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상처받았다”는 전공의, 환자·가족 상처도 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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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하는 전공의를 비롯한 의료계의 집단행동이 이어지고 있는 16일 오전 서울 소재 대학병원 로비에서 한 시민이 쓰러지자 의료진들이 응급처치를 하고 있다. [뉴스1]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하는 전공의를 비롯한 의료계의 집단행동이 이어지고 있는 16일 오전 서울 소재 대학병원 로비에서 한 시민이 쓰러지자 의료진들이 응급처치를 하고 있다. [뉴스1]

전공의들은 의대 증원 추진 과정에서 “상처받았다”는 취지의 주장을 한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책을 추진했고 이 과정에서 나온 가시 돋친 말들에 실망했다는 것이다. 전공의 1300여 명은 지난 15일 상처의 가해자로 박민수 보건복지부 차관을 고소했다. “박 차관 경질 없인 복귀도 없다”는 입장도 밝혔다.

전공의들이 상처를 받았다면 정부가 반성할 부분이 있다. 그러나 특정 공직자를 경질하라는 전공의들의 요구엔 멈칫하게 된다는 시민이 적지 않다. 사태 해결을 원하는 것인지, ‘분을 풀어달라’는 것인지 헷갈린다는 이유에서다.

전공의 이탈은 한국 의료시스템의 취약한 민낯을 보여줬다. 일부 병원은 경영난으로 무급휴직과 희망퇴직에 들어갔다. 그 대상은 의사가 아닌 일반직군이었다. 그들은 이런 상황을 스스로 결정한 적이 없는데도 ‘상처’를 입게 됐다.

국민이 입은 상처는 어떨까. 사고를 당하고도 제때 수술을 받지 못해 숨진 환자의 유족들은 천추의 한을 품게 됐다. 충북 보은에서 물에 빠진 33개월 아이는 지역 병원에서 이송할 대형병원을 찾지 못했고, 부산의 50대 남성은 대동맥박리 수술을 위해 울산까지 10곳 넘는 병원을 수소문해야 했다. 어차피 살릴 가능성은 희박했다는 의학적 판단이 유가족에게 위로가 될까.

전국의대 교수 비대위 방재승 전 위원장은 지난달 18일 “환자가 없으면 의사도 없다”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하지만 전공의 단체는 아직 국민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전공의들은 그들이 받은 것보다 더 큰 상처와 실망을 국민에게 안겼다. 윤석열 대통령과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대위원장이 만났던 지난 4일, 대전협 비대위는 내부에 “요구안 수용이 불가하다면 저희 쪽에선 ‘대화에는 응했지만, 여전히 접점은 찾을 수 없었다’ 정도로 대응한 뒤 원래 하던 대로 다시 누우면 끝”이라고 공지했다. 커뮤니티에는 드러누울 당(躺)에 평평할 평(平), 즉 편하게 드러눕는다는 뜻의 중국 신조어 ‘탕핑’이 회자되고 있다.

정제되지 않은 글에 괜한 트집을 잡는다고 항변한다면 무책임한 생각이다. 박 차관의 ‘의새’ 발음 하나에 1만4000명 전공의가 분노했던 일을 기억한다면 더욱 그렇다. 편하게 드러눕겠다는 글을 읽은 환자와 그 가족의 기분을 떠올려 봐야 한다.

이제 대화의 시간이다. 전공의들은 탕핑 모드를 멈추고 병원으로 돌아와야 한다. 정부도 전공의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고 법적 조치도 보다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전공의는 국민의 상처를, 정부는 전공의의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 그것이 한국 의료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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