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동 변수에…올 원화값 하락폭, 금융위기 때보다 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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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에 요격돼 사해 인근에 떨어진 이란 탄도미사일 일부. 이스라엘과 이란이 제한적 본토 공습을 주고받으며 중동 정세가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 [AP=연합뉴스]

지난 20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에 요격돼 사해 인근에 떨어진 이란 탄도미사일 일부. 이스라엘과 이란이 제한적 본토 공습을 주고받으며 중동 정세가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 [AP=연합뉴스]

“구리·니켈 같은 원자재 수입을 많이 하는데 환율 때문에 머리가 아픕니다. 여기에 유가까지 뛰니 비용 부담이 배로 커졌습니다.” 자동차 부품을 제조하는 중소기업 대표인 장모(47)씨는 요즘이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보다 더 힘겹게 느껴진다. 그는 “수입 비용은 물론 인건비도 뛰었는데 하청받은 부품 단가는 변함이 없다”며 “결국 직원을 (작년 대비) 40% 줄였다”고 말했다.

올해 들어 달러당 원화값은 7% 넘게 떨어지고, 국제유가는 최대 16% 상승했다. 특히 최근 들어 중동·미국 등 변수가 커지면서 유가와 환율 모두 크게 들썩이는 양상이다. 수입액 부담과 직결되는 ‘이중고’가 이례적으로 나타나면서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도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다.

김영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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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19일 기준 달러당 원화값(1382.2원)은 지난해 말(1288원·12월 28일)과 비교하면 7.3% 내렸다(환율은 상승). 미국 경제 호조와 물가 고공행진, 중동 정세 불안 등에 따른 ‘강달러’ 여파다.

이는 금융위기 당시보다 높은 하락 폭이다. 달러당 원화값은 2008년, 2009년 같은 기간엔 6.9%, 5.8%씩 떨어진 바 있다. 4월 들어 환율 변동성은 더 커졌다. 16일 장중 한때 달러당 1400원을 찍으면서 외환당국이 구두개입에 나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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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유가도 들썩이긴 마찬가지다. 한국석유공사 등에 따르면 지난 19일(현지시간) 서부텍사스유(WTI) 선물 가격은 배럴당 83.14달러로 지난해 말(71.65달러·12월 29일)보다 16% 뛰었다. 브렌트유 선물가와 두바이유 현물가도 같은 기간 각각 13.3%, 13.8% 올랐다.

상승 배경엔 지정학적 불안이 있다. 특히 중동 분쟁에 불이 붙은 이번 달 평균 유가는 지난달 대비 4~5달러가량 뛰었다. 브렌트·두바이유는 배럴당 90달러 선을 넘기도 했다. 이란·이스라엘이 서로 보복에 나선 가운데 ‘산유국’ 이란이 확전 태세에 접어들면 유가 상승 장기화가 불가피하다.

김영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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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고환율·고유가는 중동 긴장 속에 미국의 금리 인하 시점이 미뤄지면서 발생한 이례적 상황”이라면서 “중동 사태가 진정되면 유가는 다소 떨어질 수 있지만, 원화값은 당분간 달러당 1350원 선을 지킬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환율·유가 ‘동반 고공행진’에 한국 경제호(號)가 짊어진 짐도 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유가와 환율이 10%씩 오르면 국내 기업 원가는 2.82% 상승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원자재 등을 수입하는 경우가 많은 제조업(4.42%)이 서비스업(1.47%)보다 원가 상승 폭이 컸다.

물가 상승 압력은 커지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수입물가지수는 올해 들어 1~3월 내내 꾸준히 올랐다(전월 대비). 한은은 이달 수입물가도 환율·유가를 감안하면 추가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이러한 수입물가 상승은 생산자·소비자 물가에 시차를 두고 영향을 미친다. 연초 L당 1560원대까지 떨어졌던 국내 주유소의 휘발유 평균 판매가는 18일부터 1700원대로 다시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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