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 부서지는 고통' 뎅기열 확산…페루 간 한국의사 "기후위기 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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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모기를 매개로 퍼지는 열대성 질환 뎅기열의 확산세가 심상치 않다. 남미와 동남아의 풍토병으로 여겼던 뎅기열이 최근 캐나다를 제외한 미주 전역과 유럽으로 빠르게 확산 중이다. 유엔 산하 범미보건기구(PAHO)는 지난달 미주 지역 뎅기열 발병 건수가 350만 건을 넘어 전년 동기 대비 3배 증가했다고 밝히면서 “역대 최악 상황”이라 전했다.

전문가들은 한국도 안전지대가 아니라고 경고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제주도 등 한반도도 뎅기열 바이러스를 지닌 매개 모기(이집트숲모기·흰줄숲모기)의 서식에 적합한 아열대 기후로 바뀌고 있어서다.

남미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뎅기열 확산을 막기 위해 활동 중인 감염내과 전문의 김은석(50) 월드비전 개발협력사업팀 차장은 25일 중앙일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뎅기열 공포의 근원은 기후위기"라며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노력에 국가와 개인 모두 동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차장은 아프리카·남미에서, 산모와 영유아의 건강 증진 및 기생충 감염 예방 활동, 말라리아·뎅기열의 예방·치료 활동에 전념해왔다. 2022년 ‘제17회 대한민국 해외봉사상’ 대통령 표창과 이태석 봉사상을 수상했다.

김염내과 전문의 김은석씨(오른쪽)가 페루 아마존에서 20년 전 일했던 보건소를 방문해 직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은석씨 제공

김염내과 전문의 김은석씨(오른쪽)가 페루 아마존에서 20년 전 일했던 보건소를 방문해 직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은석씨 제공

페루 상황이 심각하다고 들었다. 현지 분위기는.  
“원래 페루에서 뎅기열은 아마존 지역에서 국한돼 발생하는 풍토병이었다. 사실 리마처럼 해안 도시에선 뎅기열이 ‘남의 일’이었다. 그런데 뎅기열 환자가 급증하면서 ‘누구나 걸릴 수 있다’는 공포가 퍼지고 있다. 해안의 몇몇 의료진들은 뎅기열을 처음 접하다 보니 잘못된 진단, 치료법으로 환자를 위험에 빠뜨리기도 한다. 지금은 아마존의 경험 많은 의사들이 도시를 방문해 뎅기열 정보를 주고 있다.”
뎅기열 확산이 두려운 이유는.
“뎅기열은 일단 발생하면 주민들이 동시다발로 감염될 가능성이 크다. 또 일반적인 감염병이 1차 감염 때 항체가 생겨 2차 감염 때는 증상이 완화되는 것과 달리, 뎅기열은 2차 감염 때 중증으로 발현된다. 이때 느끼는 통증을 '뼈가 부서지는 고통'이라고 표현한다. 체내 출혈, 혈압 저하, 장기 손상 등으로 고열과 오한·구토에 시달리다 심한 경우 목숨까지 잃게 된다. 감염 속도가 빠르고, 고통스럽고, 중증 진행 위험률도 높은데, 아직 뚜렷한 치료약도 없다. 이게 남미를 넘어 미주·유럽까지 덮친 뎅기열의 공포다.”
뎅기열 바이러스를 옮기는 매개 모기. AFP=연합뉴스

뎅기열 바이러스를 옮기는 매개 모기. AFP=연합뉴스

한국도 '뎅기열 안전지대'가 아니라고 들었다.  
“코로나 19의 교훈을 기억하길 바란다. 한 곳에서 창궐한 감염병이 세계로 확산될 수 있고, 한 국가 차원에선 막을 길이 없다. 뎅기열도 그렇다. 뎅기열의 확산은 기후위기와 맞닿아 있다. 장기간 고온다습한 날씨, 홍수와 가뭄이 번갈아 이어지면서 모기가 크게 늘고 뎅기열도 퍼진다. 뎅기열 확산을 막으려면, 일단 한국 내 기후 변화 자료를 토대로 뎅기열 발생 추이를 미리 추정하는 모델링 작업, 조기 진단과 치료를 위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궁극적으로는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한 투자와 노력에 동참해야 한다.”
페루에서 의료 활동을 하게 된 이유는.
“의대 졸업 후 고신대 복음병원에서 근무하다가,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국제협력의사’ 프로그램을 통해 페루 아마존에서 3년간(2004~07) 의료 활동을 했다. 한국에선 볼 수 없던 수많은 열대 감염병을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 당시 아마존에서 만난 독일 의사도 인상적이었다. 본인이 당뇨병을 앓으면서도 열악한 아마존에서 의료 봉사에 전념하고 있었다. 그는 내게 ‘한번 사는 인생, 내 재능을 가장 필요로 하는 곳에서 쓰임받는 것이 가장 가치있고 행복하다’고 했다. 귀국한 뒤 삼성서울병원, 안양샘병원 등에서 일하다 아프리카를 거쳐 결국 페루로 돌아왔다. 20년 만에 페루 아마존에서 독일 의사를 다시 만났고, 그의 여전한 열정을 보며 마음을 잡았다.”
2005년 페루 아마존의 정글 보호구역 안에 있는 한 마을에서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는 김은석씨. 김은석씨 제공

2005년 페루 아마존의 정글 보호구역 안에 있는 한 마을에서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는 김은석씨. 김은석씨 제공

2022년 7월, 20년만에 페루에 돌아온 김은석씨(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아마존에서 만난 독일인 의사(오른쪽)와 재회해 온 가족과 함께 식사하고 있다. 김은석씨 제공

2022년 7월, 20년만에 페루에 돌아온 김은석씨(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아마존에서 만난 독일인 의사(오른쪽)와 재회해 온 가족과 함께 식사하고 있다. 김은석씨 제공

아프리카·남미에서 근무하면 각종 풍토병에 노출될 듯한데.
“나는 괜찮지만, 가족이 고통받을 때 괴롭다. 아프리카에 있을 때 첫돌이 갓 지난 둘째가 말라리아에 걸렸다. 말라리아약이 특히 쓴데, 아무리 먹이려 해도 아이가 계속 뱉어냈다. 고열에 시달리는 아이를 밤새 안고 어르면서 혹시 잃게 될까 봐 너무도 두려웠다. 회복했을 때 안도감이 지금도 생생하다."
국내에서 근무하면서 의료봉사를 갈 수도 있을텐데.
“개인적으로 현지에서 '풀타임' 근무하는 게 좋다. 질병은 남녀차별, 경제적 어려움, 질병에 대한 몰이해 등 지역사회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요인의 최종 결과물일 때가 많다. 주민과 이웃으로 살면서 함께 호흡하고 지낼 때만 알 수 있는 해결 방안이 있는 것 같다. 병원이 아니라 월드비전에 소속돼 활동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지역사회 중심의 활동으로 현지인들과 깊은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현지 정부와도 신뢰를 쌓아뒀기에 실질적이고 의미있는 보건활동이 가능했다.”
한국에선 의사를 경제적 여유와 안정을 보장받는 직업이란 인식이 강한데.
“적어도 내 주변 의사들은 사명감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의사는 생명을 다룬다. 그래서 매사 진지해지고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도 의사라는 업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좀 더 건강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최근 한국에서 들려오는 뉴스를 들을 때 마음이 아프다.”
김은석씨가 제17회 대한민국 해외봉사상 시상식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고 소감을 말하고 있다. 월드비전 제공

김은석씨가 제17회 대한민국 해외봉사상 시상식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고 소감을 말하고 있다. 월드비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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