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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프리즘] 약으로 만든 몸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86호 30면

정영재 문화스포츠 에디터

정영재 문화스포츠 에디터

우리 회사 근처 피트니스센터에는 ‘명예의 전당’이 있다. 뼈를 깎는 노력으로 멋진 몸매를 만든 남녀 회원들의 사진이 걸려 있다. 올해의 운동 1차 목표인 ‘제주국제트레일러닝 대회 36㎞ 완주’를 달성한 터라 ‘이제부터 몸만들기에 주력해 가을쯤엔 보디 프로필 찍기에 도전해 볼까’ 생각했다.

그러던 차에 들린 날벼락 소식. 대한체육회가 10월 열리는 전국체전에 보디빌딩 일반부를 없애고 고등부만 남기겠다는 것이다. 보디빌딩계의 고질인 도핑 문제가 또 터진 거다. 체육회 실무자는 “지난해 전국체전에서 일반부 보디빌딩 선수가 도핑 검사에서 금지약물이 검출됐다. 2018년 체육회에서 의결한 보디빌딩 종목에 대한 제재 조치를 시행할 수밖에 없다. 올해 체전에서는 입시가 걸린 고등부만 유지하고 일반부는 없애기로 했다”고 밝혔다.

보디빌딩 또 도핑, 체전 퇴출 위기
동호인도 노출 위험, 확산 막아야

보디빌딩은 ‘상습 도핑 종목’이었다. 참다못한 체육회는 2018년 1월, 향후 체전 보디빌딩 도핑 적발 시 단계별 제재 조치를 의결했다. 1차 적발 시 시범종목 전환, 2차는 일반부 폐지, 3차는 종목 폐지다. 2018년 체전에서 1건이 적발돼 2019년부터 보디빌딩은 정식종목에서 시범종목으로 격하됐다. 대한보디빌딩협회(대보협)와 보디빌딩인들의 눈물겨운 노력 끝에 지난해 정식종목으로 복귀했는데, 또다시 한 건이 터진 것이다.

도핑이 적발된 선수 A는 자격정지 4년을 받았다.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에 항소를 제기했지만 결과가 뒤집힐 확률은 낮다. 대한체육회는 항소 결과가 나온 뒤 이사회를 열어 제재를 확정하기로 했다. 체전에서 종목이 없어지면 실업팀이 존재할 이유가 없어지는 것과 같다. 전국 16개 실업팀에 소속된 140여 명의 보디빌딩 선수가 또다시 직장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대보협 임원 B가 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2018년에 보디빌딩 선수와 지도자 전원이 서명한 각서를 제출했어요. 그러니 제재를 내린다 해도 할 말은 없죠. 대보협의 지속적인 교육과 감시로 도핑이 근절되고 있다는 믿음이 생기던 차에 이런 일이 터지니 멘붕이네요.”

실제로 대보협은 협회 주관 대회에서 지나치게 크고 선명한 근육을 강조해 약물 유혹에 취약한 기존 종목을 축소하고, 피지크나 클래식 같이 자연스러운 근육의 아름다움을 중시하는 종목을 확대하고 있다. 출전 선수 전원을 대상으로 약물의 위험성과 적발 시 강력한 처벌에 대한 교육도 했다. 그럼에도 선수 개개인의 일탈은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게 협회의 하소연이다. 선수들도 “한 명의 도핑으로 다른 모든 선수들이 치명적인 불이익을 받는 건 억울하다”고 선처를 호소한다.

도핑 확산 방지에 대한 대한체육회의 입장은 단호하다. 체육회 실무자 C는 “약물로 몸을 만들어 입상한 선수가 커다랗게 사진과 입상 경력을 내걸고 센터를 운영한다. 이를 보고 찾아온 회원에게 뭘 가르치겠나. 도핑이 엘리트 선수에게서 동호인이나 아마추어로 흘러가는 물길을 차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보협 임원 D도 이렇게 말했다. “짧은 시간에 몸을 만들었다는 일부 연예인, 3~6개월 안에 보디 프로필 찍겠다는 사람들이 약물에 쉽게 노출된다. 단백질 보조제 등 국내에서 출시되는 제품은 성분 표시가 정확하고, 식약처의 관리를 받는다. 문제는 해외 직구 제품이다. 성분을 알기도 어렵고 어느 정도 유해한지, 중독성이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나마 대보협이 도핑의 기준, 금지약물의 유해성 등을 지속적으로 알리고 확산을 차단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다시, 명예의 전당에 걸린 사진을 본다. 저 멋진 몸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먹고 싶은 것, 마시고 싶은 걸 참았을까. 얼마나 긴 시간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을까. 저 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도핑은 근절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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