있는지 알아내는 게 방학 숙제야’라고 하더군요. 저는 전교 3위라 김일성대 갈 생각을 했는데, 국방대 가면 ‘군수 분야 간부 0순위’란 친구 얘기 듣고 시험 쳐 입학했죠.”

“친북 세력 의정활동 감시할 것”

대한민국의 품에 안긴 뒤 청년 과학기술자가 됐는데요.
“서울대 화학과 한 교수님의 도움으로 공대 인턴 하다가, 대학원에서 재료공학 박사 학위를 땄습니다. 북한 국방대랑 수준차가 컸지만 밤잠을 줄여가며 공부한 끝에 1년 만에 수업을 따라잡았죠. 박사 딴 뒤에 현대제철 상무님을 만났는데 절 좋게 보셨는지 입사를 권유해 책임연구원으로 7년간 일했습니다. 자동차 변속기·기어 부품 개발 등 보람 있는 일을 했죠.”
국회의원이 된 경위는요.
“지난해 12월 국민의힘에서 ‘인재로 영입됐다’는 전화가 왔어요. 한참 고민하다 전 정부 시절 유화 일변도 대북 정책으로 약화된 나라 안보를 살리려면 국회에서 일해야 한다고 판단해 응낙했습니다. 의원 임기가 시작되면 1호 법안으로 이공계 지원 특별법 개정안을 낼 생각입니다.”
우리 정치권엔 탈북자를 ‘배신자’라 부르는 이들도 있습니다.
“전쟁 위협하고, 주민을 억압하는 북한 정권에 저항해 탈북한 사람이 왜 배신자입니까? 탈북 후 가장 큰 의문이 이렇게 풍요롭고 자유로운 대한민국에 친북을 외치는 이들이 있다는 거였죠. 이번 총선에서도 친북 논란이 야기되어 온 진보당이 3석을 확보했지 않습니까. 앞으로 친북 세력의 국회 진입과 의정 활동을 규제·감시하는 입법을 추진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