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정부 “의대 증원 50~100% 자율조정 수용”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86호 01면

2025학년도 의대 증원 규모가 당초 정해진 2000명보다 줄게 됐다. 정부가 내년도에 한해 의대 신입생 모집 인원을 증원 인원의 50~100% 범위에서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게 해달라는 국립대 총장들의 건의를 수용하면서다. 32개 의대가 모두 50%로 조정할 경우 증원 규모가 1000명으로 줄지만 일부 대학은 증원 인원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방침이어서 내년도 의대 증원 규모는 1500명 내외가 유력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는 정부가 줄곧 고수해 온 ‘2000명 증원’ 원칙에서 한발 물러선 조치로 평가된다. 하지만 의료계는 “수용 불가”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의사 단체는 “무리한 증원이었음을 자인한 셈”이라고 반발했고 전공의들도 “원전 재검토가 아니면 의미가 없다”며 단체행동을 접을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19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한 뒤 특별 브리핑에서 “대학별 교육 여건을 고려해 올해 의대 정원이 확대된 32개 대학 중 희망하는 경우 증원된 인원의 50% 이상 100% 범위 안에서 2025학년도에 한해 신입생을 자율적으로 모집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고 밝혔다.

이는 강원대·경상국립대·경북대·제주대·충남대·충북대 등 6개 국립대 총장의 전날 건의를 정부가 받아들인 것이다. 한 총리는 “의료 공백 피해를 이대로 방치할 수 없다는 점, 2025학년도 입시가 얼마 남지 않아 예비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불안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점, 의대 학사 일정의 정상화가 매우 시급하다는 점 등을 고려해 국립대 총장들의 건의를 전향적으로 수용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정부 “열린 자세로 더 논의”…의료계 “무리한 증원 인정한 셈”

19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의대 증원 관련 특별 브리핑에서 한덕수 국무총리가 국립대 총장들의 ‘의대 증원 규모 자율적 조정’ 건의에 대한 정부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한 총리, 한사람 건너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뉴스1]

19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의대 증원 관련 특별 브리핑에서 한덕수 국무총리가 국립대 총장들의 ‘의대 증원 규모 자율적 조정’ 건의에 대한 정부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한 총리, 한사람 건너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뉴스1]

정부는 그러면서도 의사 단체와 전공의들이 주장하는 원점 재검토나 1년 유예안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일부 정치인들과 의료계에서 원점 재검토 또는 1년 유예를 주장하고 있지만 필수의료 확충의 시급성과 2025학년도 입시 일정의 급박성 등을 봤을 때 이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도 “이번 발표는 (일정이) 워낙 급박해 올해에만 한정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각 대학은 오는 30일까지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에 모집 인원과 전형 방법 등이 포함된 입시 계획을 제출하도록 돼있다.

정부는 의료계를 향해서도 의대 정원 조정 방침이 유연한 변화라는 점을 강조하며 대화에 나서달라고 요청했다. 이 부총리는 “의대 정원 부분은 의료계에서 과학적 근거에 따른 통일된 안을 가져온다면 (정부도) 열린 자세로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한 총리도 “대학 총장들의 충정 어린 건의와 이를 적극 수용한 정부의 결단을 의료계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 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발표에도 의료계는 “애초 무리하게 증원을 밀어붙였음을 인정한 것”이라며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의협) 차기 회장은 이날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총장들이 증원을 자신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줄여달라고 해서 조정한다는 건 정책이 정교하지 못하고 고무줄 같다는 걸 의미할 뿐”이라며 “교육은 국가 백년대계인데 이렇게 결정해선 안 된다. 의대 증원 정책이 주먹구구식이었다는 걸 보여주는 방증”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 정도 수준으로 전공의들이 돌아올 가능성은 1%도 없다”고 내다봤다.

주수호 전 의협 회장도 페이스북 글에서 “기껏 생각한다는 게 허수아비 총장들 들러리 세워 몇백 명 줄이자는 거냐”며 “‘잘못된 정책 조언에 따른 잘못된 결정이었다. 원점 재검토하겠다’라고 하는 것밖에는 출구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교수들도 냉소적인 반응이다. 한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몇백 명 줄어든 수준으로는 전공의들이 절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며 “그동안 정부가 의사들을 악마로 만들면서 갈등의 골이 너무 깊어졌다”고 말했다.

이날 새벽까지도 응급실 당직을 섰다는 이 교수는 “응급실 전공의가 열 명 빠져나간 뒤 이젠 진료 역량이 한계에 다다랐다. 다음 달을 넘기기가 쉽지 않은 현실을 감안하면 지금은 정부의 일방적 발표가 아니라 협상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안타까워했다.

49명에서 200명으로 증원 규모가 가장 컸던 충북대의 한 의대 교수는 “200명에서 50% 줄어도 100명으로, 이들을 교육할 여건을 맞추기가 여전히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며 “정부의 희망 고문일 뿐 달라질 건 없다”고 말했다.

39개 의대가 참여하는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도 “정원이 줄어도 교수들의 사직서 제출이나 진료 축소 철회는 없을 것”이란 입장이다. 전의교협 소속의 한 교수는 “애당초 증원 규모도 과학적 근거로 나온 숫자가 아닌 만큼 별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전국의대교수 비대위 관계자도 “정부가 줄곧 주장해 온 과학적 증원 논리가 무너진 것”이라고 비판했다.

집단사직한 지 두 달째 접어든 전공의들도 요지부동인 건 마찬가지다. 서울 ‘빅5’ 병원의 한 사직 전공의는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의 기본 입장은 전면 백지화이기 때문에 이번 조치로 병원에 돌아갈 일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의사만 가입할 수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이날 “2000명 증원의 정당성이 무너졌다. 졸속 행정을 비판하자” “정부는 출구전략으로 생각하겠지만 의료계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등의 글이 올라왔다.

그런 가운데 정부는 다음주 중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위를 출범하고 첫 회의를 열 예정이다. 특위는 필수의료 중점 투자 방안 등 의료개혁 이슈를 두루 논의할 방침이지만 의협과 대전협 등 의료계 단체들이 참여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