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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정부 첫 증원 축소 발표, 의사들도 협상 응해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86호 30면

의대 증원분 50~100% 내 대학 자율 결정 허용

“합리적 안 제시하면 대화”…추가 조정 여지도

의사들도 ‘원점 재검토’ 요구 접고 대화 나서야

정부가 의대 정원 증원 규모를 당초 발표한 2000명에서 최대 절반까지 줄일 수 있다고 발표했다. 지난 2월 초 정원 증원 규모를 발표한 이후 처음으로 구체적인 조정안을 제시한 것이다. ‘원점 재검토’만 고집해온 의사들도 이번 발표를 계기로 정부와의 대화에 적극 나서기를 기대한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어제 오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한 뒤 브리핑을 통해 “국립대 총장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2025학년도에 한해 의대 정원이 늘어난 32개 대학이 증원분의 50~100% 안에서 신입생을 자율적으로 모집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고 밝혔다. 앞서 6개 거점 지방 국립대 총장들은 18일 의대 증원 규모를 대학이 자율적으로 적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정부에 건의했다. 정부가 이를 전향적으로 받아들여 정원이 늘어난 대학 전체에 자율 모집을 허용키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내년 의대 정원 확대 규모는 상당 부분 줄어들 가능성이 커졌다.

정부는 그간 2000명 증원은 바꿀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전공의 집단 사직이 길어지고, 환자들 고통이 심해지자 “증원 숫자에 집착하지 말라”는 각계의 요청이 빗발쳤지만 요지부동이었다. 윤석열 대통령부터 “더 합리적인 대안을 가져오면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정부가 완고했던 증원 숫자에 대해 양보의 뜻을 밝힌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물론 먼저 의료계와의 대화를 통해 증원 규모를 조정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정원 증원분을 대학별로 배분해 배수진을 친 마당에 정부가 움직일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비록 내년에는 2000명 증원으로 되돌리겠다고 밝혔지만, 의료계와의 협의 결과에 따라 얼마든지 규모를 조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가 시급히 출범해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부의 입장 변화에도 의사들은 아직 싸늘한 반응이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관계자는 “의대 정원이 처음부터 근거를 기반으로 책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50% 줄이든 60% 줄이든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당사자인 전공의들도 “기본 입장은 전면 백지화이기 때문에 달라질 것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하지만 정부가 완전히 백기를 들어야만 한다는 생각은 의사들의 오만이다. 정부가 틈을 보였으니 조금만 더 밀면 완전히 포기할 것이란 생각도 온당치 않다. 그렇게 자기 입장만 내세우기엔 의료 현장 상황이 심각하다. 지난달 31일과 이달 11일 경남 김해와 부산에서는 대동맥 박리 환자 2명이 병원을 찾지 못해 숨지는 등 ‘응급실 뺑뺑이’를 돌다 숨지는 사례가 잇따랐다. 지금 같은 상황이 지속하면 피해 사례는 급격하게 늘어날 것이다. 의대생 유급 시한도 코앞이고, 전공의들이 수련 시간을 채울 수 있는 시점도 얼마 남지 않았다. 대학들은 다음 달까지 내년도 입시 요강을 발표해야 한다.

물론 정부 발표가 당장 성에 차지 않을 수도 있다. 정말 합당치 않다면 우선 협상장에 들어와 좀 더 논의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간 정부의 불통에 화가 나 있던 국민은 이제 의사들에 대해서도 ‘너무 한다’는 시선을 보내고 있다. 온 나라가 의사들만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정부는 물론이고 국민 전체를 깔보는 막말을 일삼는 일부 의사들에 대한 분노도 상당하다.

지금까지 의사들이 직을 포기하고 환자 곁을 떠난 것은 자신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국 의료의 미래를 위한 것이라고 믿고 싶다. 정말 그렇다면 하루 바삐 협상에 임하고 환자 곁으로 복귀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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