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노키즈 존’ 아닌 ‘패밀리 룸’에 해법 보인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이윤진 서원대 복지행정학과 교수

이윤진 서원대 복지행정학과 교수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4분기 합계출산율은 0.65명이었다. 정부가 저출산 대책을 내놓기 시작한 2004년부터 지금까지 280조원이 넘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다. 2018년에 출산율이 1.0명 이하로 떨어지자 정부는 ‘초저출산 사회’가 됐다며 추가로 대책을 냈지만, 출산율은 지속해서 하락하고 있다. 한국의 저출산 현상을 외신이 주목할 지경이다. 얼마 전에는 국내의 몇몇 기업이 아이를 낳은 직원에게 현금을 지원하거나 대형승합차를 제공한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이는 일부 대기업의 파격적 시도일 뿐이다. 저출산 관련 근로소득 세제 개편 논의도 미봉책에 그칠 공산이 있다. 저출산은 난제 중의 난제가 됐으나 아직도 해결책이 안 보인다.

초저출산은 사회 문제의 결과물
여전히 척박한 가족중심의 문화
사회 인식과 환경을 함께 바꿔야

시론

시론

그렇다면 가장 임신 가능성이 높은 젊은 세대는 왜 출산을 기피할까. 아이를 낳으면 출산에 따른 자기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현실, 아이를 키우는 데 드는 양육비와 교육비를 포함한 큰 비용, 자신의 취업도 불안한 상황에서 누가 누구를 키우겠느냐는 자조 섞인 책임감 등. 이런 모든 사회 문제가 얽히고 농축된 결과물이 저출산이다.

2004년 ‘저출산·고령사회 기본법’을 시행하면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라는 컨트롤타워를 처음 만들었다. 2009년부터 정부의 보육비용 지원을 시작했고, 2013년 이후 보편적 무상보육을 도입했다. 그 이후에도 일·가정 양립을 목표로 하는 서비스 측면의 정책을 도입했다. 그뿐만 아니라 아동수당과 영아수당 도입, 육아 휴직 확대, 돌봄 교실 확대 등 현금 지원 및 시간 지원 정책도 대대적으로 확대했다.

게다가 주거와 교통 지원까지 각 부처가 예산을 투입할 수 있는 모든 분야에서 저출산 대책이라는 명목으로 정책을 확대해 왔다. 그런데도 갈수록 아이를 낳지 않고 있다.

기존 대책을 보면 모든 분야를 포괄하는 정책이 많다. 하지만 여전한 사각지대를 보완해야 한다. 따라서 기존 정책들은 수치로 증명할 수 있는 단시간의 출산율 확대에 집착하기보다는 모든 국민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보장성을 확대하는 일관성 있는 정책으로 가야 한다. 이에 더해 장기적 효과를 염두에 두고 국민의 인식과 사회문화에서 원천적인 해답을 찾아야 한다. 육아 휴직 지원금 상향 조정, 아동수당 확대, 출산 지원금 확대 등으로 출산율이 잠시 소폭 반등할 수는 있을 것이다. 실제로 긍정적인 효과를 보인다는 몇몇 연구가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아이를 낳는 것이 내 삶 속에 매력적으로 다가온다’는 긍정적 인식이 퍼지고 사회문화로 자리 잡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만이 저출산의 근본적 해법이라 생각한다. 저녁이 있는 삶의 확보, 육아 휴직 의무화, 기업의 승합차 무상지원, 유연 근로제 사용 같은 정책들도 ‘가족에 대한 존중과 아이에 대한 배려’가 있는 사회문화 속에서만 제대로 된 정책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노키즈 존’을 내세운 레스토랑이 유행하는 나라에서 출산율이 높아질 수 있겠나. 레스토랑에 부모와 함께 온 아이들을 위한 놀이 공간이나 간단한 키즈 메뉴가 준비돼 있으면 어떨까. 이처럼 가족 중심의 사회문화와 환경 조성이 절실하다.

미국 올랜도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가면 ‘패밀리 룸’이 마련돼 있다. 아이를 패밀리룸에 안전하게 두고 젊은 부부가 잠시 놀이기구를 즐길 수 있다. 이처럼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사회 문화적 인프라와 분위기가 갖춰져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아이 있는 가족을 존중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이다. 지금처럼 가족존중 문화가 척박한 땅에서 출산을 기피하는 것은 어쩌면 합리적 선택일지도 모른다.

총선이 다가오면서 저출산 극복을 내세우며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 조성을 위한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기존 정책에서 이름만 살짝 달리하거나 지원금 액수만 올린 재탕·삼탕이 대부분이다. 차별화된 정책을 찾기 어렵다.

물론 정책 경쟁은 필요하고 정책을 다듬어 나가는 노력도 계속해야 한다. 그렇지만 결과적 출산율 통계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으면 좋겠다. 그보다는 국민의 인식과 사회문화를 바꾸는데 더 힘써야 한다. 가족 중심의 ‘출산 친화형’으로 사회문화를 바꾸면 출산율 반등의 기회는 있다고 본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인내심을 갖고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윤진 서원대 복지행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