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원 SK온 부회장 "배터리 캐즘 위기? 여섯 토끼 잡을 기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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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최재원 SK온 수석부회장이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SK온 관훈사옥에서 열린 '정해진 미래,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 타운홀 미팅을 진행하고 있다. SK온 제공

최재원 SK온 수석부회장이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SK온 관훈사옥에서 열린 '정해진 미래,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 타운홀 미팅을 진행하고 있다. SK온 제공

전기차 시장 정체에도 불구하고 최재원 SK온 수석부회장은 “전동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자 정해진 미래”라며 “이를 위해 다양한 사업 역량을 단단히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SK온관훈사옥에서 직원들과 가진 타운홀 미팅에서다.

25일 SK온에 따르면, 최 부회장은 이날 직원으로부터 전기차 캐즘(Chasm, 일시적 수요정체)에 따른 배터리 산업 성장 둔화에 대한 질문을 받고 “중장기적으로 각국 환경정책, 연비 규제, 전기차 라인업과 충전 인프라 확대 등의 영향으로 지속적인 성장이 나타날 것”이라며 시장을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그는 “현재 캐즘은 누구보다 빠르게 성장한 SK온에게 위기이자 기회”라고도 했다.

캐즘 직격탄 맞은 SK온 

그러나 최근 상황은 녹록치 않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SK온의 올 1~2월 세계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 점유율은 4.5%를 기록했다. 지난해 1~2월보다 1.7%포인트 줄었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의 같은 기간 점유율이 각각 0.2%포인트 감소(13.9%→13.7%), 0.8%포인트 증가(4.8%→5.6%)한 데 비해 상대적으로 부진했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적자에서도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 이에 대해 최 부회장은 “통상 제조업은 첫 5년은 손해가 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SK온은 2021년 10월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사업부가 물적 분할해 설립됐다. 메리츠증권과 삼성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SK온의 흑자 전환 시점을 올 4분기로 봤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첨단세액공제(AMPC) 혜택을 제외하고도 흑자를 낼 수 있는 시점은 내년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전기차 수요 정체에 따른 어려움은 SK온뿐 아니라 국내 배터리 업계 전반이 겪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 1분기 매출 6조1287억원, 영업이익 1573억원을 올렸다고 25일 공시했다. 매출은 전분기 대비 23.4% 줄었고, 영업이익은 53.5% 감소했다. 더욱이 IRA 세액공제(1889억원)를 제외하면 316억원 영업적자를 냈다. 업계에선 “세계 1위인 중국 CATL만 독주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올해 1~2월 기준 전 세계 배터리 시장의 38.4%를 점유한 CATL은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중국 밖 유럽 등에서 선전하며 올 1분기 매출 797억7000만 위안(15조908억원), 순이익 105억 위안(1조9862억원)을 기록했다.

ESS, 오토바이용 배터리 등으로 사업 확장 

캐즘 극복을 위해 국내 배터리 업계는 사업 영역을 확장하거나 재조정하는 중이다. 전기차용 중대형 배터리 중심으로 생산하던 SK온은 지난달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제품을 공개했다. 전기차와 달리 성장세가 여전히 강한 ESS 사업을 본격화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SK온의 배터리 사업은 지난 23일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주재로 열린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회의에서 추진하기로 결정된 사업 조정 ‘리밸런싱’ 작업의 주요 대상으로 거론됐다고 한다. SK는 그룹 차원에서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를 통해 배터리 분야 전반의 사업성을 진단하기로 했는데, 이를 참고해 사업 조정이 이뤄질 전망이다.

23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전기차 행사 '제37회 세계 전기자동차 학술대회 및 전시회(EVS37)'에서 관람객들이 LG에너지솔루션 전기차 배터리 관련 전시품을 관람하고 있다. LG 제공

23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전기차 행사 '제37회 세계 전기자동차 학술대회 및 전시회(EVS37)'에서 관람객들이 LG에너지솔루션 전기차 배터리 관련 전시품을 관람하고 있다. LG 제공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LG에너지솔루션도 새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지난 3월 퀄컴 테크놀로지와 함께 첨단 BMS(배터리 관리 시스템)를 개발하기로 했고, 오토바이용 배터리 서비스를 운영하는 사내 독립기업 쿠루도 서울에 200여 개의 배터리 교체 시설을 두며 사업을 본격화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첫 ESS 생산 공장인 미국 애리조나 공장 건설도 시작했다. 삼성SDI는 전기차 캐즘의 영향을 덜 받는 프리미엄 전기차용 배터리에 집중하며 ESS 등에 대한 투자를 늘린다는 계획이다.

美 투자는 속도조절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캐즘은 위기라기보다는 향후 다시 성장세가 강해질 때를 대비해 다양한 사업 영역의 기술을 올려야 하는 시기”라고 설명했다. 최재원 부회장도 타운홀미팅에서 “캐즘을 극복하기 위해 원가 경쟁력, 연구개발, 생산 능력 등 제조업의 모든 역량이 중요하다”며 “어렵지만 우리는 한 마리 토끼가 아닌 최소 대여섯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에 수조원을 투입해 공장을 건립 중인 국내 기업들은 투자 속도 조절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창실 LG에너지솔루션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이날 실적발표에서 “필수적 신증설 투자에는 선택과 집중을 하되 투자 규모와 집행 속도를 조절해 CAPEX(설비투자) 규모를 다소 낮추고자 한다”며 “수요 변화를 면밀히 검토해 우선순위를 정하고 투자 규모와 집행 속도를 합리적으로 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SK온도 포드와 합작해 짓고 있는 미국 켄터키주의 2공장 가동 시기를 당초 2026년에서 더 늦추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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