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꼬였다…‘미국만 질주’ 딜레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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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강달러·고금리 근본 원인

전 세계를 덮친 강달러·고금리 기류가 짙어지고 있다. 그 배경엔 홀로 ‘경제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미국이 있다. 소비·생산·고용이 모두 탄탄하고 미래 먹거리도 충분해 긴축 속도를 쉽게 줄이지 않을 거란 분석이 나온다. 한국처럼 금리·환율·물가 ‘3고(高)’ 압박이 거센 세계 주요국은 통화정책 ‘각자도생’에 나선 분위기다.

국제통화기금(IMF)이 16일(현지시간) 발표한 세계경제전망에 따르면 미국의 올해 성장률은 1월 전망 당시 2.1%에서 2.7%로 0.6%포인트 상향됐다. 주요 선진국에서 가장 높은 수치다. 반면 유로존 성장률 전망치는 0.9%에서 0.8%로 내리막을 탔고, 한국(2.3%)·일본(0.9%)은 제자리걸음을 했다.

내년도 비슷하다. 선진국 대부분의 성장률 전망치가 하락 또는 유지된 반면, 미국은 1.7%에서 1.9%로 올라갔다. 흔들리는 주변국과 달리 미국은 당분간 높은 성장세가 지속할 거란 분석이다. 피에르-올리비에르 고린차스 IMF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미 NPR과의 인터뷰에서 “강력한 생산성과 노동 성장, 상당한 투자와 수요 측면의 강점이 반영됐다”고 말했다.

미 경제 지표는 전방위로 고공행진 중이다. 2월 산업생산은 제조업·광업을 타고 0.1% 증가했다. 3월 고용시장은 취업자 수 증가 폭 확대, 실업률 하락 등 견조한 모습을 보였다. 지난달 소매판매도 전월 대비 0.7% 증가하면서 시장 전망치(0.3%)를 훌쩍 넘겼다. 미국 내 개인 가처분 소득은 꾸준히 늘면서 20조7000억 달러(2월 기준)까지 올라섰다. ‘여윳돈’이 코로나19 지원금 등이 풀렸던 2021년 초에 맞먹을 정도로 넉넉하다 보니 국내총생산(GDP)의 70%를 차지하는 소비도 식지 않는 셈이다.

‘미래’ 성장까지 책임질 유망 산업을 확보한 것도 뜨거운 경기에 불을 붙인다. 미국은 엔비디아로 대표되는 인공지능(AI) 부문을 주도하고 있다. 연방정부 재정 지원과 민간 기업 혁신이 결합하는 모양새다. 삼성전자·TSMC 같은 글로벌 반도체 기업도 보조금 등을 내세워 유치했다. 미국 중심의 첨단산업 공급망 구축에 가속이 붙고 있다.

이처럼 미국 경제가 식지 않다 보니 물가 상승률도 3%대에서 쉽사리 내려오지 않는다. 한때 상반기에 무게가 실렸던 미국 기준금리 인하 전망은 물가란 벽에 부딪혀 갈수록 후퇴하고 있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매파’(통화 긴축 선호)로 급선회한 게 대표적이다. 이에 따라 고물가와 경기 침체, 통화 약세를 함께 맞닥뜨린 주변국은 각자 출구를 모색하고 있다. 당장의 경기 침체 해소가 급한 유럽중앙은행(ECB) 등은 자본 유출 우려 등에도 불구하고 빠른 금리 인하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강달러가 기승을 부리면서 원화와 엔화는 과도한 통화 가치 하락에 시달리고 있다. 이에 한국·미국·일본 재무장관이 처음 만나 최근 원화·엔화 가치 하락을 우려한다는 입장을 공유했다. 직접 당사자가 아닌 미국까지 나서 사실상 ‘구두(口頭) 개입’한 셈이라 주목된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 스즈키 슌이치 일본 재무장관은 17일(이하 현지시간) 워싱턴 DC 재무부에서 만나 이런 내용의 공동 선언문을 채택했다. 3국 장관은 회의 직후 “최근 원화와 엔화의 급격한 평가 절하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심각한 우려를 인지했다”며 “우리는 기존 주요 20개국(G20)의 약속에 따라 외환시장 진전 상황에 대해 긴밀히 협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관심을 모았던 한·미 통화 스와프 체결은 공동 선언문에서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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