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부 “민주유공자법 기준 모호…거부권 건의 검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운동권 셀프 특혜법’이라는 비판이 제기된 민주유공자예우법 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되자 소관 부처인 국가보훈부가 25일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법안이 통과될 경우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보훈부 이희완 차관은 이날 기자간담회를 열고 “민주화 운동의 피해 보상 대상자를 선정하는 것과 국가적 존경과 예우의 대상인 유공자를 결정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라면서 “법률에 구체적인 심사 기준이 없어 유공자 선정 과정에서 민원과 쟁송이 끊임없이 제기돼 사회적 혼란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차관은 이어 “부산 동의대 사건, 남민전 사건, 서울대 프락치 사건 관련자에 대해선 유공자로 인정할 만한 사회적 합의가 돼 있지 않다고 본다”며 “특히 법안에 따르면 국가보안법 위반자도 보훈심사위원회의 심의·의결에 따라 민주유공자로 등록이 가능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이번 법안은 적용 대상자를 “1964년 3월 24일 이후 반민주적 권위주의 통치에 항거해 헌법이 지향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확립에 기여한 희생 또는 공헌이 명백히 인정돼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사람”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면서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법과 부마 민주항쟁 보상법에 따라 사망·행방불명, 부상 등으로 보상을 받은 이들을 대상으로 명시했다.

그런데 정작 이들 중 민주유공자를 어떤 기준으로 선정할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없다는 게 보훈부의 입장이다. 이 법에 따라 민주유공자로 인정되면 본인과 자녀가 대학 입시전형에서 유공자 특별전형의 대상이 되고, 보훈병원의 진료, 재활서비스와 민간 노인요양시설 이용비 등을 지원 받을 수 있다.

보훈부는 또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아 형이 확정됐더라도, 보훈부의 심의·의결에 따라 유공자로 선정할 수 있게 한 부분도 지적했다. 민주화 운동 관련 사건의 특성상 권위주의 시절 부당하게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받은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출구’를 열어둔 것인데 보훈부는 이마저도 사안별로 따져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보훈부 관계자는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을 유공자로 선정하려면 심의·의결 기준이 명확해야 하는데 지금 법안으로는 부처가 자의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보훈부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 정부로 이송되면 윤석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한다는 입장이다. 보훈부 관계자는 “야당에 법안의 독소조항을 충분히 설명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서 “필요하다면 대통령실에 거부권 행사를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