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25일 국회 기자회견장에 세 번 섰다. 오전 10시 40분엔 “채 해병 특검법을 통과하고, 윤석열 대통령은 더는 거부권을 행사하지 말라”고 주장한 해병 출신 문화·종교·학계 출신 인사와 함께였다. 오후 2시 20분엔 “윤 대통령과 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을 직권남용과 권리행사방해 등으로 공수처에 고발한다”고 밝힌 해병대예비역전국연대 옆에 섰다. 그 20분 뒤엔 민주당 소속 국회 운영위원들과 나타나 “국민의힘은 대통령실 비호를 멈추고 운영위 개회에 협조하라”고 촉구했다.
전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재명 대표가 “21대 국회가 끝나기 전에 특검법을 통과시켜 반드시 진상 규명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 이후, 민주당이 채상병 특검 추진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이날 박 수석의 기자회견도 이의 연장선이다. 박 수석은 이날 오전 열린 당 정책조정회의서도 “대통령실이 관여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추론”이라며 “그래서 우리가 특검도 하자고 하고, 운영위를 열자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채 상병 특검법은 지난해 9월 발의됐다. 그해 7월 경북 예천군 집중호우 실종자 수색 작전 중 급류에 휩쓸려 사망한 해병대 채모 상병 관련 수사를 국방부 등이 은폐했다는 의혹에 대해 대통령실과 국방부 등 관련자를 수사하는 내용이 골자다. 10월 6일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돼 지난 2일 본회의에 부의됐다. 민주당의 한 지도부 인사는 “이 사안의 규모가 너무 커 특검의 진상규명이 이뤄지면 어떤 반작용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특검법의 통과 여부나 시점은 불투명하다. 21대 국회 마지막 의사일정에 대한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어서다. 민주당은 5월 2일 본회의를 열어 특검법을 통과시키고,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5월 말 본회의에서 재투표하겠다는 입장이다. 여당은 본회의 자체에 부정적이다. 본회의를 한 차례 여는 것으로 합의되면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폐기할 수 있다. 이럴 경우 22대 국회에서 재발의 되는 걸 상정하면 본회의 통과 시점은 가을 이후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의 기본 입장은 “특검법을 21대 국회에서 통과시켜 이 사건의 진상규명을 서두르는 게 민주당에도, 대통령에게도 낫다”(중진 의원)는 것이다. 그러나 이 대표의 한 측근은 “당에선 거부권 행사 이후의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반발 여론이 형성될 테니, 이를 업고 21대 국회에서 재투표하거나 22대 국회에서 재발의하는 것 모두 나쁠 것 없는 ‘꽃놀이패’란 취지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민주당 입장에서 채상병 특검은 총선 공약 이행과 지지층·청년 여론 의식, 조국혁신당과의 선명성 경쟁 등을 고려했을 때 조금도 양보할 수 없는 사안”이라며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도 22대 국회에서 재발의할 것이므로 차라리 특검법을 수용하는 것이 여권에는 더 나은 전략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