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윤석열-이재명 회담, 협치 정례화의 첫걸음 되기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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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의·정 갈등, 총리 인선 힘 모아 정치 복원하고

민감한 현안들은 양보·타협 꾀하는 지혜를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9일 전화 통화를 하고 양자회담에 합의했다. 지난 2년 동안 두 사람은 한 번도 따로 만나지 않고, 강 대 강 대치로만 일관해 왔다. 그 결과 정치는 실종되고, 국회는 표류를 거듭했다. 한국 정치의 핵심 주역인 두 사람이 비로소 얼굴을 맞대는 데 동의했으니 만시지탄이지만 정치의 복원이자 협치의 첫걸음이란 점에서 거듭 환영할 일이다.

이 대표가 줄곧 요구해 온 회담에 부정적이었던 윤 대통령의 입장이 바뀐 건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한 데다 대통령 지지율이 23%(한국갤럽)까지 떨어진 현실 때문일 것이다. 이 대표 역시 방탄국회·입법폭주 등 자신에게 씌워진 오명을 벗고, 향후 수권정당 리더의 면모를 보이려면 대통령을 만나 현안을 푸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절실한 상황이었다. 두 사람 모두 총선을 계기로 그동안의 기조를 바꿔 협치에 나서라는 민심을 수용한 결과가 이번 회담인 셈이다. 그런 만큼 두 사람은 국면 전환용 일회성 만남이 아니라, 다음 4년 국회 내내 협치가 정례화하는 시발점이라고 선언하고, 그에 걸맞은 성과를 내야 한다. 무엇보다 의·정 갈등 해결이 시급하다. 오는 25일이면 의대 교수들 사직서가 자동 수리되고, 이달 말이면 의대생 집단유급이 현실화한다. 5월 말까지 의대 증원을 반영한 대입 전형이 확정되지 않으면 입시생들도 극심한 혼란에 빠진다. 때마침 해당 대학들이 의대 증원분을 최대 50%까지 자율 감축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정부도 동의한 만큼 이재명 대표도 전향적으로 논의에 임해 의·정 갈등 타결에 힘을 보태주어야 할 것이다.

총리 인선도 중요하다. 야당 동의가 필수인 만큼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의견이나 추천을 충분히 듣고, 최대한 반영할 필요가 있다. 인선 시점은 22대 국회 개원을 맞는 5월이 적절해 보인다. 총선 민의를 반영하려면, 지금 국회가 아니라 5월 30일 개원할 다음 국회에서 새 총리 후보 지명 청문회를 열어 여야 합의로 인준하는 게 올바른 수순이기 때문이다.

회담 테이블에는 채 상병 사건 수사 의혹과 김건희 여사 관련 논란, 국민 1인당 25만원 지원금 지급 등 민감한 현안도 산적해 있다. 서로 할 말만 앞세우면 회담의 판이 깨져 안 만난 것보다 못한 결과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의견을 경청하면서, 야당의 요구를 전부 들어주기는 힘든 이유를 투명하게 설득해야 한다. 이 대표도 정쟁으로 번질 지나친 요구는 자제하고, 타협의 묘를 찾는 게 바람직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여야가 합동으로 의원총회를 열어 민생을 논의하자고까지 제안한 바 있다. 두 사람이 플라톤이 말한 ‘프루던스(Prudence: 정치적 사려)’를 최대한 발휘해 한국 정치의 전환점을 만들어 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