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명 원칙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숫자에 매몰된 의정 갈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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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철옹성’ 같던 의대 증원 2000명에 대해 ‘자율 조정’이라는 해법을 마련했지만, 의정 갈등 상황엔 변화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의과대학 학장들이 모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는 21일 대정부 호소문에서 “(의대 정원 자율 증원안이) 숫자에 갇힌 대화의 틀을 깨는 효과는 있었지만, 갈등이 첨예한 상황에서 국가 의료 인력 배출 규모를 대학교 총장의 자율적 결정에 의존하는 것 또한 합리적이지 않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의 근본적 입장 변화를 기다려 왔지만, 대한민국 의료 붕괴를 막을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내년 입학 정원을 일단 동결하고 2026학년도 이후의 정원 산출과 의료 인력 수급을 결정할 거버넌스 구축을 위해 협의체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자율 증원 방안은 지난 19일 한덕수 국무총리가 6곳 국립대 총장들의 건의를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발표했다. 정부가 제시한 2000명 의대 증원 규모를 각 대학이 50~100% 조정할 수 있게 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정부 발표 이튿날인 20일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입장문을 통해 중재안을 거부했다. 의협 비대위는 “고심의 결과라고 평가한다”라면서도 “근본적인 해결방법이 아니기에 받아들일 수 없다”며 ‘원점 재검토’를 요구했다. 김택우 의협 비대위원장은 “현실적으로 어떤 생각에서 발표됐는지 잘 모르겠다”라며 “합리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25일부터는 사직서를 낸 의대 교수 중 이탈 사례가 나올 것으로 예상돼 두 달 넘게 이어지는 의료 공백 상황은 더 악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19일 오후 서울의 한 의과대학 앞으로 시민들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19일 오후 서울의 한 의과대학 앞으로 시민들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의정 갈등의 해법이 마련되는 듯했지만, 숫자에 매몰됐던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형국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의료계 안팎에서는 국립대 9곳(사립대 제외 시)이 모두 증원 규모의 50%를 책정할 경우, 의대 증원 규모는 2000명에서 1600명 정도로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20일 SNS에 자율 증원안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채 “대전협 비대위는 업무개시 명령과 진료유지 명령에 대응하기 위해 행정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고만 적었다. 정부의 기존 행정명령에 법적 대응을 예고하면서 정부의 제안을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한 것으로 풀이된다. 의사 커뮤니티엔 “내년만 자율 모집인데 해결책이 될 수 있나” “총장 자율에 맡길 사안을 두고 의사들을 악마화했냐” 등 부정적 반응이 대부분이다.

19일 오후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 한덕수 국무총리의 의대증원 관련 특별 브리핑이 생중계되고 있다. 뉴시스

19일 오후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 한덕수 국무총리의 의대증원 관련 특별 브리핑이 생중계되고 있다. 뉴시스

전국의과대학교수 비대위는 지난 19일 정부에 “25일 전에 의대 증원 원점 재논의를 천명하고 대화의 장을 만들어달라”라며 “적절한 조치 없을 시 예정대로 교수 사직이 진행될 것”이라고 경고한 상태다. 김성근 의협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은 “사직서 수리 여부와 상관없이 사직하겠다는 강경한 교수들도 많다. 의대 소속 병원에서 교수들이 거의 탈진 상태에 이르고 있는데 당직을 많이 서는 분들은 일주일에 3일씩 중환자들을 보고 있어 5월까진 버티지 못하겠다고 한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고 말했다. 현재 각 병원서 야간 당직과 진료, 수술 등을 전담하는 의대 교수들이 병원을 떠나면 정부의 비상체계로는 버티기 힘들 수 있다는 게 의료계 우려다.

정부는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에 노연홍 한국바이오제약협회장을 내정하고 다음 주 첫 회의를 열 계획이다. 하지만, 의협 비대위는 “구성과 역할에 대한 정의가 제대로 돼 있지 못한 특위”라며 “제대로 의견이 반영되지 못하는 위원회가 된다면 참여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했다. 의협은 정부와 의사단체가 일대일로 증원 논의에 집중하는 협의체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이날 의사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회의를 열고 의료계와 소통 노력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조규홍 본부장(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번 주에 의료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해 의료개혁 관련 다양한 이슈에 대해 본격적인 사회적 논의를 해갈 것”이라며 “의료계에서 꼭 참여해 의견을 제시해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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