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관리소장 빨래까지 합니다"…갑질 시달리는 아파트 경비원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해 3월 20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아파트 경비원들이 관리소장의 '인사 갑질'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연합뉴스

지난해 3월 20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아파트 경비원들이 관리소장의 '인사 갑질'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연합뉴스

아파트 경비원 등 경비·보안·시설관리·환경미화 노동자들이 여전히 ‘갑질’에 시달리며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단체 직장갑질911은 지난해 1월 1일부터 올해 4월 15일까지 접수된 이메일 상담 요청 중 아파트 등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상담 사례 27건을 21일 공개했다. 대부분 관리소장·입주자 등에게 당한 괴롭힘을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아파트 경비원 A씨의 경우 업무와 무관한 부당한 업무 지시를 받았다고 토로했다. 관리소장의 사적인 빨래 지시도 그 중 하나였다. 참다못한 A씨는 노동청에 진정을 넣었지만 괴롭힘을 인정받지 못한 채 사건 종결됐고, 이후 회사는 그와의 계약을 만료했다.

또 다른 경비원은 “관리소장의 끝없는 갑질과 폭언, 부당업무 지시 때문에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다”며 “소장은 고압적인 자세로 업무를 지시하고, 툭하면 직원들을 모아놓고 내보낸다며 갑질을 한다”고 호소했다. 그는 “신고도 해봤지만 저 혼자 계약기간 종료로 잘렸다”고 했다.

한 여성 미화원은 “미화반장이 뒤에서 끌어안거나 손을 잡는 등 성추행을 수십차례 했다”며 “저는 가해자 뺨을 치며 격렬히 거부하고 이 사실을 본사에 알리기도 했으나, ‘알려지면 여사님도 좋을 것 없다’며 가해자도 해고할 테니 저도 퇴사하라는 요구가 왔다”고 털어놨다.

이들 대부분은 초단기 계약을 맺는 탓에 갑질에 더욱 취약하다. 2019년 발간된 ‘전국 아파트 경비노동자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경비원 94%가 1년 이하 단기 계약을 맺고 일하고 있었다. 3개월 계약도 21.7%였다. 이 때문에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항의하지 못하거나, 목소리를 냈다가 근로계약이 종료되어 버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직장갑질119 임득균 노무사는 “다단계 용역계약 구조에서 경비노동자들은 갑질에 쉽게 노출된다”며 “공동주택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갑질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근로기준법 내 직장내 괴롭힘의 범위를 확대하고, 단기 계약 근절·용역회사 변경 시 고용승계 의무화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 3월 서울 강남구 대치동 선경아파트에선 경비원 박모씨가 관리소장의 갑질을 호소한 뒤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직장 동료들은 노조를 만들어 가해자로 지목된 관리소장의 사과와 해임을 요구했다. 그러나 입주자대표회의와 관리사무소는 지난해 12월 31일 경비 용역업체를 교체하며 경비원 76명 중 44명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현재 노조는 아파트 측의 일방적인 해고 통보에 맞서 지난 1월 10일부터 복직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의 요구도 초단기 계약 시정 등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