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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 잠긴 사막의 경고…"25년 뒤 세계소득 5분의 1 줄어들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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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폭우로 물에 잠긴 두바이 도로 위를 한 시민이 걸어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폭우로 물에 잠긴 두바이 도로 위를 한 시민이 걸어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사막 위에 세워진 도시가 비에 잠겼다. 글로벌 금융·교통 허브 도시로 알려진 두바이 얘기다. 전례 없는 폭우에 도로는 강으로 변했고, 학교는 문을 닫았다.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공항인 두바이 국제공항은 활주로가 물에 잠기며 마비됐다.

기후 리스크가 전 세계 경제 시스템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 국가 인프라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폭염과 폭우 등이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황 부진으로 인한 식량 물가 상승 추세도 심상치 않다.

극한기상의 두 얼굴…중동은 홍수, 아프리카는 가뭄에 신음

두바이에 내린 폭우로 고속도로가 물에 잠겼다. EPA=연합뉴스

두바이에 내린 폭우로 고속도로가 물에 잠겼다. EPA=연합뉴스

가장 현실적인 위협은 극한기상으로 인한 물리적 기후 리스크다. 특히 올봄에는 많은 국가가 예측 가능한 수준을 뛰어넘는 이상고온과 폭우에 시달리고 있다. 중동 국가인 아랍에미리트(UAE)에서는 최근 75년 관측 역사상 가장 많은 양의 비가 내렸다. 15~16일(현지시각)에 24시간 동안 142㎜ 이상의 비가 사막 도시인 두바이에 쏟아졌는데, 이는 보통 1년 반 동안 내리는 비의 양이다.

덥고 건조한 사막 기후인 두바이에서는 평소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다. 이에 폭우에 대응할 기반 시설이 부족했고, 전례 없는 양의 비가 쏟아지면서 홍수 피해가 커졌다는 평가다. 도시 시스템이 며칠 동안 마비되면서 폭우로 인한 경제적 피해도 클 것으로 추산된다. 보험 업체인 폴리시바자르의 니라즈 굽타 CEO는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전례 없는 보험 청구 건수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며 “보험사들조차도 현재 이러한 청구 규모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15일 폭우로 홍수 피해를 입은 파키스탄의 한 마을에서 구호단체들이 보트로 시민들을 태우고 이동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15일 폭우로 홍수 피해를 입은 파키스탄의 한 마을에서 구호단체들이 보트로 시민들을 태우고 이동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해 홍수로 인해 300억 달러(41조 1930억 원)의 경제적 피해가 발생한 파키스탄에서도 올해도 큰 비가 내리면서 또다시 홍수 피해를 겪어야 했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16일까지 사흘간 이어진 폭우로 최소 63명이 사망했다. 환경 전문가인 라파이 알람은 “4월에 이렇게 많은 비가 내린 것은 이례적”이라며 “이런 일은 기후 변화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짐바브웨의 옥수수 농장이 가뭄으로 인해 피해를 본 모습. 신화통신=연합뉴스

짐바브웨의 옥수수 농장이 가뭄으로 인해 피해를 본 모습. 신화통신=연합뉴스

반면 봄 폭염과 가뭄에 시달리는 국가들도 있다. 아프리카 잠비아는 오랜 가뭄으로 식량난이 심각해지자 지난 2월 말에 국가재난사태를 선포했다. 하카인데 히칠레마 잠비아 대통령은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 올해 최악의 가뭄을 겪고 있다”며 “비가 오지 않아 농업 부문이 황폐해져 660만 명이 식량 구호가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말라위와 짐바브웨 등 주변 국가들도 뒤이어 국가재난사태를 선포하는 등 가뭄 피해가 남부 아프리카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현실화된 기후플레이션 “재정으로 해결 안 돼”

초콜릿 원료인 코코아 가격이 연일 사상 최고치를 기록 중인 14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초콜릿 등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초콜릿 원료인 코코아 가격이 연일 사상 최고치를 기록 중인 14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초콜릿 등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상기후로 인한 물가 상승 압력도 어느 때보다 크다. 기후플레이션(Climateflation)이라는 신조어까지 나올 정도다. 최근에는 커피와 설탕, 카카오 등 주요 작물 산지들이 작황 부진을 겪으면서 가격이 치솟고 있다. 인스턴트 커피에 많이 들어가는 로부스타 커피 가격(런던 로부스타 선물 기준) 지난 12일 t(톤)당 3948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앞서 세계 1위 로부스타 생산국인 베트남 농업부는 극심한 가뭄 때문에 2023∼2024시즌 커피 생산이 20%가량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초콜릿의 원료인 코코아 선물 가격도 1년 전의 3배 수준으로 급등했다. 이에 한국에서도 제과업체 등이 원자재 물가 상승을 이유로 초콜릿 제품 가격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 사과 등 국내에서 재배하는 농산물 물가 역시 급격히 오르는 추세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2일 기자간담회에서 “중앙은행이 제일 곤혹스러운 점은 사과 등 농산물 가격이 높은 것은 기후변화가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라며 “기후변화로 작황이 변했는데 재정을 쓴다고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후플레이션으로 인해 앞으로 10년간 식품 물가가 연간 최대 3%포인트씩 증가할 수 있다는 해외 연구 결과도 있다. 이렇게 기후변화로 인한 물가 상승 압력이 계속되면 실질적인 소득의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25년 뒤 기후변화로 세계 소득 5분의 1 감소”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기후변화로 인한 물리적 기후 리스크가 25년 뒤에는 전 세계 소득의 5분의 1가량을 감소시킬 것이라는 경고도 나왔다.

독일 포츠담 기후영향연구소(PIK)는 최근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에서 기후변화로 인한 전 세계 연간 피해액이 38조 달러(5경 2383조 원)에 달할 것으로 분석했다. 이는 전 세계 소득의 19%에 이르는 액수다. 연구팀은 전 세계 1600개 지역에 대한 40년치 데이터를 토대로 모델링 분석을 통해 기후변화가 경제 성장 및 지속성에 미치게 될 영향을 평가했다. 여기에는 기후변화로 인한 기온 상승은 물론 폭우, 태풍, 산불 등 다양한 기후재난의 피해액이 포함됐다.

한국의 경우 소득이 14%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측됐다. 미국·독일(11%), 일본(12%)보다 기후변화로 인해 경제적으로 더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뜻이다. 중동의 카타르는 소득이 31% 줄어 가장 큰 피해를 볼 것으로 추산됐고, 이라크(30%)·파키스탄(26%) 등이 뒤를 이었다.

연구를 주도한 PIK 과학자 막시밀리언코츠는 “북미와 유럽을 포함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큰 폭의 소득 감소가 예상되며, 남아시아와 아프리카가 받는 영향이 가장 클 것”이라며 “기후 변화가 농업 생산량과 노동 생산성, 인프라 등 경제 성장과 관련된 다양한 측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결과”라고 말했다.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폭우 등 물리적 기후 리스크로 인한 피해는 이미 국내에서도 현실화되고 있다”며 “단기적으로 기후 리스크에 대한 예측의 정확도를 높여서 기후변화에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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