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결과 만들고 회담하나" 野 "들러리냐"…이러다 공멸할 판 [view]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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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이쯤 되면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다시 전화통화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꼭 일주일 전, 전격적으로 통화하며 국민에게 ‘윤 대통령이 총선 민심을 예사로 보진 않구나. 야당도 수권정당으로서 해야 할 역할을 인식하고 있구나’는 기대를 심어줬다. “차도 마시고 식사도 하고 통화도 하면서 국정을 논의하자”(윤 대통령), “대통령께서 하시는 일에 도움이 돼야 한다”(이 대표)는 두 사람의 대화도, “국정 파트너로 인정한 것”(대통령실 관계자)이란 사후 해설도 정치권에서 보기 드물게 아주 아름다웠다.

그러나 딱 여기까지였다. 양측은 그 이후 일주일째 한 발짝도 진도를 못 나가고 있다. 홍철호 정무수석과 천준호 민주당 대표 비서실장이 25일 두 번째 만나 40분간 협상했지만, 회담 날짜조차 못 잡고 헤어졌다. 23일 1차 실무회동 무산 땐 아쉬움을 토로하는 정도였다면, 이제는 서로에게 책임을 돌리는 지경이 됐다.

윤석열 대통령(오른쪽)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중앙포토

윤석열 대통령(오른쪽)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중앙포토

1차 회동 직후부터 난관은 예상됐다. 민주당은 채상병 특검법, 민생회복지원금, 대통령 거부권 사과 등 민감한 의제를 언급하며 대통령실에 “긍정이든 부정이든 사전 검토 의견을 달라”고 했다. 대통령실은 “어떤 의제든 상관없으니 미리 답을 정하지 말고 회담 테이블에 올리자”는 입장이었다. 이는 2차 회동에서도 그대로 되풀이됐다. 회동 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기자들을 만나 “민주당 입장은 결과를 미리 만들어 놓고 회담하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천준호 실장은 “대통령실이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했는데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양측은 3차 실무 회동도 추진할 방침이지만, 이미 두 차례 만남에서 평행선을 달리면서 회담에 먹구름이 끼었다는 관측이 나온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강조한 민생 해결 의지도 덩달아 빛이 바랬다. 총선 후 두 사람은 앞다퉈 “경제와 민생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윤 대통령), “먹고 사는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이 대표)는 말들을 했다. 하지만 양측 모두 이를 실천하기 위해 대승적으로 머리를 맞대기보다는 자기 입장만 되뇌고 있다. “상대를 적으로 돌리고 양보하지 않는 대치 상태가 이어지면 대통령실과 야당 모두 공멸할 것”(문희상 전 국회의장)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이 25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영수회담' 2차 실무회동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이 25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영수회담' 2차 실무회동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대통령실을 향해선 꽉 막힌 정국을 풀고, 어떻게든 야당을 설득해 국정 활로를 열어젖히겠다는 의지를 못 보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야권 관계자는 “윤 대통령에게 영수회담은 협치를 끌어낼 절호의 기회인데 지나치게 방어적”이라며 “대통령실이 회담의 실질적 성과보다는 ‘이 대표를 만났다’는 명분 쌓기에만 신경 쓰는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참모진에게 “낮은 자세로 민심을 겸허히 받들라”고 강조했던 윤 대통령의 주문이 무색해졌다는 지적은 여당에서도 나온다. 익명을 원한 국민의힘 당선인은 “총선 결과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민주당과 이 대표를 향해선 “총선 압승을 등에 업고 위력 과시에 몰두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민주당은 두 차례 회동에서 대통령실이 이미 부정적 입장을 밝혔거나, 향후 수사의 칼날이 대통령실을 겨냥할 수 있는 민감한 의제를 집중적으로 제시했다. 회담 당사자인 이 대표 본인이 “대통령실은 채상병 특검법을 수용해 국민 명령을 따르라”고 압박했고, 당 강경파는 “김건희 여사 의혹을 의제로 올려야 한다”(추미애 민주당 당선인)고 거들었다. 과거 정부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한 야권 인사는 “회담 성과는 관계없이 대통령실만 몰아붙이면 그만이라는 태도”라고 지적했다.

영수회담 테이블 이미지. 중앙포토

영수회담 테이블 이미지. 중앙포토

상황이 이럴진대, 2차 회동 뒤 양측은 서로에게 책임을 돌렸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야당 대표가 각종 법안을 국회가 아닌 대통령과 만나 담판 짓겠다는 발상 자체가 반헌법적”이라며 “실무회동에서 답을 내라는 것은 불가능한 요구”라고 말했다. 민주당이 전 국민에게 25만원씩 주자며 제시한 민생회복지원금에 대해선 “내수를 잘못 자극해 물가 상승 압력을 높일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반면, 민주당 관계자는 “회담이 만나서 사진 찍고 끝내는 자리냐”며 “총선에서 드러난 민심을 일부라도 국정에 반영하겠다는 최소한의 의지를 기대했는데 오판이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중진 의원은 “대통령실은 ‘일단 만나자’는데, 일방적인 태도”라며 “총선에서 진 것은 정부ㆍ여당인데 왜 이 대표가 아무런 사전 합의 없이 용산에서 들러리를 서야 하냐는 반발이 거세다”고 말했다.

양측의 이런 양태에 대해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회담이 성사되기도 전에 회담 무산의 책임을 상대 진영에 돌리는 적대적인 ‘알리바이 정치’가 난무하는 양상”이라며 “이래서는 우여곡절 끝에 회담이 열려도 민생 성과를 기대하기가 힘들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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