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향사에게 자유를 주니, 혁신적인 향이 태어났다”...프레데릭 말의 철학[더 하이엔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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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 없는 인생?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플래그십 매장에서 만난 프레데릭 말. 정성룡 사진가

서울 용산구 한남동 플래그십 매장에서 만난 프레데릭 말. 정성룡 사진가

지난 12일 한국을 찾은 향수 브랜드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의 창립자 프레데릭 말의 이야기다. 2000년 그가 자신의 이름을 딴 향수 브랜드를 만들어 내놨을 때, 세상이 주목했다. 새로운 컨셉의 향수 브랜드였기 때문이다.

동명 향수 창립자 프레데릭 말 #자유와 자금, 아낌없이 지원해 #조향사 창의성 끌어낸 브랜드 #아크네스튜디오 협업작 내놔

향수마다 각기 다른 모양의 병과 디자인, 마케팅을 전개하는 게 일반적인 향수 브랜드의 방식이다. 그런데 프레데릭 말은 달랐다. 각기 다른 조향사가 만든 향수를 모두 똑같은 디자인의 병에 담았고, 병을 포장한 종이 패키지는 마치 두꺼운 책처럼 디자인했다. 브랜드명 또한 책처럼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Editions de Parfums Frédéric Malle)’로 지었다. 책 같은 향수 패키지 덕분에 그의 향수 매장은 마치 잘 정돈된 책방 같은 느낌이 났다.

프레데릭 말이 책처럼 꽂혀 있는 자신의 향수 컬렉션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다.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처럼. 정성룡 사진가

프레데릭 말이 책처럼 꽂혀 있는 자신의 향수 컬렉션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다.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처럼. 정성룡 사진가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의 대표 향수 '포트레이트 오브 어 레이디'. 사진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의 대표 향수 '포트레이트 오브 어 레이디'. 사진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

게다가 다른 향수에선 뒤로 숨겨져 있던 조향사의 이름을 앞으로 내세워 큼지막하게 향수병에 새겼다. 자신의 이름보다 향을 창조한 조향사의 이름을 공개하고, 그를 한 명의 아티스트로 대접했다. 2013년 국내에 들어왔을 때는 새로운 컨셉에 트렌드에 앞서가는 스타들이 그의 향수를 선택했다. 어느새 25년 차 향수 브랜드가 된 프레데릭 말은 지난해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아시아 최초로 플래그십 매장을 열었다. 한국의 둥지에서 그를 만났다.

이런 컨셉의 향수 브랜드를 어떻게 고안해냈나.

“현대미술처럼 향수도 현대, 즉 그 시대를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것이 필요하다고 봤다. 또한 어린 시절부터 보아왔던 조향사들은 자신의 창의성을 발휘하지 못해 힘들어했다. 그들이 마음껏 향을 만들 수 있다면, 혁신적인 향이 나올 것이라 확신했다. 그 결과 지금까지 아름다운 36개의 컬렉션이 완성됐다.”

조향사의 능력을 끌어내는 게 중요할 것 같다. 

"완벽한 자유를 준다. 우리 조향사는 시간에 대한 제약, 돈에 대한 제약이 없다. 자신의 향을 마음껏 만들어내기만 하면 된다."

패키지가 특이하다. 책처럼 만든 이유는.

“프랑스 유명 출판사 갈리마드의 책에서 영감을 받았다. 폰트로만 차별점을 둔 단순한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다. 화려한 다른 향수 패키지들보다 매력적이었고, 조향사의 이름을 저자명처럼 쓸 수 있는 것도 좋았다. 또 다른 이유도 있는데, 패키지나 광고, 향수병에 쓰는 예산을 아껴 향수 자체를 만드는 데 쓰고 싶어 향수병과 패키지를 최소화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위치한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 플래그십 매장. 사진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위치한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 플래그십 매장. 사진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

향에 좋은 원료를 쓰기 위해 간소화한 패키지들은 오히려 더 현대적인 매력을 풍긴다. 사진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

향에 좋은 원료를 쓰기 위해 간소화한 패키지들은 오히려 더 현대적인 매력을 풍긴다. 사진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

플래그십 매장 내에 설치된 시향 기기. 사진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

플래그십 매장 내에 설치된 시향 기기. 사진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

1962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향수와 친했다. 외할아버지 세르쥬 애틀러-루이체는 크리스찬 디올 향수의 설립자였고, 어머니 역시 회사 경영에 참여해 디올 향수의 제품 개발 디렉터로 세르주 루텐을 영입해 ‘소바쥬’ ‘쟈도르’ 등 향수 개발에 기여했다. 그는 미술사를 전공하고 광고·사진업계에서 경력을 쌓았지만, 결국 다시 프랑스 유명 향수원료 제조사인 루르 베르트랑 뒤퐁(Roure Bertrand Dupont)에 들어가 향수 세계로 돌아왔다.

향수 가문이다. 향에 대한 남다른 가르침이 있었나.

“할아버지는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셔서 만난 적이 없지만, 어머니는 나에게 늘 ‘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어떤 창작이든 타협하면 안 된다는 가르침을 주셨다.”

당신이 생각하는 ‘향수’란 무엇인가.

“나 자신을 확장하는 방법. 누군가와 대화를 하기도 전에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좋은 향수는 자신의 일부와 같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향이 아니라 ‘냄새’다.”

여러 조향사가 작업하는 만큼, 하나의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모든 제품을 관통하는 가이드라인이 필요할 것 같다.

“두 가지 중요한 철학이 있다. 첫째는 새로워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향수만의 독특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

오는 5월 출시하는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과 아크네 스튜디오의 콜라보 향수(왼쪽). 오른쪽은 올봄 한국에 잘 어울리는 향으로 프레데릭 말이 직접 꼽아준 향수 '엉 빠썽'. 사진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

오는 5월 출시하는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과 아크네 스튜디오의 콜라보 향수(왼쪽). 오른쪽은 올봄 한국에 잘 어울리는 향으로 프레데릭 말이 직접 꼽아준 향수 '엉 빠썽'. 사진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

36개 컬렉션 중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향수는.

“우리 대표 제품인 ‘포트레이트 오브 어 레이디(Portrait of a Lady)’다. 향이 너무 정교해서 대중적이진 않겠다 싶었는데 많은 사람이 좋아해줘 놀랐다.”

봄이 왔다. 요즘 한국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향수는.

“두 가지다. 화이트 라일락 향을 이용한 ‘엉 빠썽(En passant)’과 오는 5월에 출시하는 ‘아크네 스튜디오 파 프레데릭 말’이다. 엉 빠썽은 바람을 타고 흐르는 라일락 향을 느낄 수 있다. 아크네는 신선하고 우아하면서도 깊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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