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 손맛 산채비빔밥·나물…3분 즉석요리로 담아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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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7호 21면

이택희의 맛따라기

산나물의 계절이다. 야생 산나물은 4월 중순~5월 초에 새싹이 먹기 좋게 자란다. 100년 전 요리책은 멧나물, 즉 산나물을 약재료·약풀이라고 설명했다. ‘단오 전 나물은 보약’이라고 전하는 말과 같다. 현대어로 옮기면 이렇다.

“멧나물은 약간 삶아 빛이 연두색이 나는 것이 좋고 파란 것이 좋지 못한 것이라. 나물이 줄기가 굵고 연한 것이 제일이요.…이 풋나물이 온갖 좋은 약재료가 봄에 처음 나오는 것이라 혹 극한 극렬한 독이 있더라도 처음 난 어린 풀이라 독기가 과히 없고 아무리 독초라도 단오 안에는 다 먹어도 관계치 아니하니라.…여러 가지 이름 있는 약풀이 다 상등 나물이라 하나니라.”(이용기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

3년 전 대한민국 식품명인 90호 지정

한 그릇에 담은 고화순 명인의 하늘농가㈜ 즉석 나물들. 12시부터 시계방향으로 더덕채·고사리·가지말랭이·건취나물·애호박말랭이 볶음과 가운데 부지깽이(쑥부쟁이)나물. [사진 이택희]

한 그릇에 담은 고화순 명인의 하늘농가㈜ 즉석 나물들. 12시부터 시계방향으로 더덕채·고사리·가지말랭이·건취나물·애호박말랭이 볶음과 가운데 부지깽이(쑥부쟁이)나물. [사진 이택희]

지난 9일 나물 구경을 하러 서울 경동시장에 갔다. 장이 아주 푸짐했다. 야생에선 5월에 나는 나물도 벌써 보였다. 나물 구역을 한 바퀴 돈 다음 400g에 6000원 하는 막나물 1만원어치를 샀다. 막나물은 종류를 구별하지 않고 섞어 뜯은 것이다. 이 나물은 맛이 섞이는 흠은 있어도 여러 나물을 한꺼번에 맛보는 재미가 흠을 가리고 남는 데가 있다. 무쳐도 좋고, 국·전·죽으로도 훌륭하다.

막나물에는 취나물·갯방풍·원추리·잔대싹·돌미나리·파드득나물(시장에선 참나물) 등이 섞여 있었다. 각각의 이름으로도 팔리는, 이름 있는 나물들이다. 내용을 보니 뜯으면서 섞인 건 아닌 듯하다. 야생에서 서식지나 생산 시기가 같지 않은 것들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시설재배한 나물을 유통과정에서 선별할 때 등외로 밀린 것들을 모아서 파는 듯하다. 출신이야 어떻든, 데쳐서 무치고 나물죽 쒀 아주 맛나게 먹었다.

다음날 오후에는 나물 명인을 만나러 갔다.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90호(고사리나물) 고화순(55)씨다. 2021년 묵나물의 대표 격인 고사리나물로 명인에 지정됐다는 뉴스를 보고 메모해 두었는데 나물 시즌에 인연이 닿았다. 식품 분야 기능이 훌륭한 사람에게 부여하는 명인·명장·대가 같은 명예 칭호가 많다. 대개는 민간단체가 주관하는데 그 기준과 수준이 일정하지 않다. 칭호 앞에 ‘대한민국’이 들어가면 정부 지정 명인이다. 농림축산식품부 식품명인(2021년 말 91호까지 지정 83인 활동)과 해양수산부 수산식품명인(2023년 말 11호까지 지정 10인 활동) 두 가지가 있다.

고화순 명인(오른쪽)과 사업을 돕는 딸 박미소씨가 고사리나물을 다듬고 있다. [사진 이택희]

고화순 명인(오른쪽)과 사업을 돕는 딸 박미소씨가 고사리나물을 다듬고 있다. [사진 이택희]

만난 곳은 명인이 대표이사인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에 있는 농업회사법인 하늘농가㈜였다. 가면서 나물 밭이 있는 한적한 전원에서 장작불 때며 나물 삶는 가공장을 상상했다. 현장은 번듯한 사무실과 연구소, 대규모 가공장을 갖춘 단지였다. 이웃 진접읍과 명인의 고향 경북 울진에 공장이 더 있다 한다. 직원이 70명이고, 지난해 매출이 179억원이었다. 요샛말로 ‘깜놀’이다.

어떤 나물을 얼마나 많이, 어떻게 가공하기에 그만큼 될까. 모든 나물은 전국 생산자와 직거래하는 국산으로, 일주일에 원물 30~33t, 연간 1500t 가량을 가공한다. 대량이고 정해진 양을 매일 공급해야 하므로 조달이 불규칙한 야생 나물을 쓸 수는 없다. 주요 제품은 포장 그대로 전자레인지에 2~3분 가열해 바로 먹는 냉동 즉석 나물음식 16종과 조리할 때 쓸 반가공 나물 약 140종이다. 한마디로 일반인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나물이 다 있다고 생각해도 무방할 듯하다. 제품은 온라인 판매도 하고, 수도권 학교와 사업체 5000여 곳에 납품한다.

즉석 나물음식은 산채비빔밥 네 가지와 나물 볶음·지짐·무침 열두 가지가 있다. 비빔밥은 곤드레비빔밥, 강된장 시래기 표고버섯밥에 소스를 고추장 맛과 간장 맛으로 선택할 수 있게 했다. 나물반찬은 고사리·곤드레·더덕채·취나물·부지깽이나물(쑥부쟁이)·가지말랭이·애호박말랭이·도라지·건고구마순·피마자(아주까리)잎 볶음, 도라지채 무침, 무시래기 지짐이 있다. 비빔밥 세 가지와 나물 볶음 두 가지를 시식해봤다. 살림을 오래 한 사람이 집에서 한 맛과 다르지 않다. 공장 식품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묵나물의 향과 맛이 잘 살아있는 음식이다.

울진군 금강송면·매화면을 터전으로 외할머니, 어머니로 이어지는 산나물의 삶을 여섯 살부터 심부름하며 배우고 익혔다는 명인에게 나물요리를 손쉽게 하는 방법을 부탁했다. 요즘 많이 나오는 생나물은 살짝 데쳐서 간장·파·마늘·참기름만 넣고 조물조물 무친 다음 참깻가루 살짝 뿌리면 끝이다. 집간장이 좋지만 없으면 시판 국간장이나 참치액젓을 쓴다. 나물에 따라 간장 대신 된장·고추장을 반반 섞어 무치기도 한다.

말린 고사리 하룻밤 불려 삶으면 좋아

명인의 주 종목인 고사리나물 음식에 관해서도 물었다. 잘 맞는 음식으로 볶음·육개장·전·파스타·삼겹살구이를 들었다. 말린 고사리 묵은내를 없애려면 쌀뜨물에 담가 하룻밤 불렸다가 삶으면 좋다고 한다. 더 부드럽게 하려면 불린 고사리를 삶을 때 물이 끓으면 넣고, 다시 끓으면 불을 끈 다음 찬물을 부어 온도를 60도(손가락을 넣어 좀 뜨거운 정도)로 낮춘다. 냄비 뚜껑 덮고 30분쯤 두었다가 찬물에 헹군다.

나물은 지구의 미래 대안음식으로 손꼽히지만, 현대인의 생활에서는 점차 멀어지고 있다. 고기에 치중한 외식은 느는데 나물반찬을 다양하게 하는 데는 드물다. 하지만 고기만큼 나물도 갖춰 먹어야 식생활 균형이 맞는다. 약풀로서 나물 음식이 그래서 점차 소중하게 느껴진다. 마침 오늘(27일)은 하늘농가㈜의 스무 돌 생일이다. 창업 후 매출이 12배로 성장했다. 세상에 나물의 영토를 그만큼 넓혔다는 공든 탑이다. 명인의 손길이 빛나 보이는 이유다.

이택희 음식문화 이야기꾼 hahnon2@naver.com 전 중앙일보 기자. 늘 열심히 먹고 마시고 여행한다. 한국 음식문화 동향 관찰이 관심사다. 2018년 신문사 퇴직 후 한동안 자유인으로 지내다가 현재는 경희대 특임교수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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