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묘해진 MZ조폭 "주먹 잘써야? 전화영업 잘하는 신입이 에이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월간중앙] 밀착취재-더욱 교묘해진 MZ조폭계 돈벌이

코인 거래소로 수백억원 번 MZ조폭… 시작은 전화 영업
법적 규제 느슨한 틈 타 금융범죄 설계해 조폭계 롤모델로 

MZ세대 조폭의 최대 관심사는 전화 영업으로 능력을 인정받아 자신만의 금융범죄 업체를 세우는 것이다. 최근 MZ세대 조폭의 우상으로 지목되는 정모(33) 씨와 이모(33) 씨는 코인 사설 거래소를 세운 뒤 불법 영업으로 막대한 범죄자금을 편취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은 경찰에 붙잡힌 평택·송탄 지역 폭력 조직 조직원들. 기사 본문과는 관계 없음. / 사진:경기남부경찰청

MZ세대 조폭의 최대 관심사는 전화 영업으로 능력을 인정받아 자신만의 금융범죄 업체를 세우는 것이다. 최근 MZ세대 조폭의 우상으로 지목되는 정모(33) 씨와 이모(33) 씨는 코인 사설 거래소를 세운 뒤 불법 영업으로 막대한 범죄자금을 편취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은 경찰에 붙잡힌 평택·송탄 지역 폭력 조직 조직원들. 기사 본문과는 관계 없음. / 사진:경기남부경찰청

원로 김모 씨는 “사채업이나 기업사냥으로 돈 버는 시절은 지났다. 계보와 위신을 따지던 문화도 사라졌다. 이제는 ‘사이트’ 하나만 잘 굴려도 조직 전체가 먹고산다”고 전했다. 그가 말하는 사이트란, 2020년대 초반까지는 불법 스포츠 도박사이트를, 최근에는 코인 사설 거래소를 의미한다. 흥미로운 점은 그 어느 사이트에서도 일반인이 돈을 따낼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불법 토토나 코인 사설 거래소나 크게 다를 게 없다. 고객이 돈을 잃어야 업체가 돈을 버는 ‘죽장’ 구조다.”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사이트’ 하나만 잘 굴려도 조직 전체가 먹고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MZ세대 조폭들이 거치는 수습 과정도 텔레마케팅(TM)팀에서 이뤄지고 있다. 조직이 운영하는 사설 거래소로 고객들을 유인해 영업이익에 얼마나 많이 기여하느냐에 따라 조폭으로서의 역량이 정해지게 된 것이다. 소위 조직의 ‘작업조’가 되어 선배 지시에 청부 폭행을 벌인 뒤 교도소에 들어가는 것은 구태의 전형이 됐다.

기자는 텔레마케팅으로 시작해 지금은 기업인 행세를 하며 코인 선물 사기로 수백억원의 범죄자금을 벌어들이고 있는 MZ세대 조폭 정모(33) 씨와 이모(33) 씨의 존재를 파악하고 이들의 수익 경로를 추적했다. 서울 강북구 출신인 이들은 후배들에게 ‘강북의 신’이라 불리며 우상화되고 있었다. 기성 조직들도 교육 차원에서 말단 조직원들을 이들의 회사에 입사시킨 상황도 포착됐다.

이들의 수법을 보자. 2022년 3월, 정씨와 이씨는 서울 강북구에 유사투자자문업체 N그룹을 설립한다. 금융감독원에도 신고돼 있다. 이와 관련해 MZ 조폭계의 사정을 잘 아는 한 정보통은 “이씨는 20대 초부터 해외선물 사기 업체에서 텔레마케팅으로 일가견을 보였고, 정씨는 웹 개발 쪽으로 뛰어났다. 둘이서 가짜 HTS(홈트레이딩 시스템)를 통한 해외선물 사기로 자금력을 확보한 뒤 이 회사를 차린 것으로 안다”고 털어놨다.

취재 결과, 이 업체는 정씨 등이 실소유한 것으로 파악되는 코인 불법 거래소와 고객들을 연결하는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었다. N그룹 텔레마케터들은 고객들에게 “주식으로는 큰돈을 벌 수 없다. 많아 봐야 7%다. 하지만 지금 코인은 불장이다. 코인 선물을 모르겠다면 우리 쪽 리딩 전문가를 붙여주겠다”며 코인 선물 거래로 회원들을 유인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코인 선물은 고배율 레버리지로 일확천금을 벌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10만원으로도 1000만원을 벌 수 있다”고 말하면서 손실 가능성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유사투자자문 업체에서 텔레마케터로 활동한 김모(31) 씨는 “빠꼼이(업계 사정에 밝은 사람)들을 걸러내기 위한 스크립트(대본)다. 선물과 레버리지 얘기를 들어서 혹하는 사람은 코인 지식이 전무해서 등치기 쉽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고배율 레버리지의 피 말리는 코인 도박판 설계

이런 방식으로 텔레마케터의 꾐에 넘어간 고객들은 코인투자자문업체 C스탁을 소개받는다. 이후 C스탁 코인트레이더들이 운영하는 카카오톡 리딩방에 초대돼 코인 선물 거래 리딩을 받는 수순을 밟는다. C스탁은 투자자문과 관련해 금융감독원에 신고되지 않은 불법 업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내부자는 “실소유자는 정씨 등이고, 바지사장을 내세워 운영한다”고 귀띔했다.

그렇다면 C스탁은 어느 코인 거래소와 연결돼 있는 것일까? 기자가 C스탁 리딩방에 고객을 가장하고 들어가 알아봤더니, 이들 트레이더는 해외에 소재한 F거래소에서의 선물 거래를 추천했다. F거래소 또한 금융정보분석원(FIU)에서 인가받은 업체가 아니다. 한마디로 불법 영업이다. 따라서 C스탁은 금융 당국이 코인 투자의 투명성을 제고하고자 도입한 ‘트래블룰’(코인 금융실명제)의 규제에서 비켜나 있다. 고객의 청산금을 거래소가 모두 챙겨가는 기형적인 죽장 구조가 가능한 이유다.

“N그룹과 C스탁의 영업직원이나 트레이더 다수는 자신들의 상부가 F거래소를 운영하는 것을 모르고 있다. 정씨 등 일당이 F거래소를 합법으로 위장하고자 철저하게 계산해서 만든 수익 모델이다.” 내부자의 설명이다. 그에 따르면 하부의 직원들은 고객의 투자를 계속 유치하면서 중개 마진을 챙겨야 하는 입장이다. 그래서 이들은 고객의 수익 실현을 위해 최대한 성실하게 일한다. 반면 상부로서는 고객이 증거금을 모두 날려야 돈을 버는 입장이지만, 고객들이 한때 돈을 따는 것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어차피 1~2%만 시세가 변동돼도 증거금(margin)이 전액 청산되는 고배율 레버리지의 피말리는 도박판이기 때문이다. 시기가 문제일 뿐 고객의 99%가 잃은 돈은 상부에 돌아간다.

아울러 F거래소는 선물 거래 수단으로 사용되는 테더(USDT· 달러 가치와 동등한 스테이블 코인)도 판매하고 있었다. 일일 단위로 변동하는 테더 값에 3.5%를 더 얹는 식이다. 특히 고객과 판매자의 거래를 중개하는 여타 거래소와 달리, 자신들의 홈페이지에 통장계좌를 버젓이 게시해 원화를 받고 있었다. 고객에게 테더를 팔고 선물 거래로 고객의 테더를 환수하면서 자산을 증식하는 구조였다. 제보자는 이 F거래소 역시 정씨 등 일당이 실소유한 업체라고 했다. 그는 “사설 거래소를 만들어주는 전문업자들이 존재한다. 3억원에서 10억원 사이로 금액이 책정되는데, 동남아나 아프리카 등지에 서버를 잡아준다”고 했다. 취재를 마친 기자가 금감원에 F거래소에 대해 문의한 결과 “불법 영업일 뿐 아니라 사기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스캠 거래소일 확률이 높다”고 경고했다.

이 같은 기막힌 수완에 기성 조직들도 말단 조직원들을 정씨 일당 밑으로 보내 텔레마케팅 업무를 교육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기자가 알아본 결과, 대표적으로 서울 상계파가 그런 사례였다. 당초 불법 사채업 등을 벌이던 소규모 조직에 불과했으나 201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불법 토토 사이트 운영과 해외선물 사기로 세력 확장에 성공한 것으로 유명하다. 조폭계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한때 지역에서 존재감을 발휘하던 답십리파 조직원 20명이 2019년경 상계파로 이적한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며 “뭐가 돈이 되는지 가장 잘 아는 조직이 패러다임을 주도해 나간다.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할수록 동네 조직으로 전락하게 된다”고 말했다.

현금만 200억원 보유… 일반 기업가로 신분 세탁

정모(33) 씨와 이모(33) 씨가 실소유한 C스탁 소속의 트레이더들이 카카오톡 리딩방에서 고객들에게 코인 선물 거래 리딩을 하는 모습. C스탁과 연결된 불법 코인 사설 거래소도 정씨와 이씨가 실소유한 것으로 파악된다. / 사진:안덕관 기자

정모(33) 씨와 이모(33) 씨가 실소유한 C스탁 소속의 트레이더들이 카카오톡 리딩방에서 고객들에게 코인 선물 거래 리딩을 하는 모습. C스탁과 연결된 불법 코인 사설 거래소도 정씨와 이씨가 실소유한 것으로 파악된다. / 사진:안덕관 기자

MZ세대 조폭 정씨와 이씨도 20대 초반 해외선물 사기 조직의 텔레마케팅팀으로 활동하면서 조폭계에 입문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단 선배들 밑에서 열심히 전화 돌려가면서 수습 과정을 거친다. 사무실 하나에 100~300명이 호구 낚기 경쟁을 벌이는데, 거기서 눈에 띄어야 선배들이 끌어준다.” 전직 조폭 박모(36) 씨의 설명이다. 그에 따르면 이씨는 ‘영업능력’ 하나로 자신의 체급을 높인 케이스로, MZ세대 조폭 사이에서 롤모델로 꼽힌다고 했다.

이들은 현재 현금만 200억원가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수사기관 감시망에 포착될 것을 우려해 주변에는 일반적인 기업가 행세를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박씨는 “조폭계 은퇴 연령이 빨라졌다. 40대 초반이면 한몫 챙기고 은둔생활에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정씨 등은 아직 30대 초반이고, 판을 너무 크게 벌였기 때문에 차라리 신분을 세탁하면서 얼마나 돈을 벌 수 있는지 갈 데까지 가려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정씨 일당은 이 같은 새로운 금융범죄 모델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문자발송 업체를 설립한 것으로 전해진다. 리딩방이나 사설 거래소 등 불법 업체들은 회원들에게 주기적으로 ‘원금 보장’이나 ‘투자정보제공’ 등의 내용을 담은 문자를 다량으로 발송한다. 이를 위해 업체에 자신들이 보유한 회원의 개인정보(Database)를 넘기게 되는데, 정씨가 업체를 설립한 목적이 바로 이러한 개인정보를 축적해놓기 위해서라고 한다. N그룹 내부자는 “회원들의 개인정보가 곧 돈이다. 불특정 다수에게 무작정 영업 전화를 거는 것보다 투자 가능성이 높은 사람을 현혹하는 게 훨씬 쉽지 않겠는가. 개인정보를 많이 축적할수록 남들보다 한참 앞에서 스타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취재에 들어간 지 얼마 후 C스탁이 운영하는 리딩방이 모두 폭파됐다. 이에 대해 내부자는 “최근 상부에서 외부의 감시를 인지하고 (리딩방 폭파를) 지시한 것으로 안다. 기존 회원들의 신분 등을 검사하고 이 과정을 통과한 회원들만 새로 개설한 리딩방에 초대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 안덕관 월간중앙 기자 ahn.deokkwa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