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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기업]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중소기업인들의 호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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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면

기고 이명로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본부장

지난 1월 27일부터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중대재해처벌법이 확대 적용되고 있다. 숫자로는 약 83만7000곳이나 된다. 법 시행 이후 3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중소기업 현장은 혼란스럽다. 고금리·고물가에 내수마저 침체된 상황에서 감옥 갈 위험을 안고 사업하느니, 차라리 폐업하겠다고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위반해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업주를 1년 이상 징역형에 처하는 전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법이다. 게다가 입법과정에서 기업계 의견은 반영되지 않아 제정 당시부터 경제단체를 비롯해 중소기업, 소상공인들 모두가 반대했던 법률이다. 다만,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2년 유예했으나, 인력과 자금이 부족한 영세 사업장들이 2년간 지속된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제대로 된 준비를 할 수 없었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중소기업계는 지난해부터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2년 더 유예해 줄 것을 호소해 왔다. 정부와 국회 건의는 물론 여러 차례의 성명서 발표와 기자회견도 열었다. 2년만 더 준비할 시간을 주면 더는 추가 유예 요구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까지 했으나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유예법안은 소관 상임위에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지난 1월 31일 중소기업·소상공인 3500여 명이 유예법안 상정 무산에 대한 중소기업계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 국회에 모였다. 이를 시작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결의대회가 수원, 광주, 부산으로 이어졌다. 제조업, 건설업, 수산업 등 다양한 업종에서 약 1만8000명이 모였다. 간절한 진심이 없다면 모일 수 없는 인원이다.

지난 4월 1일 중소기업계는 헌법소원심판까지 청구했다. 중소기업계의 헌법소원심판 청구는 단순히 법 적용을 회피하기 위함이 아니다. 국회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유예법안에 대한 제대로 된 논의조차 없었기 때문에 그간 지속해서 제기되어 왔던 위헌성 여부에 대해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구해보자는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중소기업인에게 명확하지 않고 광범위한 책무를 부과하고 있다. 규정이 명확하지 않으면 중소기업인들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의 자의적 판단과 법 해석으로 언제라도 감옥에 갈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도 소규모 사업장의 경우 아무리 의지가 있어도 준수할 수 있는 법규가 아니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의무위반으로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중벌만을 부과하고 있다.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사의 직접 행위자는 5년 이하 금고형의 상한형으로 규정돼 있다. 그런데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을 총괄한다는 관련성만을 이유로 이보다 과하게 1년 이상의 하한형 방식으로 처벌하고 있다. 형벌이 책임에 비례하지 않고 너무나 가혹하다.

지난 9일 헌법재판소는 중소기업계가 청구한 중대재해처벌법 헌법소원심판에 대해 재판부에 회부하는 결정을 내렸다. 재판관 3명으로 구성된 지정재판부에서 내린 회부 결정은 중대재해처벌법 내용이 헌법에 합치하는지 여부를 적극적으로 살펴보겠다는 취지라고 볼 수 있다. 중소기업·소상공인들은 헌법재판소가 부디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기를 간절히 기대하고 있다.

중소기업·소상공인도 헌재의 판단만 기다리고 있지 않다. 인력과 예산이 부족한 어려운 여건이라도 컨설팅, 안전시설투자 등 정부 지원과 자체 투자를 통해 소중한 근로자를 지키고자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 중소기업에 필요한 것은 제대로 준비할 수 있는 시간과 지원이다.

제21대 국회에도 다시 한번 호소드린다. 중소기업인·소상공인들이 처한 어려움을 헤아려 21대 국회 임기가 끝나기 전에 중대재해처벌법 유예법안을 처리해 주기를 바란다. 어려운 경영여건 속에서도 법을 지켜보겠다고 준비할 시간이라도 달라는 간절한 외침에 대답하는 21대 국회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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