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투어리즘?…7억짜리 순종 황제 조형물, 4억 들여 철거하는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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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황제어가길 내 조형물 사진. [사진 대구 중구]

순종황제어가길 내 조형물 사진. [사진 대구 중구]

대구 중구에 있는 순종 황제 조형물(높이 5.5m)이 건립한 지 7년 만에 철거된다.

19일 대구 중구에 따르면 중구는 지난 17일 공공조형물 심의위원회를 열고, 위원 11명 전원 찬성의견으로 '순종황제 어가길'에 있는 조형물 철거를 결정했다. 이에 따라 이달 안으로 조형물을 철거하고, 현재 2차선 도로인 달성공원 진입로를 왕복 4차선으로 원상 복구하는 공사를 추진한다. 여기에는 4억원 정도 들어간다.

중구 관계자는 “순종 조형물을 두고 역사 왜곡 논란과 함께 통행로가 좁아졌다는 민원도 많았다”며 “올 연말까지 진입로 확장을 마무리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1909년 대구 순행길 오른 순종 황제  

1909년 1월7일 순종황제가 대구역에 온다는 소식에 3만명의 인파가 몰린 사진이 순종황제어가길에 걸려 있다. 대구=백경서 기자

1909년 1월7일 순종황제가 대구역에 온다는 소식에 3만명의 인파가 몰린 사진이 순종황제어가길에 걸려 있다. 대구=백경서 기자

조선 마지막 임금인 순종이 대구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1월 7일 오후 3시 25분 서울에서 8시간가량 궁정열차를 타고 대구역에 도착했다. 대구역에는 순종황제를 보기 위해 3만명이 몰렸다.

당시 대구 주민은 순종이 지나는 길 앞에 엎드려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진다. 각자 이불·옷 등 집에 제일 좋은 물건을 들고 나와 순종이 지나는 길바닥에 깔았다고 한다. 순종은 이날 하루 일본 제복을 입고 대구역에서 달성토성까지 2.1㎞를 행차했다. 태극기가 집집이 게양됐고, 야간에는 시가지에서 밤늦도록 등을 들고 걷는 제등행렬이 이어졌다.

당시 순종은 대구를 시작으로 부산·마산을 차례로 남순행(南巡幸)을 한 뒤 12일 다시 대구역으로 와서 서울로 돌아갔다. 역사적으로 순행의 의미는 지방 사정을 감찰하고, 백성의 고통을 살피기 위함으로 알려졌다.

108년 뒤인 2017년 4월, 순종의 남순행이 중구 ‘순종황제 어가길’로 탄생했다. 대구 중구가 2013년부터 2017년 4월까지 70억원을 들여 대구 중구 수창동~인교동 2.1㎞ 일대에 관련 거리벽화·남순역사공간을 만들었다. 이 사업의 일환으로 달성공원에는 7억원을 들여 순종 조형물을 건립했다.

시민단체 “일본 선전 방문이었다” 지적

이토 히로부미가 순종을 모시고 서북순행을 하던 모습. 순종은 남순행 후 약 한달 뒤 서북순행을 했다.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이토 히로부미가 순종을 모시고 서북순행을 하던 모습. 순종은 남순행 후 약 한달 뒤 서북순행을 했다.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그러자 일부 시민단체가 반발했다. 민족문제연구소 대구지부 측은 “당시 남순행은 일반적인 황제의 순행이 아닌, 반일 감정을 무마하고 일본에 의해 철도건설 등 경제발전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며 “민심을 다스리되, 결국 일본에 복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선전해야 했던 비극적인 여행이며 반역사적 행위였다”고 주장했다. 당시 순종의 남순행길에는 조선 초대 통감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동행했다.

반면 중구는 순종어가길 조성사업이 도시 활력 증진사업이자, 다크투어리즘(Dark Tourism)이라고 주장했다. 다크투어리즘은 재난이나 비극적 사건이 일어났던 곳을 찾아 체험하면서 교훈을 얻는 여행이다. 중구는 당시 “치욕적인 역사도 우리 역사이기에 항일정신을 다크투어리즘으로 승화시켰다. 아픈 기억을 반성과 교훈으로 삼아 역사를 재인식하기 위해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후 7년간 조형물 인근에 3000가구 이상의 공동주택이 건축되고, 상설 새벽시장이 활성화되는 등 유동인구가 늘어나면서 안전사고 위험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류규하 대구 중구청장은 “조형물 철거 후 진입로 확장공사 전까지, 안전 조치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주민 편익과 조화로운 공공디자인을 위해 더욱 힘쓰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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