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이 들리고 노래가 보이게…공연 장벽 허물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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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장애인도 즐길 수 있는 배리어프리 공연 제작에 앞장서는 고태영 보들극장 대표. 이보람 기자

장애인도 즐길 수 있는 배리어프리 공연 제작에 앞장서는 고태영 보들극장 대표. 이보람 기자

어렵게 얻은 ‘KBS 아나운서’ 직함을 입사 5년 만인 2010년 내려놨다. 연극과 뮤지컬이 좋아서였다.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에서 연극을 공부하던 2012년, 아나운서 경험을 살려 팟캐스트에서 ‘라디오 뮤지컬’을 선보였다. 인생 또 한 번의 변곡점은 팟캐스트를 하던 중 찾아왔다. “공연을 보러 가기 어려운데 덕분에 이런 작품을 즐길 수 있었다”는 한 시각장애인의 후기에 마음이 흔들렸다.

유명 창작 뮤지컬 ‘빨래’를 시각장애인도 즐길 수 있는 낭독공연으로 무대에 올린 지 10년. ‘시각장애인도 볼 수 있고 청각장애인도 들을 수 있는 극장’이란 뜻의 보들극장 대표 고태영(45)씨를 지난 19일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에서 만났다. 그는 “맨 처음 시각장애인 배우와 작업한 가요 뮤지컬 ‘당신만이’를 배리어프리 공연으로 무대에 올렸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돌이켰다. 배리어프리 공연은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 통역이나 자막,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 해설 등이 함께 제공되는 방식의 공연이다.

고씨는 “공연이 끝난 뒤 이를 즐긴 장애인분들이 손을 꼭 잡아주며 ‘뮤지컬을 처음 봤다. 너무 좋았다’고 말해줬다”며 “당시 출연한 시각장애인 한 분은 장애를 얻은 지 얼마 안 된 상황이었는데 ‘공연을 준비하며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그때 ‘이 일을 계속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기존 작품뿐 아니라 창작 뮤지컬도 직접 제작했다. 대표작이 ‘아빠가 사라졌다’다. 그는 “협업 제안을 거절당하기도 하고 기존 작품을 수정하는 데 어려움도 많아 아예 장애인들을 위한 작품을 만들어보자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공연의 주요 소품이나 무대를 직접 만져 볼 수 있는 ‘터치 투어’를 진행하거나, 글자에 다양한 시각 효과를 준 ‘키네틱타이포그래피’ 영상을 무대에 올리는 등 새로운 시도도 한다. 장애·비장애인이 함께 즐기는 공연도 준비 중이다.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도 주요 사업 중 하나다.

지난 10년간 장애인 인권이 많이 신장했다. 그래도 여전히 장애인은 문화생활 측면에서는 약자다. 서울문화재단의 ‘2023년 서울시민 문화향유 실태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간 비장애인의 오프라인 문화예술 관람경험률은 69.1%지만, 장애인은 39.6%다. 고씨는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문화·예술활동 차별 금지 조항이 있지만, 공연 분야에서 이를 보장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은 전무하다”며 개선을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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