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칼럼] 비스마르크와 폼페이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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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6호 31면

라종일 동국대 석좌교수

라종일 동국대 석좌교수

독일 외교부에서 비스마르크가 사라졌다는 뉴스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기사 축에도 들지 못했다. 녹색당 소속인 안나레나 배어복 의원이 장관으로 취임한 후 독일 외교부는 간부들이 매일 아침 회의를 하는 대회의실인 ‘비스마르크 홀’의 명칭을 ‘독일 통합 홀’로 바꾸고 정면 벽에 걸려 있던 비스마르크 초상화도 철거하였다. 프로이센의 수상으로서 당시 유럽 강대국들의 견제를 무릅쓰고 독일 통일을 이룬 ‘쇠와 피의 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독일 외교부에서 사라진 것이다. 340명이나 된다는 비스마르크의 후손 일가들과 기민당·기사련(CDU·CSU), 자유민주당(FDP) 등 우파 정당들의 비판이 있었을 뿐 독일 국민 일반에서는 큰 반향이 없었다고 들었다. 독일 친구들에게 이 사건에 관한 의견을 문의하여 보았는데 그저 그런 일이 있었다는 식의 심드렁한 반응일 뿐, 격앙하기는커녕 진지한 반응도 없었다. 나에게는 별로 좋은 일이란 없는, 주로 암울한 세계 정세 속에서 마치 오래 동안 기대하던 한 가닥의 긍정적인 발전 같은 소식이었다. 마음 한 구석에서 혹시 북한에도 이런 소식이 전해졌을까, 특히 항상 무력을 자랑하며 공개적으로 남한의 지도를 들여다 보면서 군사적으로 통일을 이루겠다고 공언하는 지도층이 이 기사를 보았다면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강경파 정치인으로 힘 중시하지만
폼페이오, 북 억류 목사 석방시켜
남북정상회담선 납북자 거론 안돼
분단 극복위해 인도적 해법도 필요

선데이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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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별로 호감을 갖고 있지 않던 정치인이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 시기 미국의 중앙정보국(CIA) 국장과 국무장관의 두 요직 책임자였던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이다. 나와 특별한 인연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매체를 통하여 접하는 그는 지나치게 보수적이고 호전적이기까지 한 인물로 보였다. 세계에서 전쟁이나 다른 폭력 사태를 방지하고 평화를 유지하는데 큰 역할을 하여야 하는 초강대국의 외교 최고 책임자였던 분이 상대방 국가를 “악의 축”이라고 공개적으로 호칭하는 것 같은 것이다. 폼페이오 전 장관은 하원 청문회에서 러시아·중국·이란·북한·베네수엘라가 전 세계에 위험한 모델을 강요하는 새로운 악의 축을 형성하고 있다고 경고하였다는 기사를 본 일도 있다. 그리고 북한 핵 폐기 문제에 관하여서도 그의 입장은 전혀 유연성이 없는 강경 노선인 것으로 보였다. 퇴임 후 나온 그의 자서전 제목도 그런 뜻을 시사하는 『한 치도 내 줄 수 없다 (Never Give An Inch)』였다. 그런데 막상 그 책을 읽다가 예상치 못하게 새로운 면을 보게 되었다. 이것은 폼페이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부정적 내지 비판적으로 보는 트럼프 대통령에 관하여,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자신에 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를 시사해 준다.

역사적인 첫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북한으로 간다. 김정은과의 단독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억류하고 있는 3인의 미국인 목사들이 석방되어 자기와 함께 귀국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한다. 말하자면 이들 석방이 정상회담의 성공에 전제 조건 같은 것이라는 암시였다. 김정은은 이 말에 바로 응답을 하지 않았지만 폼페이오가 떠나는 날, 이륙 직전에 이들이 그의 비행기에 동승하도록 하여준다. 폼페이오는 자서전에서 비행기에 탑승한 후 이들을 기다리는 초조한 마음과 이들의 건강 상태가 괜찮은가 하는 염려, 그리고 건강이 괜찮은 것에 안도하며 눈물을 흘린 일을 자세하게 적고 있다. 이 목사들은 모두 한국 출신의 미국 국적인이었다. 마침내 이들이 탑승을 완료하자 그는 승무원들에게 “한시 바삐 이곳을 벗어나자”는 지시를 한다. 비행기는 바로 미국으로 향하지 않고 일본에 들린다. 그곳에는 의료 장비를 갖춘 특수 병원 비행기가 미리 배치되어 대기하고 있었다. 두 비행기가 미국에 도착하였을 때 공항에는 트럼프 대통령 부부와 행정부의 고위 관리들이 거의 모두 나와 환영을 하여주었다. 솔직히 이 글을 읽는 나에게도 감동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감상에만 치우친 감동은 아니었다.

19세기 후반 동서양에서 거의 같은 시기에, 근대 국민국가 건설에 뒤처졌던 두 나라가 마침내 각기 통일 국민국가를 이루었다. 엄청난 위업이었지만 두 나라 모두 ‘쇠와 피’의 길을 따랐다. 그런데 이 성취가 자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주변의 여러 나라 국민들에게도 좋은 일이었는지, 더 나은 삶이나 더 높은 도덕적 수준을 가져다 주었는지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리고 현재 수많은 어두운 현실에도 불구하고 ‘쇠와 피’의 길이 마침내 과거의 일이 되고 있다는 희망적인 전망도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우리는 어떤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재야 시절 햇볕정책의 전망에 관해 토론한 적이 있었다. 그때 분단을 극복하고 민족이 다시 함께하려는 길은 정치적인 안건이 아니라 인간적인 안건 즉,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의 질과 도의적인 수준 향상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을까 문제를 제기한 일이 있었다. 햇볕은 좋지만 이솝의 햇볕이 아닌 신약 마태복음의 햇볕이 될 수는 없는가 하는 문제였다. 그 이후 네 차례의 정상회담이 있었고 북한이 요청하는 돈이나 물자들도 수시로 도와주었다. 백두산에 올라 물을 섞는 멋진 행사도 있었지만, 납북되었거나 혹은 억류된 분들은 그대로 남아 있다. 이들의 석방은 거론된 일조차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라종일 동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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