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80대 노인, 일용직노동자도…투표장 찾은 시민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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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윤석철(44)씨가 5일 오전 6시55분쯤 동행인 없이 혼자 흰지팡이를 들고 서울 양천구 신정4동 주민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로 들어가고 있다. 이날 윤씨는 선거관리위원회 직원으로부터 시각장애인용 '점자형 투표보조용구'를 받아 26분 만에 투표를 완료했다. 김서원 기자

시각장애인 윤석철(44)씨가 5일 오전 6시55분쯤 동행인 없이 혼자 흰지팡이를 들고 서울 양천구 신정4동 주민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로 들어가고 있다. 이날 윤씨는 선거관리위원회 직원으로부터 시각장애인용 '점자형 투표보조용구'를 받아 26분 만에 투표를 완료했다. 김서원 기자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5일 오전 7시22분, 서울 양천구 신정4동 주민센터에서 투표를 마치고 나온 시각장애인 윤석철(44)씨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보통 투표에 1~3분 남짓 걸리지만, 윤씨는 오전 6시56분 투표소에 도착해 26분 만에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넣었다. 본인 확인 작업까지는 수월했지만 도장을 찍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점자용 투표보조용구에 투표용지를 끼우고 후보자의 이름을 손으로 읽은 뒤 현장 인력의 도움을 받았다. 윤씨는 “시각장애인들이 가끔 장애 사실을 숨기기 위해 지팡이를 접을 때가 있다”며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개선돼 지팡이를 숨기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바라는 마음으로 투표했다”고 말했다.

발달장애인 박경인(30)씨와 문석영(32)씨도 투표권을 행사하기 위해 종로장애인복지관을 찾았다. 두 사람은 장애인 투표활동 보조인의 도움을 받았다. 박씨는 “투표용지를 봉투에 넣고 스티커를 떼 봉투를 붙이는 손작업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지만 보조인들 덕분에 무사히 완료했다”고 말했다.

시각·발달장애인 문석영(32)씨가 5일 서울 종로구 종로장애인복지관 사전투표소에서 투표하기 전 확대경으로 투표 용지를 들여다보고 있다. 문씨는 ″평소에 쓰던 돋보기가 아니라서 너무 어지러웠다. 돋보기 대신 보조인이 옆에서 후보자와 정당 이름을 불러줘서 겨우 투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서원 기자

시각·발달장애인 문석영(32)씨가 5일 서울 종로구 종로장애인복지관 사전투표소에서 투표하기 전 확대경으로 투표 용지를 들여다보고 있다. 문씨는 ″평소에 쓰던 돋보기가 아니라서 너무 어지러웠다. 돋보기 대신 보조인이 옆에서 후보자와 정당 이름을 불러줘서 겨우 투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서원 기자

이날 많은 시민이 투표권을 행사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발걸음을 옮겼다. 경기도 광명시에 사는 민모(83)씨는 오전 8시20분쯤 한진경로당 내 투표소를 찾았다. 한 손엔 지팡이를 쥐고, 한 손으론 부인의 부축을 받았다. 민씨는 투표를 마치고 경로당 앞 의자에 앉아 한참 숨을 고른 뒤 일어났다. 그는 “패혈증에 디스크까지 총 16번 수술을 받고 20일쯤 전에 퇴원했다”며 “건강 상태가 안 좋더라도 투표는 해야 한다고 생각해 죽기 살기로 나왔다”고 말했다.

5일 오전 8시 20분쯤, 경기 광명시에 사는 민모(83)씨가 아내와 함께 한진경로당 사전투표소 입구에 들어서려 하고 있다. 민씨는 ″패혈증, 디스크 수술을 16번하고 퇴원한지 20일밖에 안 돼 힘들지만 죽기살기로 투표하러 왔다″고 말했다. 이영근 기자

5일 오전 8시 20분쯤, 경기 광명시에 사는 민모(83)씨가 아내와 함께 한진경로당 사전투표소 입구에 들어서려 하고 있다. 민씨는 ″패혈증, 디스크 수술을 16번하고 퇴원한지 20일밖에 안 돼 힘들지만 죽기살기로 투표하러 왔다″고 말했다. 이영근 기자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주민센터에는 이른 새벽부터 일용직 노동자들이 모였다. 페인트가 묻은 작업복과 안전화 차림으로 투표장을 찾은 권모(66)씨는 “오전 7시30분까지 경기 수원으로 출근해야 하는데 나라 생각해서 일어나자마자 투표하러 왔다”며 졸린 눈을 비볐다. 이모(57)씨도 “새벽 4시 남구로 인력시장에 나갔다가 일이 없어 돌아오는 길에 투표하러 왔다”며 “요즘 경기가 안 좋아 일주일에 세 번 일 나가면 많은 건데, 투표해서 좋은 사람이 국회의원으로 뽑혀야 일자리도 생기지 않겠냐”고 말했다.

선거일인 오는 10일 가게를 비우기 어려운 자영업자들도 사전투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이었다. 경기 광명전통시장의 한 떡집 사장인 한 여성은 “새벽 5시20분에 일어나서 6시 투표소 문 열자마자 왔는데도 30여명이 줄 서 있었다”며 “선거 당일은 휴일이라 손님이 많아 가게를 뜰 수가 없어 오늘 같이 일하는 직원에게 가게를 맡기고 일찍 투표장에 왔다”고 설명했다. 서울 송파구 방이동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30대 방모씨도 “어제 새벽까지 장사했지만 선거일에 쉴 수 없으니 오늘 장 보러 가기 전 일부러 일찍 나왔다”고 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인근 회사에서 나온 직장인들이 사전투표소장 앞에 길게 줄을 섰다. 종로장애인복지관엔 양복을 입은 직장인 20여 명이 투표장 밖 복도 약 10m 정도를 빙 둘러쌌다. 점심을 먹으러 가기 전 삼삼오오 모여 투표장에 들른 것이다.

소셜미디어(SNS)에는 젊은 유권자를 중심으로 ‘봄꽃 인증샷’도 이어졌다. 이들은 투표소 인근에 핀 벚꽃이나 개나리 등을 배경으로 손목 등에 찍은 도장 사진을 공유했다. 한 네티즌은 “꽃 보러 가는 길에 사전투표소가 있는지 검색 한 번씩 해보자”고 독려하기도 했다.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5일 소셜미디어(SNS)에 공유된 투표 인증샷들. 사진 엑스(X)·인스타그램 캡처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5일 소셜미디어(SNS)에 공유된 투표 인증샷들. 사진 엑스(X)·인스타그램 캡처

이번 총선 사전투표는 오늘과 내일(6일)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전국 사전투표소 3565곳에서 진행된다. 선거일 현재 선거권을 가진 18세 이상 국민은 별도의 신고 없이 주민등록증·여권·운전면허증 등 신분증을 지참하면 투표할 수 있다.

자신이 거주하는 구·시·군 안에 있는 사전투표소에서 투표하는 유권자(관내 투표자)는 투표용지만 받아 기표한 뒤 투표함에 넣으면 된다. 거주 지역 밖에 설치된 사전투표소에서 투표할 경우(관외 투표자) 투표용지와 회송용 봉투가 함께 제공된다. 기표 뒤 투표지를 회송용 봉투에 넣고 봉투의 띠지를 뗀 뒤 완전히 밀봉해 투표함에 넣어야 유효표로 인정된다.

5일 대전 어은중학교 사전투표소를 찾은 한 70대 시민이 기표소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5일 대전 어은중학교 사전투표소를 찾은 한 70대 시민이 기표소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 기준 사전투표율은 9.6%다. 전체 유권자 4428만 11명 중 423만6336명이 투표를 마쳤다. 이는 2020년 21대 총선 사전투표 1일차 오후 2시 투표율 7.2%보다 2.4%포인트 높은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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