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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무의 유통, ‘금사과’의 불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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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박수련 기자 중앙일보 산업부장
박수련 산업부장

박수련 산업부장

전 세계를 휩쓰는 차이나 커머스 중 가장 위협적인 건 테무다. 구글 엔지니어 출신 1980년생이 창업한 테무는 중국을 ‘세계의 공장’이 아니라 ‘세계의 마트’로 재정의한다.

테무의 핵심 정체성은 ‘싼 가격’이다. 같은 중국산 공산품을 국내 플랫폼의 10분의 1 값에 판다. 주문 1건당 7달러(2023년, 골드만삭스)씩 손해를 감수하는 건 자본력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공장과 소비자 사이에 미들맨(middle men, 중개인)을 싹 없앴다. 유통 단계를 줄여 가격을 확 낮춘 것이다.

고물가로 삶이 팍팍해진 소비자들도 이 거래의 승자지만, 전 세계 도매상들의 하청 제조업자에 머물던 중국의 공장들은 테무를 통해 신분이 달라졌다. 판매자로 변신해 더 큰 이윤을 남긴다. 짝퉁, 유해물질, 노동착취 의혹 같은 테무의 그림자는 ‘싼값’이라는 센 볕에 가려진다.

지난달 10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판매중인 사과. [연합뉴스]

지난달 10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판매중인 사과. [연합뉴스]

여기서 유통의 본질을 본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거리를 좁혀 좋은 물건을 더 싸게 공급하도록 자원과 리스크를 관리하는 것. ‘대파 875원’ 논란이나 ‘금사과’ 문제의 실마리도 이 유통의 본질에서 찾아야 한다.

국내에선 농산물을 도매시장 경매를 거쳐 유통하는 제도가 40년 이상 유지되고 있다. 생활협동조합(생협)이나 대형마트 등의 일부 직거래를 빼면 대부분의 농산물은 전국 33개 공영도매시장의 블랙박스를 거쳐 금값이 된다. 생산 농가와 소비자 사이에 여러 단계(농가→산지 상인→도매시장→중도매인→소매→소비자)가 필수인 구조다.

‘1985년생 청과 유통 매머드’인 가락시장에선 농협공판과 5개 청과 도매법인의 경매로 값이 정해진다. 낙찰가의 4~7%를 수수료로 받는 법인의 영업이익률은 20%를 상회한다. 낙찰가가 비쌀수록 중개인의 수익이 느는 고수익 장기 독점 체제다. 농가에서 2000원 남짓에 넘긴 사과 한 알 값이 지난달 서울 소매점에선 6000원을 돌파했지만, 농가 소득은 늘지 않는 구조적 원인이다. 정부가 농축산품 물가 안정에 쏟아붓고 있는 1500억원도 그 긴 유통 파이프라인 어딘가로 스며들어 사라질 뿐이다. 15년간 경북 의성에서 사과를 재배해온 권혁정 전국사과생산자협회 정책실장은 “세금으로 시장 가격을 인위적·일시적으로 낮추려 애쓸 게 아니라, 유통 단계를 줄일 시스템 구축에 돈을 쓰라”고 말한다.

작황에 따라 공급량이 달라지고, 공산품보다 물류 및 보관 비용이 더 드는 신선식품에선 유통 중간상의 역할도 작지 않다. 그러나 그 중간 단계를 줄이지 않으면 ‘좋은 먹거리를 더 값싸게’는 요원한 꿈일 뿐이다. 이상기온으로 작황 널뛰기가 심해지고 농촌 고령화로 생산성 저하를 피할 수 없는 시대, 임기응변만으론 사과값도 대파값도 잡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