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하나로 순식간 스타덤 올랐다…짜릿한 사량도 트레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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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석의 Wild Korea ⑫ 통영 사량도 

통영 사량도 가마봉에서 내려와 옥녀봉으로 이어지는 암릉. 왼쪽 비쭉 튀어나온 바위봉이 옥녀봉이다. 건너편 사량도 아랫섬 앞으로 동강이 유유히 흐른다. 진짜 강은 아니다. 강처럼 바닷물이 잔잔히 흐른다.

통영 사량도 가마봉에서 내려와 옥녀봉으로 이어지는 암릉. 왼쪽 비쭉 튀어나온 바위봉이 옥녀봉이다. 건너편 사량도 아랫섬 앞으로 동강이 유유히 흐른다. 진짜 강은 아니다. 강처럼 바닷물이 잔잔히 흐른다.

경남 통영 앞바다에 펼쳐진 한려해상국립공원에는 매물도·한산도·추봉도·비진도 같은 보석 같은 섬이 흩뿌려져 있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다. 통영은 44개 유인도와 526개 무인도를 품었다. 국립공원 밖에도 멋진 섬이 많다. 이를테면 사량도는 오랜 무명에서 산 하나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섬이다. ‘산이 얼마나 좋길래?’ 하는 의구심은 가보면 풀린다. 누구나 사량도 예찬론자가 된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이 부럽지 않은 섬

통영시에 속한 사량도는 통영과 남해군, 고성군 사이에 자리한다. 통영에서 14㎞, 사천시 삼천포에서 16㎞, 고성군에서 5㎞ 거리다. 사량도를 널리 알린 건 사천의 산악인이다. 1979년쯤 삼천포산악회가 사량도의 지리산(397.8m)과 옥녀봉(281m) 등을 개척했다. 당시 바위에는 석란과 풍란이 지천으로 널렸고, 멧돼지가 득실거렸다고 한다. 해초 뒤집어쓰고 건너오는 멧돼지를 마을 어부가 많이 잡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멧돼지가 없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사량도는 윗섬과 아랫섬이 마주 보고, 그 사이에 호수처럼 잔잔한 동강(桐江)이 흐른다. 진짜 강은 아니다. 바닷물이 오동나무처럼 푸르고 강처럼 흐른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사량도 윗섬에는 지리산·달바위·옥녀봉 등이 성채를 이루고, 아랫섬에는 칠현산(344m)이 일곱 봉우리를 펼친다. 사량도 주변으로 대섬(죽도)·나비섬(잠도)·수우도가 흩어져 있다.

사량도 산행의 출발점이 수우도 전망대. 여기서 수우도를 감상하고 산행을 시작한다.

사량도 산행의 출발점이 수우도 전망대. 여기서 수우도를 감상하고 산행을 시작한다.

통영 가오치항을 떠난 카페리가 40분쯤 달려 윗섬 금평항에 닿았다. 승객 대부분이 윗섬에서 내린다. 아랫섬은 낚시꾼이 간다. 산행은 버스를 타고 섬 반대편 수우도 조망 전망대에서 시작해 능선을 종주하고, 금평항으로 돌아오는 게 정석이다. 사량도에 딸린 수우도는 고래바위·해골바위 등 비경이 알려지면서 최근 관광객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바위에 뿌리내려 더욱 붉은 진달래

사량도 지리산 정상. 정상 비석 옆에 앉아 '바다 멍'을 즐기기 좋다.

사량도 지리산 정상. 정상 비석 옆에 앉아 '바다 멍'을 즐기기 좋다.

바다 건너 수우도를 감상한 뒤 산행을 시작한다. 20분쯤 제법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면, 길이 쉬워진다. 진달래가 화사하게 수놓은 능선을 약 20분 더 가면 시원하게 조망이 열리면서 지리산 정상에 닿는다. 본래 지리산 국립공원이 보인다고 해서 지리망산이었는데, 표지석을 보니 ‘망’ 자가 안 보인다. 지리산을 추앙하다가 스스로 지리산이 된 것일까. 사량도 사람들의 자부심이 반영된 것은 아닐까 싶다.
지리산 정상부터 본격적인 암릉이 시작된다. 험한 구간에는 우회로가 나 있다. 초보자는 안전하게 우회하자. 암릉 경험이 있는 사람은 무조건 직진이다. 시간은 더 걸리지만 짜릿한 희열을 맛볼 수 있다. 지리산에서 내려오면 사거리에 닿는다.

사량도에 피는 진달래는 단단한 바위를 뚫고 자라서인지 더욱 붉다.

사량도에 피는 진달래는 단단한 바위를 뚫고 자라서인지 더욱 붉다.

거무튀튀한 산비탈에서 붉은빛이 스프링처럼 솟아난다. 진달래다. 진달래 군락에 들어가 몸을 붉게 물들인다. 올봄 처음 만난 진달래다. 사량도 진달래는 암벽에 뿌리내린 덕분에 더욱 붉다.

사거리에서 15분쯤 오르면 하늘과 맞닿은 듯한 긴 계단을 만난다. 계단 앞 이정표는 우회로를 알리고 있다. 여기가 달바위로 가는 칼날 능선이다. 힘들어도 피하지 말고 꼭 걸어보는 걸 추천한다. 예전에는 안전시설이 없어 위험했지만, 지금은 튼튼한 철제 난간을 설치했다. 철 난간을 꽉 부여잡은 울산의 여성 산악인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그러다가 풍경을 바라보면서 연방 손가락 하트를 날린다. 용의 등뼈 같은 산과 잔잔한 동강 너머의 아랫섬이 어우러진 풍경은 하트를 아니 날릴 수 없겠다.

달바위 가는 칼날 능선은 짜릿하다. 울산에서 온 여성 산꾼들이 손가락 하트를 날리고 있다.

달바위 가는 칼날 능선은 짜릿하다. 울산에서 온 여성 산꾼들이 손가락 하트를 날리고 있다.

달바위봉 암릉을 걷는 사람들. 앞에 달바위봉이 보이고, 가운데 능선이 가마봉과 옥녀봉으로 이어진다. 꿈틀거리며 뻗어나가는 능선은 설악산 공룡능선을 연상시킨다.

달바위봉 암릉을 걷는 사람들. 앞에 달바위봉이 보이고, 가운데 능선이 가마봉과 옥녀봉으로 이어진다. 꿈틀거리며 뻗어나가는 능선은 설악산 공룡능선을 연상시킨다.

달바위(400m)의 고도감은 1000m가 넘는다. 동서남북으로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앞으로 가야 할 봉우리들이 한눈에 잡히는데, 산세가 역동적이다. 마치 용이 꿈틀거리며 날아가는 듯하다. 풍경은 멋지지만, 산행 난도가 높다.

슬픈 전설이 내려오는 옥녀봉

달바위에서 가파른 급경사를 내려와 뒤돌아보고 입이 쩍 벌어졌다. 달바위가 까마득하게 올려다보이는데 바위의 규모가 가히 설악산 급이다. 여기에서 본 달바위는 영락없이 설악산 공룡능선의 최고봉인 1275봉을 닮았다.

가메봉에서 내려오는 철계단은 경사가 매우 가파르다.

가메봉에서 내려오는 철계단은 경사가 매우 가파르다.

사량도 연지봉에 걸린 구름다리.

사량도 연지봉에 걸린 구름다리.

가마봉(303m)은 지리산 능선의 중간쯤이다. 걸어온 지리산과 가야 할 옥녀봉이 한눈에 잡힌다. 가마봉에서 내려오는 계단의 경사가 거의 90도처럼 느껴진다. 이런 급경사 계단은 처음 본다. 조심조심 내려오면 연지봉 구름다리가 기다린다. 낙타 등처럼 생긴 봉우리 3개에 다리 2개가 걸려 있다. 다리 하나를 건너면 ‘짠’ 하고 다른 다리가 나타난다.

옥녀봉을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엄청난 규모와 독특한 생김새의 암봉임을 알 수 있다.

옥녀봉을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엄청난 규모와 독특한 생김새의 암봉임을 알 수 있다.

구름다리에서 내려오면 옥녀봉 정상에 선다. 옥녀봉에는 슬픈 전설이 내려온다. 욕정에 눈먼 아버지가 딸을 범하려 하자 딸이 옥녀봉으로 도망쳤다가 몸을 던졌다는 이야기다. 이 전설은 사실 여부보다는 외딴 작은 섬에서 가정과 사회를 유지하는 강력한 터부로 작용했을 것이다.

금평항 횟집에서 먹은 우럭회덮밥.

금평항 횟집에서 먹은 우럭회덮밥.

옥녀봉을 내려오면 능선은 슬금슬금 고도를 낮추고, 금평항에 닿으면서 산행이 마무리된다. 횟집에서 자연산 우럭을 잡아 만들어준 회덮밥을 맛있게 먹었다. 항구에서 배가 기적 소리를 울린다. 허벅지가 마치 육지의 지리산 종주를 마친 것처럼 묵직하다.

여행정보

사량도 윗섬과 아랫섬에 놓인 다리 사이로 카페리호가 들어가는 모습.

사량도 윗섬과 아랫섬에 놓인 다리 사이로 카페리호가 들어가는 모습.

통영 가오치항에서 사량도 가는 카페리호가 하루 6회 운항한다. 사량도에서는 마지막 배가 오후 6시 뜬다. 성인 편도 6600원, 승용차 1만9000원. 사량도 윗섬 트레킹은 수우도 전망대~지리산~달바위~옥녀봉~사량면사무소 코스로 이어진다. 거리는 약 8㎞, 4시간 30분쯤 걸린다. 사량대교횟집이 싱싱한 회를 팔고, 우대식당은 백반을 잘한다.

진우석 여행작가 mtswamp@naver.com
시인이 되다만 여행작가. 학창시절 지리산 종주하고 산에 빠졌다. 등산잡지 기자를 거쳐 여행작가로 25년쯤 살며 지구 반 바퀴쯤(2만㎞)을 걸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을 걷고, 세상에서 가장 멋진 캠프 사이트에서 자는 게 꿈이다. 『대한민국 트레킹 가이드』 『해외 트레킹 바이블』 등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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