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은 올림픽 못간다...효자종목 유도의 몰락, 협회 뒤늦게 수습·용인대는 내홍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도쿄올림픽에서 45년만에 가장 저조한 성적을 거둔 한국 유도. 연합뉴스

도쿄올림픽에서 45년만에 가장 저조한 성적을 거둔 한국 유도. 연합뉴스

한국 유도가 남자 7체급 중 절반에 가까운 3체급에서 파리올림픽 출전권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사상 처음으로 남자 전 체급 올림픽 출전에 실패하는 초유의 사태를 피할 수 없게 됐다.

9일 기준 한국 유도는 남자 60㎏급(김원진), 66㎏급(안바울), 81㎏급(이준환), 100㎏ 이상급(김민종) 등 4체급에서만 파리올림픽 출전을 확정했다. 73·90·100㎏급 3체급에선 이른바 '구멍'이 났다. 남자 유도가 올림픽 메달 획득이 아닌 출전을 두고 쩔쩔맨 건 이번이 처음이라서 유도계는 큰 충격에 빠졌다. 남자 유도는 역대 올림픽에서 무려 9개의 메달을 일군 전통 효자종목이다.

파리올림픽 유도 종목은 체급당 국가별 1명의 선수가 출전할 수 있고, 올림픽 랭킹 상위 17위 안에 들거나 대륙별 출전권 획득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73㎏급 국가대표 강헌철은 세계랭킹 41위까지 처졌다. 꾸준히 국제대회에 출전했지만, 일찌감치 탈락해 랭킹 포인트를 쌓지 못했다. 90㎏급 한주엽은 37위, 100㎏급 원종훈은 47위다. 이들도 강헌철과 사정이 비슷하다.

파리올림픽에 나가지 못하는 73kg급은 2명의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한 한국 유도의 간판 체급이었다. [중앙포토]

파리올림픽에 나가지 못하는 73kg급은 2명의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한 한국 유도의 간판 체급이었다. [중앙포토]

이들이 남은 기간 추가로 올림픽 출전 자격을 자력으로 획득할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한국 대표팀에겐 올림픽까지 국제대회 2~3개만 남았다. 최소 2개 대회에서 연달아 입상해야 세계랭킹 20위권 이내 진입이 가능한데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이런 상황을 두고 유도계에선 "과거엔 서로 한 체급에서 3~4명의 선수들이 올림픽 출전 두고 다퉜다. 그러다보니 비(非) 용인대 선수들의 판정 불이익이 논란이 됐던 것 아닌가. 그런데 지금은 '제발 누구든 나가달라'는 분위기인데 출전 자격이 안 돼 올림픽에 나가지 못한다"며 안타까워했다.

더 뼈아픈 건 세 체급 모두 한국 유도의 상징적인 체급이라는 것이다. 특히 2명의 금메달리스트가 나온 73㎏급 한국 유도의 전략 체급이자 자존심이었다. 2004 아테네올림픽 금메달에 빛나는 '한판승의 사나이' 이원희가 73㎏급의 전설이다. 2012 런던올림픽 금메달리스트(당시 81㎏급) 김재범도 73㎏급 하면 떠오르는 스타다. 90㎏급은 런던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송대남, 2016 리우올림픽 동메달리스트 곽동한을 배출했다. 100㎏급에서도 장성호와 조구함이 각각 아네테와 도쿄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유도의 부진을 대표팀 감독과 코치진에게만 떠넘기기엔 무리가 있다는 게 유도계 내부의 지적이다. 1984년 LA 대회에서 금메달 2개·은메달 2개·동메달 1개를 일구며 효자종목이 된 한국 유도는 2000년 시드니 대회(은2·동3)를 제외하고 2012년 런던 대회(금2·동1)까지 모두 금맥을 캤다. 그러나 2016년 리우 대회에서 16년 만의 노 골드(은2·동1)에 머무르며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다. 2020 도쿄올림픽에서도 노 골드(은 1·동 2)에 그쳐 충격을 줬다. 1976년 몬트리올 대회 이후 45년 만에 가장 저조한 성적이었다. 일부에선 '한국 유도의 몰락'의 몰락이라는 바판까지 나왔다. 이번 파리올림픽을 앞두고 한국 유도에선 유력한 금메달 후보가 없다.

도쿄올림픽에서 부진한 성적을 낸 직후 선찬종 대한유도회 전무는 조용철 회장의 지시로 훈련 방식을 개편하고 국가대표 선수들의 전력을 끌어올릴 방안 찾기에 주력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로 유도계 집행부는 현재 파벌 및 정치 싸움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용인대 유도학과는 지난해부터 내홍을 겪고 있다.

유도학과에는 조 회장을 비롯해 유도회 관계자들과 대표팀 출신 지도자들이 여럿 몸담고 있다. 한 유도 관계자는 "용인대는 한국 유도의 엘리트들이 모여 있는 곳인데, 그곳 교수들과 지도자들은 선수 발굴과 기량 향상에 집중해야 할 시간 일부를 서로를 견제하는 데 쓰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지난 올림픽 이후 3년이란 시간이 흘렀는데, 달라진 게 없다. 오히려 유도는 더 퇴보했다"면서 "현 지도자들은 요즘 선수들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고, 훈련 방식도 맞지 않다. 이를 바로 잡아야 하는 건 대한유도회인데, 그동안 방치했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선찬종 유도회 전무는 "도쿄올림픽 당시 지도자들과 현 지도자들의 훈련 방식이 상당히 차이가 있다. 지금이 훈련 강도가 좀 더 세다. 선수들에게 꼭 필요한 훈련 스타일이 정착되기까지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유도회는 꾸준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주장했다. 선 전무는 "도쿄올림픽 이후 여러 체급에서 '2인 경쟁 체제'를 만들어 국제대회에서 꾸준히 경쟁하게 하는 등 경기력 향상을 위해 애를 썼다. 다만 결과가 뒤따르지 않아 안타깝다. 힘든 훈련을 기피하는 경향 탓에 레슬링, 복싱 등 한국 투기 종목의 약세는 이미 수년 전부터 시작됐다. 유도도 그 흐름을 거스를 순 없는 것 같다"고 밝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