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시설만 골라 때린다…러-우크라 공격 전술 바뀌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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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27일(현지시간) 에너지 시설을 겨냥해 공격을 주고받았다. 러시아는 지난달 말부터 한달 동안 우크라이나 에너지 시설만 골라서 타격하고,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경제의 핵심인 석유·가스시설 공격에 집중하고 있다. 

러, 한달째 에너지 시설만 타격

지난 19일 러시아의 공격으로 파괴된 우크라이나 최대 민간 에너지 회사 DTEK 발전소의 터빈 홀 모습. AFP=연합뉴스

지난 19일 러시아의 공격으로 파괴된 우크라이나 최대 민간 에너지 회사 DTEK 발전소의 터빈 홀 모습. AFP=연합뉴스


로이터통신·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러시아는 이날 오전 우크라이나에 있는 화력발전소 4곳 등 주요 전력시설을 집중적으로 타격했다. 우크라이나 공군은 미사일 34기 중 21기를 격추했다고 밝혔으나 일부 에너지 기반시설이 타격을 입었다. 우크라이나 에너지부는 중부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주(州), 서부 르비우주, 이바노프란키우스크주 등 3개 지역 에너지 시설이 손상됐다고 밝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화상 연설에서 "러시아의 주요 표적은 에너지 부문과 전기·가스 시설이었는데, 특히 유럽연합(EU)에 안전하게 가스를 공급하는 데 중요한 시설이었다"고 말했다.

지난달 말부터 러시아는 공중과 해상의 고정밀 장거리 무기와 무인기(드론)를 사용해 우크라이나 에너지 시설만 공격하고 있다. 이로 인해 우크라이나 최대 민간 에너지회사 DTEK가 운영하는 발전시설의 80%가 파괴되고, 우크라이나 전역 곳곳에서 수백만 가구 이상이 전기 공급이 중단되는 등 전력 수급에 차질을 빚고 있다. 

우크라이나 에너지산업연구센터(EIRC) 올렉산드르 카르첸코 소장은 CNN에 "러시아의 공격 전략은 3월 말에 전환됐다"면서 "에너지 시설 몇 곳을 표적으로 삼고 미사일·드론을 동시에 동원해 집중 공격하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는 지난 2년간 추위를 무기로 삼기 위해 겨울에 우크라이나 에너지시설을 집중 타격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가 방공망으로 러시아 공격을 막아내면서 두 번의 겨울 위기를 넘겼다. 그런 와중에 러시아가 봄에 에너지 시설을 핵심 표적으로 삼아 우크라이나의 허를 찔렀다.

이에 대해 CNN은 러시아가 서방의 지원이 점점 줄어 우크라이나의 방공망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 올 때까지 기다린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우크라이나 에너지 싱크탱크 디시(DiXi)그룹의 올레나 파블렌코 대표는 "겨울이 지나간 후, 에너지 시설을 지키던 방공망 일부가 최전방으로 재배치됐을 것"이라면서 "이건 실수가 아니라 방공망이 부족한 상황에서 우선순위가 정해지면서 생긴 결과"라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는 파괴된 에너지 시설을 빨리 복구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러시아가 계속 집중 타격하면서 쉽지 않은 상황이다. 데니스 슈미할 우크라이나 총리는 "최근 러시아가 초래한 대규모 피해는 몇 주, 심지어 몇 달 안에 복구될 수 없다"며 국민에게 "전기를 아껴 써라"고 강조했다.

우크라, 러 석유·가스 시설 공격

러시아 소방관들이 지난 2월 15일 우크라이나의 공격으로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의 한 석유 저장소에 난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러시아 소방관들이 지난 2월 15일 우크라이나의 공격으로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의 한 석유 저장소에 난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우크라이나도 러시아의 석유·가스 시설을 공격하고 있다. 러시아 국방부는 27일 밤새 남서부 크라스노다르주에서 66대, 크림반도에서 2대 등 총 68대의 우크라이나 드론을 격추했다고 밝혔다. 베냐민 콘트라체프 크라스노다르 주지사는 "그들은 정유시설과 인프라 시설을 공격하려고 했다"며 "사상자와 심각한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NYT에 따르면 러시아 당국은 우크라이나의 자국 영토 공습을 부인하거나 축소하고 있지만, 석유·가스 시설에 대한 공격은 숨기기 어려운 상황이다. 영국 군사 정보기관은 러시아 정유시설이 최소 10% 중단된 것으로 추정했다. 이로 인해 러시아 정부는 국내 수요 충족과 가격 안정을 위해 지난달 1일부터 6개월간 휘발유 수출을 금지했다. 

우크라이나 관리들은 "러시아 국가 예산의 약 3분의 1이 석유·가스에서 나오므로, 이런 시설에 대한 공격은 러시아 전시 경제의 핵심을 공격하는 것"이라면서 "이로 인해 러시아의 전쟁 수행 능력을 약화시키길 원한다"고 전했다.  

미국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서로 에너지 시설을 공격하는 것이 양측의 더 큰 보복으로 이어지면, 세계 에너지 시장 가격을 상승시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고 NYT가 전했다. 

한편 러시아는 EU의 러시아산 액화천연가스(LNG) 제재가 유럽 산업에도 불리한 조치가 될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극복할 방법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로이터에 따르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27일 브리핑에서 "에너지 시장에서 러시아를 압박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면서 "새로운 EU의 제재는 미국에 도움이 될 것이며 유럽은 가스에 대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이러한 불법적인 장애물과 불공정 경쟁을 극복할 방법을 모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 25일 EU 소식통은 EU 집행위원회가 제14차 대(對)러시아 제재 패키지에 러시아산 LNG를 제재하는 내용을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EU가 LNG 제재를 고려하기는 처음이다. 러시아산 석탄과 원유는 이미 제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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