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룸살롱 황제와 비리 경찰④〉
와! 형님, 이거 뭐예요?
차량 한구석에 종이 몇 장이 나뒹굴고 있었다. 평범한 A4용지에 글자들이 박혀 있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외양이었다.
종이는 묘한 물건이다. 백지일 때는 모두가 평등하지만, 거기에 글자가 적히면 신분이 널을 뛰기 시작한다.
‘룸살롱 황제’ 이경백이 목격한 종이에서는 돈 냄새가 물씬 풍겼다. 그건 몹시 위험한 놈이었다.
이경백은 선정적 인터넷 광고 단속을 빌미로 찾아온 경찰관들에게 1년째 ‘월정’을 주고 있었다. 매달 500만원의 고정급이었고, 추석과 설날에는 별도로 500만원씩의 보너스를 지급했다.
그와 거래를 튼 경찰관들은 둘씩, 혹은 셋씩 짝을 지어 매달 정해진 날짜에 신사동 네거리의 유흥주점 ‘로데오’ 앞에 차를 댄다. 그러면 이경백이 냉큼 올라타서 지참한 쇼핑백을 건넨다.
그 종이가 눈에 띈 건 월정을 준 지 1년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다. 종이에는 익숙한 이름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서울 강남과 북창동의 내로라하는 룸살롱과 안마시술소였다. 업체명이 못해도 100개는 돼 보였다.
익숙했던 건 이름들만이 아니었다. 업소명 옆에 적혀 있던 숫자들 역시 매우 친숙했다.
‘월정’을 새느라 바빴던 차량 주인은 그 종이를 유심히 들여다보는 이경백을 늦게서야 발견했다.
야 인마! 이건 보면 안 되는 거야!
그는 화들짝 놀라더니 이경백의 손에서 잽싸게 종이를 낚아챘다.
그 종이, 다시 말해 ‘수금 리스트’에 적힌 이름들은 화려했다.
자이언트 호텔 빅맨, 대치동 박카스, 힐탑호텔 W와 시마도, 서울스타즈호텔 어제오늘내일, 삼성동 아프리카, 렉스호텔 베리굿, 썬샤인호텔 문, 라마다호텔 소프라노….
한때 서울의 밤을 대낮같이 밝히던 ‘명소’들이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리스트는 더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