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원점 재논의”만 되풀이…의사들의 진짜 속내는 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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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증원 규모 절반 감축안에도 대안 없이 거부만

금주 출범 의료개혁특위 참여해 대안 제시하길

정부가 의대 증원 문제에 대해 한발 양보했지만 사정이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의사들이 구체적 대안 없이 ‘원점 재논의’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과연 증원을 논의할 마음이 있기나 한 것인지 궁금하다.

지난 19일 한덕수 국무총리는 의대 정원 2000명 증원분을 50~100% 범위에서 대학이 자율 결정하는 것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최대 1000명까지 증원 규모가 감축될 가능성이 열렸다. 그간 2000명에 대한 집착으로 운신의 폭이 거의 없었던 정부로선 큰 변화였다.

하지만 의사들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20일 입장문에서 “정부 발표는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나름대로 고심한 결과라고 평가한다”면서도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 아니기에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의료개혁특위에도 참가하지 않겠다고 했다. 전국 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도 “(대학 자율 적용이) 2000명에 대한 근거가 없다는 걸 방증하는 것이며, 적절한 조치가 없을 시 예정대로 4월 25일부터 교수 사직이 진행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의사들의 이런 태도는 사실상 증원을 완전히 무산시키려는 속내가 아니냐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 올해 증원을 미루면 내년 이후엔 정권의 힘이 빠져 어떤 일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20년에도 의사들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의대 정원 400명 증원 정책을 전공의 사직 등으로 대응해 무산시켰다. 이후 의정 협의체를 구성해 논의하겠다고 했지만 임기 말까지 아무런 결론도 내지 못했다. 정원 확대 규모에 대해 명확한 언급을 하지 못한 정부 탓도 있지만, “증원은 절대 반대”라는 의사들의 완강한 태도가 논의 진전을 막은 측면도 크다. 의사들은 그간 정부가 2000명이란 숫자에 갇혀 의사들을 악마화한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정부가 이 숫자를 포기한 마당에 여전히 ‘원점 재검토’ 주장만 하는 의사들은 이기심에 갇혀 정부를 악마화하는 것 아닌지 스스로 답해야 할 때다.

의사들은 이번 주 구성되는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를 외면만 하지 말고 참여해 주길 바란다. 올해 1000명 증원 이후 특위에서 보다 정교하게 조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도 안 된다면 특위 내에서 정원 조정 일정까지 논의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의사들은 스스로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의대생의 집단 유급과 의대 교수들의 사직 시한을 염두에 둔 얘기다. 이 개혁의 골든타임이 지나면 의료 체계는 파국이 아니라 붕괴할 가능성이 크다. 그 실상은 살릴 수 있는 환자들이 속절없이 희생당하는 비극이다. 이 같은 우려가 현실이 될 경우 책임은 의사에게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