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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대화와 타협 절실한 의료개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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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박명림 연세대 교수· 정치학

박명림 연세대 교수· 정치학

의료개혁 문제가 최악의 갈등으로 치닫고 있다. 결론부터 말해 의료체계를 혁신하여 지방회복과 의료개혁을 함께 달성하려는 정부 구상은 옳다. 의료인력 증원 역시 맞다. 그러나 문제는 의료개혁과 지방소멸 방지가 일방적 밀어붙이기를 통해서는 가능하지 않다는 데에 있다. 중요한 문제일수록 민주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의대와 의사 규모의 급격한 증대가 의료개혁의 선결 과제도, 전부도 아니다.

의대 증원 및 의료개혁 필요하나
일방적 강행은 민주주의에 위배
공공·필수의료, 정부 책임 더 필요
자유민주적 원리로 해법 찾아야

전인류적 위기인 코로나19를 거치며 세계는 한국의 의료수준이 얼마나 높고, 의료시스템이 얼마나 잘 갖추어져 있는지를 상찬한 바 있다. 동시에 우리는 공공의료와 필수의료 부문의 기구와 조직, 인력과 예산이 얼마나 작고 부족한지도 절감하였다. 그러나 코로나19 시기에 ‘방역’과 ‘경제’를 의료인들의 헌신과 국민의 협조를 통해 세계 최선두권으로 통과하자 정부는 과거로 돌아갔다. 예산편성을 포함해 공공의료와 필수의료에 대한 정부 역할과 책임, 기구와 지원은 그대로이거나 오히려 더 줄어들었다. 의대 정원 증가와는 반대방향이다.

즉 지금 문제는 정부 스스로 책임과 역할을 통해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의료생태계 개혁은 방치·역행하면서, 대학과 의료 부문에 개혁의 책임과 부담을 요구하는 데에 있다. 일정한 교육과 수련 과정 이후에 현장에 투입될 의대 정원 증가에 앞서 공공의료·필수의료·지방의료의 기관과 예산, 인원과 역할, 수준과 지원을 대폭 제고하는 게 먼저다. 교육생태계 개혁에 앞서 입학 숫자와 정원만 늘린 관계로, 철저히 실패한 대학 교육개혁의 경우를 보자. 국가의 공적 책임과 역할은 외려 역진적이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끌던 시기의 대학교육을 보면 국공립 대 사립의 숫자는 1960년 34개 대 47개(이하 동일), 65년 39 대 92, 70년 57 대 95, 75년 68 대 122, 80년 68 대 147이었다. 공공과 민간 사이가 그런대로 균형을 이뤘다. 그러나 85년 52 대 184, 90년 55 대 187로 확대되더니 2000년 62 대 288, 2005년 60 대 301로 완전히 벌어졌다.

정부 역할과 교육공공성 강화는 회피·역행한 채 급증시킨 사립대학들의 상황은 오늘날 어떤가? 국가의 책임방기를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사례는 없다. 정부의 현재 의료개혁 방식이라면, 대학교육의 ‘역할’과 ‘책임’은 민간(대학)에게 맡겨놓고, ‘규모’와 ‘정책’은 정부가 통제했던 모순을 반복할 것이다. 즉 대학증가에 앞서 대학교육과 교육생태계의 개혁이 먼저였다는 이야기다.

교육개혁 실패가 의료 영역에서 재연되어서는 안 된다. 공공의료·필수의료·지방의료 강화는 의대 정원 증원을 통해 배출될 미래 의료의 문제인 동시에 당장 절실한 문제다. 게다가 지방의료 위기는 지방붕괴의 결과요 귀결이지, 결코 원인도 요인도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수도권과 지방, 그리고 상급종합병원·종합병원·병원·요양병원·의원 사이의 매출액, 지방환자, 요양급여, 개·폐업 현황, 중증·경증 진료비의 전체 규모와 차이와 평균을 분석하면 수도권과 상급종합병원으로의 과도한 집중은 강조할 필요조차 없다. 국제 의료 통계를 따를 때 증원도 필수다.

그러나 더욱 놀랍게도, 한국 사회 다른 영역의 서울 및 최상층부 점유율과 소득의 초(超)과두독점·초과두집중에 비하면 의료 부문은 그나마 낫다. 즉 병원은 권력·법조·금융·교육·언론에 비해 서울과 상층 집중도가 훨씬 더 낮다. 이 말은 지방의료 확충을 늦추라는 말이 아니라, 다른 부문의 더 심각한 불균형 해소와 함께하지 않으면 의료 불평등과 지방붕괴는 해소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권력과 자원 배분 권한의 완전한 중앙 독점은 말할 필요도 없다. 돈? 서울의 대형 은행은 단 하나가 지방금융 전체 규모와 맞먹으며, 4대 은행의 예대 점유율은 80%에 달한다. 법? 전국 지방변호사 규모는 서울 10대 대형로펌 규모에 불과하며, 개업변호사의 85%는 수도권에서 영업한다. 언론? 중앙일간지 단 한 곳의 매출액은 15개 지방신문의 전체 매출액보다 훨씬 크다. 권력·법·돈에서 지방은 서울의 한 작은 부분도 안된다. 끔찍할 정도다. 바른 대책이 없다면 지방의대 정원증대의 퇴영을 미리 보는 듯하여 크게 두렵다.

철저히 실패한 이들 부문과 대학개혁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한국 의학교육과 의료기관의 수준과 경쟁력은 세계 최고다. 최근 발표에 의하면 한국은 세계 최고 병원 순위에서 미국·독일에 이어 세계 3위를 하였다. 세계 100대 병원에도 6개가 포함되었다. 즉 반도체, 문화(한류), 자동차, 스마트폰과 함께 한국의 의료 수준은 단연 세계적이다.

이번 일방적인 의대 정원 증가가 과학기술 연구개발비 급감과 맞물려 국가 과학기술 경쟁력과 이공계 대학교육, 의료시스템을 크게 후퇴시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모두가 동의하는 의료개혁과 지방회복을 위해 강행과 투쟁을 접고 대화와 타협의 자리로 돌아오라. 자유민주주의의 본령이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