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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학균의 이코노믹스

‘정부와 기업’에서 ‘주주와 기업’의 관계로 관점 전환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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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밸류업 프로그램 제대로 되려면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정부 주도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완화 계획인 ‘한국 증시의 도약을 위한 기업 밸류업 지원 방안(이하 밸류업 방안)’이 지난달 26일 발표됐다. 단기적인 주가 등락으로 정책의 성패를 논하는 건 온당치 않지만, 발표 이후 코스피는 보합권에 머물러 있다. 밸류업 방안에 대한 투자자의 초기 반응은 ‘다소 실망’인 듯하다. 밸류업 방안의 핵심은 상장사의 ‘자본 효율성 제고’와 ‘주주환원 확대’를 통한 주가 부양인데, 이런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강제 조항이 없어 거의 전적으로 기업의 선의에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다.

스튜어드십 코드, 소득환류세 등
정부 주도 강제 제도 성과 미미

일, 주주환원으로 밸류업 추구
미국계 주주행동주의 펀드 활용

상법, 주주에 대한 이사 책임 명시
상속세 부과 기준 개편 고민해야

정부도 5월쯤 밸류업 2차 지원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라 보완된 내용이 나올 수 있겠지만, ‘제도적 강제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자본시장에서 정부 주도의 ‘강제성’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용두사미로 끝났던 스튜어드십 코드와 관련된 논의를 떠올려 보자. 기관투자가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통해 투자자 이익을 보호하려고 했던 스튜어드십 코드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 과제였다. 정권 출범 초의 높은 기대에도 스튜어드십 코드는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는데,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관 투자가의 기반이 극히 취약했기 때문이다. 투자자가 주식형 펀드를 외면하면서 기관투자가의 핵심인 자산운용사의 영향력이 급속히 축소돼, 국민연금을 제외하면 주주권 행사를 할 수 있는 유의미한 민간의 기관투자가 집단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환경에서 스튜어드십 코드가 활성화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주주권 강화에 적극적으로 나선 일본

주주가치 제고 방안은 아니었지만, 박근혜 정권 때 도입했던 ‘기업소득 환류세제’도 참고해 볼 만하다. 일부 대기업이 점유하고 있는 부(富)를 국민경제 전반으로 순환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됐던 법안인데, 자기자본 500억원 이상의 기업이 벌어들인 당기순이익의 80% 이상을 배당이나 설비 투자, 임금 인상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징벌적 과세를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기업의 유보금에 세금을 부과하는 매우 강력한 정책이었지만, 이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유야무야됐다. 징벌적 과세에 대한 공감대가 약해 지속성을 갖기 힘들었던 탓이다.

정책의 ‘강제성’에 초점을 맞추는 태도는 밸류업 방안을 ‘정부와 기업’의 관계로 보는 데서 비롯된다. 논의의 방향을 ‘기업과 주주’ 또는 ‘소수의 지배주주와 다수의 소액주주’의 관계로 돌려야 한다. 자본 효율성 제고이건, 주주환원이건 기업의 성과와 분배에 가장 본질적인 이해관계를 가지는 집단은 주주이기 때문이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밸류업 방안의 원조 격인 일본도 주주권 강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아베 내각의 경제 책사였던 이토 쿠니오 교수가 ‘지속적 성장을 위한 경쟁력과 인센티브-기업과 투자자의 바람직한 관계 구축’이라는 리포트를 발표했던 때가 2014년 8월이었다. 이토 교수는 일본 경제의 활력이 떨어지고 있는 가운데, 국부의 많은 부분을 기업이 가지고 있다는 데 주목했다. 국가의 부가 기업에 몰려 있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부를 기업이 성공적으로 증식시키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었다.

일본 기업의 낮은 ROE(자기자본이익률)와 PBR(주가순자산비율) 1배를 하회하는 주가는 이런 우려를 뒷받침해주는 증거였다. ROE는 회계상 주주의 몫인 자기자본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증식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잣대다. PBR 1배를 하회하는 주가는 낮은 ROE의 산물인 경우가 많다. 향후 자기자본이 효율적으로 증식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클 경우 주가가 자기자본(=순자산)을 밑돌게 된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법은 주주환원을 늘리는 것이다.

밸류업 성공, 주주환원 확대에 달려

쌓여있는 부를 성공적으로 증식시키기 어려운 기업이 경제적 자원을 틀어쥐고 있기보다는, 배당 등을 통해 주주에게 돌려주면 나름의 선순환이 작동하게 된다. 주주가 배당금을 소비에 사용할 수도 있고, 자본 효율성이 높은 기업에 재투자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주주환원은 기업의 ROE 개선에도 도움이 된다. 주주환원은 기업의 장부에 기재돼 있는 주주의 몫인 자기자본을 주주에게 직접 돌려주는 행위다. 그래서 배당과 자사주매입과 같은 주주환원은 자기자본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ROE는 당기순이익을 자기자본으로 나눈 값이다. 고성장 시대에 일반적인 ROE 개선 방법은 분자인 당기순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있지만, 성장이 둔화한 경제에서는 분모인 자기자본을 적절히 줄임으로써 ROE를 높일 수 있다. ROE가 높아지면 주가도 순자산가치 이상으로, 즉 PBR 1배 이상으로 오를 수 있다. 밸류업 방안에서 자본 효율성(ROE), 주주환원, PBR 등이 자주 거론되는 것은 이런 논리적 연결고리 때문이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결국 밸류업의 성공 여부는 주주환원의 확대 여부에 달려 있다. 다만 어느 정도의 주주환원이 적절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정답이 있을 수 없다. 삼성전자는 2018년부터 배당을 획기적으로 늘리고 있는 주주환원 모범기업이다. 상장사로서 주주를 배려하는 것은 칭찬받을 일이지만, 삼성전자의 주주환원은 너무 과한 게 아닌가 싶다. 최근 10년 삼성전자의 평균 ROE는 15%를 상회한다. 자본 효율성이 높은 기업은 배당 등을 통해 경제적 자원을 사외로 유출하기 보다는 재투자를 통해 파이를 키우는 것이 장기적인 주주가치 극대화에 부합하는 전략이다. 반도체 산업이 주기적인 대규모 투자가 요구되는 장치산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 그렇다.

적절한 주주환원 규모는 정부의 지침이 아니라 기업과 주주 간 소통을 통해 결정돼야 한다. 한국처럼 주주환원율이 낮은 증시는 어느 정도는 기업에 대한 주주의 압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일본은 주주 행동주의의 도입을 통해 주주환원을 늘릴 수 있었다. 한국이나 일본은 주주 행동주의가 활성화되기 힘든 국가다. 지연과 학연으로 대표되는 관계 지향적 사회이기 때문에 지배주주와 경영진에 대립각을 세우는 주주 행동주의가 자리 잡기 힘든 사회·경제적 풍토를 가지고 있다.

거수기에 그친 사외이사 책임 강화해야

아베 정부는 일본에 연고가 없는 미국계 주주 행동주의 펀드를 일본 증시로 불러들였다. 일본 증시에 외국인 투자자라는 메기를 풀어 현상 타파에 나섰던 셈이다. IMF 외환위기 직후 한국이 급진적 자본시장 개방을 통해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외국인 투자자의 힘을 빌렸던 것처럼 말이다. 적대적 주주 행동주의까지는 아니더라도 소액주주가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고, 기업도 다수 소액주주의 이해를 반영해 의사 결정을 유도하는 쪽으로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상법 개정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촉구한다. 주식투자에는 필연적으로 대리인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주식을 매수함으로써 지분율에 비례하는 기업의 소유권을 가질 수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경영에 참여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기업에 고용된 임직원들이 주주 이익에 부합하는 의사 결정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이사회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해야 하는데, 아쉬움이 많다. 특히 경영진과 지배주주로부터 독립적인 목소리를 내라고 이사회에 참가시킨 사외이사가 거수기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사외이사 선정에 지배주주의 의사가 가장 강하게 작용하는 풍토에선 당연한 일이다. 상법 개정을 통해 주주에 대한 이사의 책임 강화를 명시해야 한다.

상속세법 개정도 고려해야 한다. 한국 상장사의 지배주주, 특히 대기업의 지배주주는 소수의 지분으로 경영권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주가가 오른다고 지분을 매각할 수 없다. 반면 상속세는 주가에 연동돼 부과되기 때문에 주가 상승이 지배 주주에게 오히려 부담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팔 수도 없는 지분에 상속세 부담은 커지기 때문이다. 상속세는 불평등의 완화 기제라는 점에서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이슈이지만, 세율 조정이 아니라 상속세 부과의 기준을 바꾸는 것은 고려해볼 만하다.

상장사의 주가가 상속세 산정의 기준이 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상속세를 주가에 연동시키는 것은 시장이 모든 정보와 미래에 대한 기대를 반영해 합리적으로 가격을 형성한다는 시장 원리주의적 편향의 산물이다. 탐욕과 공포를 오가는 불완전한 인간이 만들어내는 특정 시점의 주가가 합리성을 담보하고 있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주가는 기업의 펀더멘털을 반영하지만, 어떤 때는 버블 권역에서 어떤 때는 저평가 권역에서 움직인다. 동일한 기업 실체에 대한 상속세가 시황에 따라 다르게 부과되는 것은 불합리하다.

상속세와 주가 연결 끊어내야

오히려 재무제표를 통해 추론할 수 있는 본질 가치가 상속세 부과의 합리적 기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상속세를 줄이자는 게 아니라 상속세 부과의 기준을 합당하게 바꾸자는 것이다. 상속세와 주가의 연결고리를 끊어낼 경우 지배주주와 소액주주의 이해관계 불일치를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증시의 밸류업을 위해서는 기업(또는 지배주주)과 소액주주 간의 건전한 긴장 관계 형성이 필요하다. 기업에 대해 직접적 인센티브와 페널티를 제시하는 것보다 제도 개선으로 주주권이 잘 행사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더 절실하다. 과도한 단기주의 등 주주권 과잉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제대로 된 주주 자본주의를 경험해 보지 못한 한국 증시에서 주주권 과잉을 미리부터 걱정하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