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정하 논설위원이 간다

보수정당의 소선거구제 집착, 자승자박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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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김정하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총선의 최대 승부처 수도권의 비밀

김정하 논설위원

김정하 논설위원

중국 전국시대 전략가였던 손빈이 제나라 장군 전기의 빈객(賓客)으로 있을 때다. 전기가 제나라 귀족들과 여러 번 마차 경주 내기를 벌였는데 승률이 신통찮았던 모양이다. 경주마도 등급 차이가 있다는 것을 파악한 손빈은 다음과 같은 계책을 전기에게 건넸다.

“상대가 상급마를 내보내면 장군은 하급마로 맞서고, 상대가 중급마를 내보내면 상급마로 맞서고, 상대가 하급마를 내보내면 중급마로 맞서십시오.”

이 계책에 따른 결과 전기는 내기에서 2대1로 승리해 큰돈을 땄고, 손빈이 제 위왕(威王)에게 발탁되는 계기가 됐다는 사기열전의 고사다. 후세에 삼사법(三駟法)으로 불리게 되는 손빈의 필승 아이디어는 현대의 선거전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나의 선거구에서 최다 득표자 1명만을 뽑는 소선거구제에선 열세 지역에서 대패하더라도 접전 지역에서 조금씩이라도 대부분 이기면 전체 판세를 승리로 가져올 수 있다. 즉 전체 득표율은 뒤지더라도 총 의석수는 앞서는 게 가능하다. 또는 득표율 격차는 얼마 안 되지만 의석수 차이가 크게 벌어질 수도 있다. 게임의 룰이라고는 하나 득표율과 의석비율의 괴리가 커지면 민주주의의 위기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수도권 동질화 현상 심화하면서
122석이 1개 선거구처럼 움직여

보수, 영남권 ‘싹쓸이’전략 고수
수도권 사표 급증해 오히려 손해

영남권 중심 사고 갇힌 국민의힘
연동형비례·중대선거구 외면

득표와 의석수 괴리 커지면 문제

실제로 한국의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이런 현상이 점점 심화하고 있다. 특히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에서 두드러진다. 먼저 2012년 총선(19대)부터 살펴보자. 당시 새누리당(국민의힘의 전신)은 수도권에서 479만8433표(45.5%)를 얻었고,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은 469만8358표(44.5%)를 얻었다. 그런데 실제 수도권 의석은 새누리당 43석, 민주당 65석으로 오히려 민주당이 22석이나 많았다. 특히 서울에선 새누리당 204만8743표, 민주당 209만6045표로 엇비슷했지만, 의석은 새누리당 16석, 민주당 30석으로 두배 가까운 차이가 났다. 그래도 당시 전국적으론 새누리당 152석(50.7%), 민주당 127석(42.3%)을 차지해 전국 득표율(새누리당 43.3%, 민주당 37.9%)과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이는 새누리당이 영남권을 싹쓸이(총 67석 중 63석)하면서 수도권의 피해를 만회했기 때문이다. 영남권에선 민주당이 소선거구제의 피해자가 된 것이다. 이때까지는 권역별로 득표율과 의석비율의 격차가 발생해도 전국적으로는 상쇄되는 효과가 있었기 때문에 소선거구제의 모순, 즉 득표율과 의석비율의 격차가 두드러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소선거구제의 모순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은 2016년 총선(20대)부터다. 당시 수도권에서 새누리당은 451만6600표를 얻었고, 더불어민주당은 502만1596표를 얻었다. 득표율은 42.0%(민주당)대 37.8%(새누리당)로 큰 차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막상 수도권 의석수는 민주당 82석 대 새누리당 35석으로 더블 스코어 이상으로 벌어졌다. 민주당이 42.0%의 득표율로 전체 수도권 의석(122석)의 67.2%를 가져간 것이다. 제일 억울한 곳은 국민의당인데 수도권 득표율이 15.4%나 됐는데 의석은 고작 2석에 그쳤다. 득표율 1.7%였던 정의당조차 1석이었는데 말이다. 당시 새누리당은 전국적으로 920만690표를 얻어 민주당 888만1369표보다 많이 득표했지만, 의석은 민주당(123석)이 새누리당(122석)을 제치고 1당을 차지했다.

1987년 개헌 이후 특정 정당이 최대 압승을 거둔 2020년 총선(21대)에서 드디어 소선거구제의 모순이 폭발했다. 당시 121석이 걸린 수도권에서 민주당은 103석(85.1%), 미래통합당은 16석(13.2%)을 차지했다. 민주당이 수도권을 싹쓸이한 것이다. 전체 의석 격차(위성정당 포함 민주당 180석, 통합당 103석)가 77석인데 수도권의 격차만 87석이다. 선거가 수도권에서 결판난 셈이다. 그런데 수도권 득표수를 따져보면 민주당은 771만2531표(53.7%), 통합당은 592만2238표(41.2%)였다. 득표수는 민주당이 통합당보다 1.3배 많은데 의석수는 6.4배나 많은 결과가 나타났다. 1등을 제외한 나머지 표는 모두 사표가 되는 소선거구제의 특성 때문이다. 만약 득표율과 의석비율을 똑같이 연동하는 완전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했더라면, 민주당은 전국 49.9%의 득표율로 150석, 통합당은 41.5%의 득표율로 125석을 얻었을 것이다. 소선거구제였기 때문에 25석의 격차가 77석으로 확 벌어졌다.

수도권 득표율 54대41→의석 103대16

아이러니한 것은 21대 총선을 앞두고 진보 진영이 먼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요구했다는 점이다.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 44조3항엔 “국회의 의석은 투표자의 의사에 비례하여 배분해야 한다”는 문구가 추가됐다. 당시 조국 민정수석은 “현재의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방식은 과다한 사표를 발생시키고 정당득표와 의석비율의 불일치로 유권자의 표심을 왜곡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후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밀어붙였다. 그러나 미래통합당의 강한 반대와 민주당 호남권 의원들의 소극적 자세 때문에 연동형 제도의 효과가 많이 감소한 애매한 형태(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현행 선거 제도가 도입됐다.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보수 정당의 전통적 총선 전략은 소선거구제에서 ‘영남권 싹쓸이’를 바탕으로 수도권에서 적당히 선방하면 1당이 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 전략은 2012년까진 통했다. 하지만 2016년 총선부터 수도권에서 심상찮은 징조가 나타났음에도 통합당은 새 전략을 짜지 못하고 관성적인 판단만 하다 2020년 총선에서 대실패를 맛봤다.

총선에서 수도권의 비중이 절대적인 이유는 의석 규모가 압도적으로 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수도권 동질화’ 현상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는 게 더욱 중요한 측면이다. 만약 수도권의 선거구마다 개별 특성과 이슈가 고유하다면 특정 정당이 싹쓸이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지금 수도권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상징되는 주거 환경의 규격화가 고도로 진행됐고, 교통·교육·취업·여가 등 라이프 패턴도 지역마다 엇비슷해지고 있다. 이런 여건에선 122석(22대 총선)의 수도권 표심이 마치 하나의 선거구처럼 움직이기 때문에, 수도권 선거는 호각의 결과보단 21대 총선처럼 한쪽으로 확 쏠리는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훨씬 크다.

민주당 지도부는 대부분 수도권

지금 22대 총선을 앞두고 쏟아지는 각종 여론조사가 더불어민주당의 대승을 예상하는 이유도 수도권에서 민주당의 초강세 때문이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은 “원래 수도권은 호남 출신 유권자가 많고, 진보 성향인 30~40대 샐러리맨의 비중이 높아 보수 진영에 불리한 공간이었다”고 지적했다. 배 소장은 “윤석열 정부의 명운이 수도권 총선 결과에 달렸다는 점을 생각했다면 국민의힘은 진작부터 수도권 민심에 어필할 수 있는 인사를 당 간판으로 내세워야 했는데, 오히려 당 대표·원내대표를 죄다 영남 인사로 앉히면서 거꾸로 갔다”고 말했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도 “국민의힘 지도부가 영남권 시각에 갇혀 선거 전략을 짜다 보니 전국적 관점에서 총선을 준비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의 인구 변동 추이로 보면 수도권의 비중은 앞으로 계속 커진다.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가 대부분 수도권 출신이다. 당의 체질과 전력이 수도권에 최적화됐다는 의미다. 2016년 총선 때 민주당이 호남에서 국민의당에 대패를 당했지만, 1당을 차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반면 국민의힘의 주류인 친윤계에서 수도권 출신은 가물에 콩 나듯 이다. 그러니 국민의힘에서 영남 기득권을 일부 포기하고, 수도권에서 그 이상의 과실을 챙기자는 발상이 나오기가 쉽지 않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선거제 개편 논의가 제기됐을 때 국민의힘 지도부는 줄곧 소선거구제 유지를 외쳤을 뿐, 중·대선거구제나 완전연동형 비례대표제 등은 진지하게 검토를 하지 않았다. 영남권 중심의 사고가 자승자박이 된 형국이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외과 교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나 중·대선거구제가 안정적인 민주주의를 운영하는 데 분명히 도움이 된다”면서도 “투표를 통해 누구를 심판하려는 국민정서에는 소선거구제가 맞기 때문에 다양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