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불태워 죽이는 갱단 '바비큐'…무법 아이티, 저승사자 오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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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브해 섬나라 아이티에서 열흘 넘게 갱단의 무장 폭동이 이어지면서 무법천지가 됐다. 자칭 ‘카리브해 로빈후드’인 갱단 두목 지미 셰리지에(46)가 아리엘 앙리(75) 아이티 총리가 사임하지 않으면 내전을 일으키겠다고 경고한 가운데, 미국·독일 등 서방 대사관들의 탈출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국제사회의 신속한 개입이 요구되면서 ‘갱단 저승사자’로 불리는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도 지원 의사를 밝혔다.

갱단 폭동에 美 대사관 직원 일부 철수 

 아이티인들이 지난 7일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아리엘 앙리 총리의 사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아이티인들이 지난 7일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아리엘 앙리 총리의 사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10일(현지시간) AFP통신·가디언 등에 따르면 미국은 군용 헬기를 급파해 현지 주재 대사관 직원 일부를 철수시켰다. 미 남부사령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수도 포르토프랭스 주재 대사관의 비필수 인력을 철수시키기 위해 군용기를 대사관 영내로 보냈다고 밝혔다. 다만 미 국무부는 아이티 주재 대사관이 인원이 줄어든 상태로 제한된 업무를 하면서 계속 열려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아이티 현지에 주재하던 유럽연합(EU) 대표단과 독일 대사 등도 도미니카공화국으로 떠났다. EU 대표단은 안전 문제를 고려해 일시적으로 현지 사무소를 임시 폐쇄하고 최소 인원만 남겨뒀다.

갱단은 아리엘 앙리 총리가 케냐 방문으로 자리를 비운 지난달 29일부터 정부를 무너뜨리기 위한 공격을 시작했다. 경찰서·교도소·병원·항구·공항 등을 습격하고 약탈했다. 지난 3일에는 포르토프랭스에 있는 교도소를 습격해 재소자 3800여명을 탈옥시켰다.

아이티 경찰들이 8일 갱단 폭력 사태로 인해 선포된 비상사태로 포르토프랭스 거리를 순찰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아이티 경찰들이 8일 갱단 폭력 사태로 인해 선포된 비상사태로 포르토프랭스 거리를 순찰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폭동 직후 아이티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했지만, 지난 8일 대통령궁 인근에서도 총격전이 벌어지는 등 폭력 사태가 더욱 심화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거리에 총에 맞아 숨진 시신이 널부러져 있지만, 갱단이 막고 있어 아무도 수습하지 못하고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아이티는 최근 수년간 갱단 연합체인 G9, 지-펩(G-Pep) 등의 분쟁으로 치안이 악화했다. 특히 지난 2021년 조브넬 모이즈 당시 대통령이 숙소에서 암살당한 이후 선거가 치러지지 않으면서 정부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모이즈 대통령이 암살되기 직전에 임명된 앙리 총리는 원래 지난달 7일 사임하기로 했지만, 선거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계속 집권했다.

이에 갱단들은 앙리 총리의 사퇴를 요구하며 폭동을 일으켰다. G9 두목 셰리지에는 지난 6일 기자회견을 열고 "앙리 총리가 물러나지 않고, 국제사회가 계속 그를 지지한다면 아이티는 대량학살로 이어지는 내전을 겪을 것"이라며 경고했다.

'정치 야심' 갱단 두목 "총리 물러나라" 

가디언에 따르면 폭동을 선동한 셰리지에는 전직 경찰관이다. 그는 줄곧 자신을 정의로운 카리브해의 로빈후드라고 묘사하며 최빈국 아이티에서 부정부패에 맞서는 자유 투사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지난 6일 기자회견에서 "큰 호텔에 사는 소수의 부유층이 빈민가에서 사는 노동자 계층 사람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이 포르토프랭스의 빈민가 중 한 곳인 델마스에서 자랐다며 빈민층의 대변자라고 강조했다.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 80%를 장악하고 있는 G9 갱단 연합체 두목 지미 셰리지에. AP=연합뉴스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 80%를 장악하고 있는 G9 갱단 연합체 두목 지미 셰리지에. AP=연합뉴스

외신에 따르면 그는 경찰 시절 70여명이 사망한 빈민가 학살에 가담하고 갱단과 함께 잔혹한 범죄행위를 일삼다가 결국 2018년 쫓겨났다. 이후 9개 갱단을 연합한 G9을 만들어 도로를 봉쇄해 휘발유와 경유 수송을 차단하고, 학교·병원 등을 폐쇄하는 범죄 활동으로 세력을 불려 현재 포르토프랭스의 80%를 장악했다.

아이티 비영리단체인 라코우 라페의 루이 앙리 마르스 국장은 파이낸셜타임스(FT)에 "셰리지에는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화산으로, 카리스마와 머리가 있지만 폭력적인 범죄 사업가"라고 평가했다. 셰리지에는 희생자들을 소각하는 잔혹한 습관 때문에 ‘바비큐’란 별명이 붙었는데, 그는 어머니가 닭튀김을 팔아 이런 별명을 얻었다고 했다.

가디언과 FT는 셰리지에가 부정부패에 맞서 싸우는 혁명가이자 빈민을 도와주는 자비로운 사람이라고 자신을 묘사하는 건 포퓰리스트 정치인으로 변신하려는 열망이 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미국은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앙리 총리에게 일종의 과도정부를 신속하게 구성해 사태를 수습하라고 요구했다. 다니엘 푸트 전 아이티 주재 미국 특사는 "앙리 총리가 사임해야만 갱단 폭동이 수그러들 것"이라고 전했다. 앙리 총리는 현재 푸에르토리코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갱단이 공항을 장악해 케냐 방문 후 아이티로 돌아오지 못했다.

‘갱단 저승사자’ 부켈레도 지원 시사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이 지난 2022년 6월 1일 취임 3주년을 맞아 대국민 연설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이 지난 2022년 6월 1일 취임 3주년을 맞아 대국민 연설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렇게 상황이 심각해진 터라 국제사회의 적극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폴커 투르크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현 상황에선 주민들의 생명을 보호할 현실적 대안이 없다"며 다국적 안보 인력의 개입을 요청했다. 푸트 전 미국 특사는 "미국·캐나다·영국·프랑스 등 주요국의 경찰력이 동원되어야 한다"며 "2000명의 케냐 경찰 지원만으론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자국의 갱단을 대거 소탕해 치안을 안정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도 아이티 지원을 시사했다. 그는 10일 엑스(X·옛 트위터)에 아이티 사태와 관련한 게시물을 공유하며 "우리가 고칠 수 있다"며 "다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와 주재국(아이티) 동의가 필요하고, 임무 비용이 (외부에서) 충당될 필요는 있다"고 했다. 그 외 어떤 방식으로 도울 것인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카리브공동체(CARICOM)는 11일 자메이카에서 미국·프랑스·캐나다·유엔 특사들과 함께 아이티 안보 지원을 위한 긴급 정상회의를 열었다.

유엔은 이번 사태로 수십명이 사망하고 약 1만5000명이 집을 잃었다고 밝혔다. 외교부에 따르면 현재 아이티에 체류한 한국인은 약 70여명이다. 외교부는 "아직 접수된 피해 사항은 없으며 우리 국민 안전을 위해 제반 안전조치를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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