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고 장기화 우려…주요 변수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 여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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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6호 12면

한국경제 긴급 진단

부산항 신선대부두에 컨테이너가 가득 쌓여 있다. 지난달 우리나라 수출이 6개월 연속 증가하며 10개월 연속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뉴스1]

부산항 신선대부두에 컨테이너가 가득 쌓여 있다. 지난달 우리나라 수출이 6개월 연속 증가하며 10개월 연속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뉴스1]

가뜩이나 고(高)금리·고환율로 고통을 받고 있는 한국경제가 이스라엘과 이란의 무력 충돌이라는 변수를 만나 불확실성이 커지게 됐다. 그나마 안정세를 보이던 유가마저 상승세로 돌아서면서 고유가까지 ‘3고’가 한국경제를 괴롭힐 것이라는 분석이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중동의 무력 충돌이 계속된다면 고유가, 고환율 상황이 진정되기 힘들다”며 “고유가가 이어지면 금리 인하 시점도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이 현재 한국경제 상황에서 가장 우려하는 건 유가다. 한국은 원유 의존도가 높아 유가 상승의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특히 한국의 중동 원유 의존도는 2021년 59.8%까지 하락했지만, 다시 반등해 지난해 71.9%에 달했다. 홍기용 인천대 세무회계학과 교수는 “중동 지역 석유 공급이 줄어들면서 고유가 상황이 당분간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석유화학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고유가가 이어지면 석유화학 제품의 기초 원료인 나프타 등의 가격 인상과 수급 불안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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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분위기가 좋은 반도체 산업도 안심할 수 없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3월 반도체 부문 수출액은 지난해 동기 대비 33.9% 늘어 난 116억9000만 달러로 추산된다. 인공지능(AI) 시장 성장, 휴대폰·PC 등 정보통신(IT) 기기 수요 회복으로 반도체 수요가 늘어나면서 지난 2022년 6월 이후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중동 사태가 길어지면서 글로벌 경기 침체로 반도체 제품 수요가 감소해 반도체 산업이 다시 불황으로 전환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dcdcdc@joongang.co.kr

그래픽=이현민 기자 dcdcdc@joongang.co.kr

이런 가운데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할 수 있다는 전망마저 나온다. 강천구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초빙교수는 “사태가 장기화하면 2022년 8월 이후 2년 만에 다시 배럴당 100달러 이상을 넘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고유가가 물가를 끌어 올리면 주요국의 기준금리 인하 계획도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유가 하락으로 물가 상승률이 둔화하고 있었는데 이번 사태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며 “미국의 통화정책 전환이 당분간 어려워졌다”고 설명했다. 오재영 KB증권 연구원도 “지정학적 리스크가 유가를 끌어올려 2분기로 예상됐던 미국의 금리 인하 시점이 하반기로 밀릴 것”이라고 관측했다.

고금리가 이어지면서 중소기업은 이미 자금조달에 난항을 겪고 있고, 건설사는 생존을 걱정할 처지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기업은 전체의 44.4%로 2022년보다 7%포인트 증가했다. 이자보상배율은 영업이익을 이자 비용으로 나눈 금액으로, 1 미만이면 경영 활동을 통해 이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금리 인하 시점이 더 뒤로 밀리면 이자 내기도 버거운 기업이 계속 늘며 우리 경제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런 와중에 원화 가치도 당분간 약세(환율 상승)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는 “(달러당 원화 가치는) 지금보다 더 내려 재작년 저점인 1440원 선이 깨질 수도 있다”며 “미국이 고금리 기조를 더 길게 유지하려 하는 상황에서 중동 사태가 터지는 등 두 가지 악재가 동시에 발생한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란이 이스라엘을 공습한 13일 전후로 7거래일간 달러당 원화 가치 하락 폭은 3.93%로 중국 위안화(0.05%)나 일본 엔화(1.76%)보다 유난히 하락 폭이 컸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한국은 수출 의존도가 높아 글로벌 경기에 민감하다 보니 원화 가치 하락 폭이 다른 통화 대비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원화 가치가 내리면 통상 달러화로 거래를 하는 수출시장에서는 호재로 작용한다. 가격 경쟁력이 생기는 데다 달러로 벌어들인 수익을 원화로 환산하면 기업의 수익 개선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투자 확대나 임금 인상으로 가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해외시장에서 한국과 경쟁하는 일본·중국의 통화 가치도 동반 하락하고 있어 수출 증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순기능보다는 고유가와 맞물려 원유나 반도체·2차전지 등 기업들의 원자재 수입 부담이 커지는 역기능이 우려된다.

다만, 원화 가치는 정부가 ‘경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1400원’ 선을 지키기 위해 적극 나설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1300원대에서 유지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다. 기재부와 한은은 16일 공식 구두 개입에 나선 데 이어 이튿날에는 한·미·일 재무장관이 공동으로 원화와 엔화 통화 가치 급락에 우려를 표했다. 유진이 SK증권 이코노미스트는 “한은이 구두개입에 나서는 등 1400원 선을 방어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며 “중동 사태가 이어져도 1400원 아래로 내려갈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여부가 ‘3고 국면’ 장기화 여부를 결정할 주요 변수라고 입을 모은다. 이 해협은 전 세계 석유 소비량의 21%가 통과하는 석유 수출의 핵심 수로다. 이란은 4차 중동 전쟁이 한창이던 1973년 이곳을 봉쇄, 오일쇼크를 일으킨 바 있다. 김혁 한국외대 페르시아어·이란학과 교수는 “(오일쇼크) 당시 유가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세계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며 “결국 호르무즈 해협의 안정성이 유지되느냐에 따라 유가와 환율의 향방도 정해질 것”으로 예측했다. 이란이 마지막으로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 건 1979년이었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당국이 외환시장 안정화에 힘쓰면서 에너지 공급망 관리로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학균 센터장은 “일반적 처방은 금리를 낮추는 것이지만 현재 미국 금리가 한국보다 높아 한은이 선제적으로 금리를 낮추기는 힘든 상황”이라며 “정부가 재정정책으로 해결안을 모색하는 한편, 미국·일본 등과 외환시장 안정을 목표로 한 국제 공조 강화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석유 수입에서 중동에 대한 높은 의존도를 낮추면서 국제 공조 강화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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