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유훈 저버린 김정은, 김일성 생일 '태양절'까지 지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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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4월 15일을 맞아 북한 관영 매체가 다양한 기념행사 소식을 보도한 가운데 김일성을 태양으로 추켜세우는 '태양절'이라는 표현이 거의 사라졌다. 대신 '4월 명절'이라는 표현으로 대부분 대체했는데, 통일 유훈을 부정하기 위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선대 지우기' 작업이 속도를 내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14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4월 16일 김일성 생일(태양절)을 맞아 청년 학생들의 야회가 진행되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지난 14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4월 16일 김일성 생일(태양절)을 맞아 청년 학생들의 야회가 진행되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태양절' 용어 예외적 사용

15일 노동신문 등 북한 관영 매체는 전날 "민족 최대의 경사스러운 4월의 명절을 맞아 평양의 김일성광장에서 청년 학생들의 야회가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눈에 띄는 건 이날 관련 보도에서 김일성의 생일을 "뜻깊은 4월의 명절", "민족 최대의 경사스러운 4월의 명절" 등으로 주로 표현했다는 점이다. 평양 만수대언덕의 김일성·김정일 동상에 "당정 간부들이 꽃바구니를 진정했다"는 기사에만 '태양절'이라는 표현을 썼다.

또한 김정은이 김일성의 생일을 맞아 김일성·김정일 시신이 안치돼 있는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았다는 소식도 2년 연속으로 실리지 않았다. 김정은은 김정일의 생일인 지난 2월 16일(광명성절)에도 3년 연속으로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지 않았다.

지난 14일 김덕훈·최용해·이병철 등 당과 정부의 간부들과 당 중앙위원회, 성, 중앙기관, 무력기관 일꾼들이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동상에 꽃바구니를 진정하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지난 14일 김덕훈·최용해·이병철 등 당과 정부의 간부들과 당 중앙위원회, 성, 중앙기관, 무력기관 일꾼들이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동상에 꽃바구니를 진정하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김일성 생일에 '김정은 충성' 촉구 

지난 6일에도 북한은 김일성의 생일을 맞아 매년 4월 진행되던 '태양절 요리축전'을 '전국 요리축전'으로 바꿔 보도했다. 이어 지난 8일에도 전국학생소년예술축전 개막식 소식을 전하면서 태양절이라는 표현 대신 "뜻깊은 4월의 명절"이라고 보도했다.

대신 이날 관영 매체 보도는 김정은에 대한 충성심 제고에 열을 올렸다. 노동신문은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의 혁명 사상은 위대한 수령님(김일성)과 위대한 장군님(김정일)의 혁명사상의 전면적 계승이고 새로운 높은 단계로의 심화 발전"이라며 김정은의 혁명 사상이 선대를 뛰어넘었다고 강조했다. "김정은 동지의 두리에 더욱 굳게 뭉쳐 우리 사상, 우리 위업의 위대한 승리를 위해 힘차게 싸워나가자"고도 촉구했다.

지난 14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청년 학생들의 야회가 진행되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지난 14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청년 학생들의 야회가 진행되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북한은 1997년 당 결정서를 통해 김일성이 태어난 1912년을 주체 연호로 지정하고, 생일인 4월 15일을 태양절로 제정했다. 당시 김정일은 김일성에 대해 "수령님은 존함 그대로 태양"이라고 말했다.

다만 북한은 최근 태양절은 각종 표기에서 지우면서도 1912년을 기준으로 연도를 세는 '주체 연호' 방식은 고수하는 것으로 보인다. 선대 지우기 작업 또한 선택적으로 속도를 조절하며 이뤄진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 구병삼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이 내부 행사 명칭을 어떻게 호칭하든 정부가 공식 평가하긴 적절하지 않다"면서도 "북한 당국이 4월 15일을 김일성 우상화 선전과 김정은에 충성을 강조하는 내부 결집의 기회로 활용하는 양태는 과거와 차이가 없다"고 설명했다.

지난 14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4월 16일 김일성 생일(태양절)을 맞아 청년 학생들의 야회가 진행되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지난 14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4월 16일 김일성 생일(태양절)을 맞아 청년 학생들의 야회가 진행되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통일 지우려 선대 깎아내리기 

김정은의 선대 지우기는 통일 유훈 부정 작업과 맞물려 있다. 지난 연말부터 남북관계를 '교전 중인 적대국가'로 규정했는데, 통일을 더는 지향하지 않고 별개의 국가로 따로 살자는 김정은의 이런 새 논리는 김일성·김정일의 유훈에 반한다. 이에 남측과 체제 경쟁에서 뒤처진 가운데 동족 개념을 지우려다 보니 선대의 유훈까지 걸림돌로 보고 의도적으로 위상을 낮추려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은 지난 1월에는 통일 유훈과 남북 대화를 상징하는 평양의 조국통일3대헌장 기념탑을 "꼴불견"이라며 철거했다. 통일부에 따르면 기념탑 인근에 있던 김일성의 조국통일명제(命題)비도 함께 철거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1일 철거된 평양의 북한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탑.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지난 1일 철거된 평양의 북한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탑.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이는 북한 내부 갈등, 즉 '북북 갈등'을 유발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전성훈 전 통일연구원장은 "핵 무력을 믿고 선대의 통일 유훈을 지우려는 김정은에 대한 내부 반발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코로나 19 이후 첫 국제행사 

한편 김일성 생일을 맞아 전날 평양에선 주체사상국제토론회가 열렸다고 이날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이일환 당중앙위원회 비서가 참석자들을 만났고, 토론에선 김정은의 "독창적인 혁명사상"을 찬양하는 한편 반제·자주 등을 주로 논의했다. 이번 회의에는 지난 11일부터 차례로 입국한 몽골·태국·네팔·영국·독일·브라질 등 20여 개국의 해외 친북 단체가 참석했다. 북한이 해외의 각국 인사를 불러 국제행사를 주최한 건 코로나 19 사태 이후 처음이다.

특히 이날 토론회에는 일본인인 오가미 겐이치 주체사상국제연구소 사무국장이 참석해 개막 발언을 했다고 신문은 보도했다. 일본은 2006년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따른 경제 제재의 일환으로 자국민의 북한 방문 자제를 요구하고 있다.

지난 14일 평양에서 주체사상국제토론회가 개최된 모습. 노동신문. 뉴스1.

지난 14일 평양에서 주체사상국제토론회가 개최된 모습. 노동신문.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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