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승까지 27년, 2승까지 또 20년…서울대 야구부 “인생을 배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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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1977년 창단해 첫 승까지 27년, 그로부터 두 번째 승리까지 20년 걸렸다. 지난 19일 경민대를 9-2로 꺾은 서울대 야구부원들이 기념 촬영하고 있다. [사진 서울대 야구부]

1977년 창단해 첫 승까지 27년, 그로부터 두 번째 승리까지 20년 걸렸다. 지난 19일 경민대를 9-2로 꺾은 서울대 야구부원들이 기념 촬영하고 있다. [사진 서울대 야구부]

7회 말 세 번째 아웃 카운트와 함께 콜드게임이 선언됐다. 선수들은 일제히 그라운드로 달려 나와 환호했다. 이들에겐 한국시리즈 우승처럼 감격스러운 승리였다. 대학야구 최약체 서울대가 20년 만에 공식경기에서 승리했다. 서울대는 지난 19일 강원 횡성베이스볼 테마파크에서 열린 한국대학야구연맹(KUBF) U-리그 B조 경기에서 경민대를 9-2로 잡았다. 1-9로 뒤진 경민대가 7회 초 공격에서 1점을 만회하는 데 그치면서, 서울대의 콜드게임 승리가 선언됐다.

1977년 창단한 서울대 야구부에는 종목 특기생인 이른바 엘리트 선수가 거의 없다. 그 결과 하릴없이 대학야구 만년 약체다. 패배를, 그것도 콜드게임 패배를 밥 먹듯 당한다. 다른 팀과 실력 격차가 커 심심찮게 퇴출설도 나온다. 창단 27년 만인 2004년 첫 승을 거두기 전까지 200전 1무 199패였다. 그해 9월 1일 동대문구장에서 열린 전국대학야구 추계리그 예선에서 송원대를 2-0으로 꺾고 역사적인 첫 승리를 신고했다. 당시 탁정근 감독 지도 아래 체육교육과 4학년이자 ROTC 장교 후보생인 투수 박진수가 완봉승을 거뒀다.

첫 승리의 감격은 짧았고, 승리 없는 시간은 다시 20년이나 이어졌다. 2010년에는 프로야구 OB 베어스와 LG 트윈스를 지도한 이광환 감독이 부임했지만, 승리를 만들어주지는 못했다. 그랬던 서울대는 최근 전력이 급상승했다. 야구 명문고를 졸업한 이른바 ‘선출’(선수 출신)이 잇따라 대입시험을 거쳐 입학했다. 2022학년도 입시에서 덕수고 내야수 이서준이 수시로, 신일고 왼손 투수 박건우가 정시로 나란히 체육교육과에 입학했다. 덕수고 투수 이정호(2013학번)와 서울고 외야수 홍승우(2017학번)가 서울대 야구부를 거쳤지만, 같은 시기에 뛴 건 아니다. 엘리트 선수 두 명이 함께 뛴 건 창단 이후 처음이다.

서울대는 이날 경기 2회 경민대에 먼저 1실점 했지만, 2회와 3회 연거푸 4점씩 뽑아 일찌감치 승기를 잡았다. 2번 타자 유격수로 나온 이서준은 타석에서 3타수 1안타 2타점으로 활약했고, 3회부터는 마운드에도 올라 3이닝을 2피안타 무실점으로 호투해 승리투수가 됐다. 서울대 정석(51) 감독은 “(지난 18일) 한국골프대와 3-3으로 비기면서 잘하면 승리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빨리 기쁨이 찾아올 줄 몰랐다”며 “상대를 자극하지 않으려고 옆 구장으로 넘어가 승리를 자축했다”고 말했다.

서울대 야구부원은 현재 23명. 전공은 체육교육과부터 건축학과·수학과·경영학과·경제학과 등 다양하다. 정 감독은 “배경과 실력은 모두 다르지만, 선수들이 직접 전국을 돌아다니며 상대 팀 전력 분석까지 하는 등 열심히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1990년대 말 국가대표로도 뛰었던 정 감독은 LA 다저스에 입단했지만, 자리를 잡지 못하고 실패를 맛봤다. 그는 “우리 선수들은 대부분 학창 시절 큰 좌절을 경험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야구부에 와서는 쓰라린 패배를 자주 경험했다”며 “선수들에게 ‘패배의 아픔이 쓰리지만, 인생을 사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해준다. 앞으로도 서울대 야구부는 승패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학업과 운동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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