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강주안 논설위원이 간다

기껏 아파트 잘랐는데…공항 옆 고도 초과 장애물 3647곳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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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강주안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입주 시작하는 '고도 위반' 김포 고촌 아파트〉

 강주안 논설위원

강주안 논설위원

 ‘3월 12일부터 입주 시작.’
지난달 29일 카카오톡으로 한 통의 문자가 날아왔다. 경기도 김포시 고촌읍에 있는 신축 양우내안애 아파트 관계자의 연락이다. 8개 동 399가구의 이 아파트는 두 달 전에 입주가 이뤄졌어야 했다. 그런데 아파트가 너무 높게 건설됐다는 이유로 주민들은 이사 직전 “입주 불가” 통보를 받았다. 공항 인근에 적용되는 고도 제한 높이(57.86m)보다 63~69㎝ 초과했다는 이
유다. 살던 집을 팔고 아파트로 이사하려던 주민들이 날벼락을 맞았다.
지난해 12월 22일 한국공항공사가 ‘해당 건축물이 장애물 제한표면을 침투했다’고 통보한 이후 해결 방안을 도출하지 못하면서 결국 멀쩡한 아파트 윗부분 69㎝ 이상을 잘라내는, 사상 초유의 공사가 시작됐다. 당시 “공사를 마친 아파트의 윗부분을 제거하는 게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전문가 경고가 나왔지만, 허가 당국의 입장은 완강했다. 지난달 시작한 공사가 최근 마무리됐다. 15층 아파트의 옥상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지난 8일 오후 3시쯤 해당 아파트를 찾아가 봤다.

제한 고도를 초과한 경기도 김포시 고촌 양우내안애 아파트 옥상의 지난 1월 모습(왼쪽)과 건물 일부를 잘라낸 이후인 지난 8일 모습. 사진 속 인물은 곽종근 지역주택조합장이다. 강주안 기자

제한 고도를 초과한 경기도 김포시 고촌 양우내안애 아파트 옥상의 지난 1월 모습(왼쪽)과 건물 일부를 잘라낸 이후인 지난 8일 모습. 사진 속 인물은 곽종근 지역주택조합장이다. 강주안 기자

전쟁터 방불케 한 ‘아파트 자르기’

지난 1월 26일 현장 취재한 옥상은 여느 아파트와 비슷했다. 엘리베이터 관련 설비가 설치된 옥탑 시설에 옥상 출입문이 있고 난간이 웅장하게 옥상을 감싸고 있었다. 시공사인 양우건설이 한 달여 동안 공사를 진행한 결과 옥탑 건축물이 63㎝ 이상 잘리면서 천장이 확 낮아졌다. 옥상으로 향하는 복도는 보통 키(1m 74㎝)인 기자의 머리가 천장에 닿을 듯 말 듯 했다. 옥상 출입문을 통과하기 위해선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공사를 마친 직후보다 옥탑 시설 높이가 확 낮아졌다. 옥상 난간도 재시공해 윗부분을 잘라냈다. 공사 후 안전 점검에선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받았다. 가장 우려가 컸던 부분은 엘리베이터 설비와 관련된 옥탑 시설이다. 한국승강기안전공단이 최근 실시한 안전 점검에서 ‘추락방지안전장치’ ‘제동’ ‘과속 보호’ 등 모든 항목에서 적합 판정이 나왔다. 김포시청 관계자는 제한 고도 위반과 관련해 “그 부분은 재시공으로 해소가 됐다”며 “공항공사 등 관련 부서에서도 괜찮다는 회신이 왔다”고 말했다.

399가구 주민 입주 막히자 결국 옥상 철근콘크리트 69㎝ 잘라

“잘라내는 게 더 위험” 전문가 지적에도 허가 당국 "원칙대로"

옥상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아파트 단지는 “전쟁터 같았다”고들 한다. 8개 동 옥상에서 다 지은 철근 콘크리트 건물을 잘라내는 위태로운 작업이 벌어졌다. 15층 아파트 옥상에서 육중한 콘크리트를 철거하는 작업은 위험했다. 잘라낸 철근 콘크리트 덩어리를 지상으로 내리는 작업 또한 고난도다.

지난 1월 현장을 돌아봤을 때 지하주차장에 금속으로 된 기둥을 촘촘히 설치하고 있었다. “주차장 붕괴를 막기 위한 조치”라는 게 현장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거대한 철근 콘크리트 덩어리를 옥상에서 지상으로 운반하려면 초대형 크레인이 필요하다. 크레인 무게에 콘크리트 덩어리 중량이 실리면 자칫 건물이 무너질 우려가 있어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지하 주차장에 ‘잭 파이프’를 촘촘하게 받친 것이다. 다행히 공사는 무사히 끝났다.
새 아파트를 잘라내는 공사로 인해 시공사는 수십억 원의 손해가 예상된다. 대부분 서민인 입주자들은 임시 거처에서 지내야 했다. 제한 고도를 69㎝ 초과했다는 이유로 건물을 훼손하는 건 오히려 위험하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관련 당국의 완강한 입장에 공사가 강행됐다.

제한 고도 초과 장애물 즐비해

건설업계에선 “공항 주변에 제한 고도를 초과한 건축물이 엄청나게 많다”는 얘기가 나왔다. 건물이 제한 고도를 초과하면 공항시설법 등 관련 법규에 따라 시공업체 등에 제재를 가하는 건 불가피하지만, 안전 우려가 없는 한 아파트를 훼손한 이번 사례는 잘못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파트 옥상에서 주변을 관찰해봤다. 맨눈으로 보기에 양우내안애 아파트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약간 높아 보이는 아파트도 있다. 김포공항에서 이륙한 항공기가 날아오르는 모습을 관찰했다. 그런데 모두 양우내안애 아파트와는 상당한 거리가 떨어진 항로로 날아간다. 비행 고도 역시 상당히 높아서 아파트 옥상에 충돌할 위험은 없어 보였다.

1년 동안 당국 뭐 했나

무엇보다 이 아파트가 문제의 높이에 도달한 시점은 이미 1년 전이다. 공항공사는 아파트 건축 허가 당시 “최고 높이 도달 후 7일 이내” 통보할 것을 조건으로 제시했다. 이에 따라 시공사가 관련 당국에 공사 현황을 보고했음에도 정밀 측량 등을 통해 안전을 점검하지 않았다는 얘기가 된다. 해당 아파트 높이가 항공기 사고 위험을 초래한다면 지난 1년간 김포공항을 이용하는 비행기가 위험에 노출됐다는 얘기가 된다.
공항 주변에 이런 장애물이 상당히 많다는 사실은 2016년 연구 결과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2015년 기준 김포, 제주 공항 등 7개 민간공항의 경우 약 3000 여개소의 초과 장애물이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되어 있다'는 것이다(박담용 ‘항공안전을 위한 장애물 제한표면 관리시스템의 법·제도적 개선방향에 관한 소고’). 항공법시행규칙 제246조 4항에 따라 장애물 제한표면 구역 내의 모든 장애물에 대해 5년마다 정밀측량을 해 파악한 결과다. 69㎝ 높이를 초과했다는 이유로 지어진 건물을 잘라내야 했다면 3000여개의 장애물이 존재하는 건 어떻게 설명할까. 특히 논문에선 관련 당국의 측량 자체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다. ‘정밀측량을 재실시한 결과 몇 가지 미흡한 개선 필요사항이 나타났다’며 ‘5년 전에 측량해 추출한 초과 장애물의 현황과 일치하지 않고 차이가 다수 발생한다’고 밝혔다. 항공기 안전을 위한 측량의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논문으로 드러난 공항 안전관리

고도 제한을 어긴 장애물이 3000여개에 이른다는 논문 내용에 대해 한국공항공사 측에 문의했으나 공사 측 관계자는 “박담용 전 안전시설본부장이 개인적으로 작성한 논문의 내용을 공사에서 공식적으로 확인해줄 수 없다”고 답했다. 고도제한 초과 장애물 중 고발이나 시정조치 대상이 되는 기준에 대한 질문에는 “고발 등 조치는 관할 항공청에서 수행하고 있다”고만 답했다.
국토교통부에 같은 내용을 질의한 결과 전국 공항에서 관리 중인 인공 장애물이 3647건에 이른다고 밝혔다. (지난해 1월 1일 기준) 또한 2022년에만 18건의 제한 고도 초과 장애물 제거 및 고발 조치가 이뤄졌다. “신규 장애물이 축조되거나 발견되면 비행 안전성 여부에 대한 검토도 매년 실시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실정에서 새 아파트가 제한 고도를 69㎝ 초과했다고 비행 안전성 여부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훼손하는 게 적절했느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아파트 훼손 부적절” 지적 이어져

이 아파트가 최고 높이에 도달한 1년 전에 공항공사 측이 안전 문제 확인에 나섰다면 적어도 399가구 입주민들이 한겨울에 임시 거처를 떠도는 상황은 막았을 수 있다. 서울시의 경우 지난해 6월 신월7동 일대 재개발과 관련, 공항공사 측과 협의해 고도 제한을 57.86m에서 66.49m로 완화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문제가 된 경기도 김포의 아파트(58.55m)보다 훨씬 높은 고도다. 곽종근 김포고촌역지역주택 조합장은 “일단 입주를 할 수 있도록 협의를 진행하자고 요청했으나 소용없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불안한 마음으로 다시 이사를 준비 중이다. 인천 강화의 지인 집에서 지내온 임효순(61·여) 씨는 “12일부터 입주가 된다고 하지만 불안한 마음에 14일로 이사를 잡았다”고 말했다. 임 씨는 “이렇게 서민에게 고통을 주는 게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 오피스텔에서 지내온 김명렬(74) 씨는 “난방이 잘 안 돼 잠을 잘 자지 못하고 병원에 다녔다”면서 “오는 18일에 이사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1년 전 해당 높이 도달했으나 공항공사 적발 못해 주민 피해

지난 8일 오후 돌아본 아파트는 공사 후유증이 곳곳에 남았다. 단지 내 보도블록은 상당수가 깨졌다. 옥상의 철근 콘크리트 덩어리를 땅에 내리려 대형 크레인을 설치해 작업한 결과다. 바닥에 쓴 ‘119 소방차 전용’ 글씨도 벗겨졌다. 아파트 입구엔 보도블록을 교체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김포시청 관계자는 “12일엔 입주가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 “기계적 법 적용 잘못”

서울대 건축학과 박문서 교수는 다 지은 아파트 위쪽을 잘라낸 조치에 대해 “기계적인 법 적용을 통한 잘못된 접근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건축엔 오차 범위가 있는데 법으로만 따지면 해결이 어렵다”며 “건축법 적용은 원칙과 실효성을 담을 수 있는 오픈시스템이 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운용의 묘를 발휘할 수 있도록 관련 기관들 사이에 협의체를 구성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건설정보모델링(BIM) 기술을 접목해 사업 초기부터 공항 주변 장애물의 저촉 여부를 확인 가능한 체계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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