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시원하게 양보나 하는’ 영혼 없는 곳간지기 기재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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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가 근간 흔들 위기의 총선판

1억원의 출산지원금을 받은 부영 직원이 과도한 세금 부담을 토로하자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비과세 방침을 밝혔다. 저출생 대책에 기업·정부가 함께 나서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세금 일부 감면은 몰라도 전액 비과세 조치는 과도하다. 조세의 원칙 문제인 만큼 통 크게 선심 쓰듯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

윤 대통령은 민생토론회에서 “기재부 장관님이 시원하게 양보했다”고 했다. 외견은 국민 요청에 기재부가 양보하는 형식이지만 실제는 토론회 내용과 형식을 주도한 대통령실의 요구에 ‘시원하게’ 부응한 것이다. 기재부는 “출산지원금 비과세는 대통령실과 아무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믿기 힘들다. 최고의 선진 세제라던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를 비롯해 대주주 주식양도세 기준 완화 등 용산의 뜻에 밀려 입장을 조변석개한 게 어디 한둘인가.

기재부는 나라의 ‘곳간지기’다. 이명박 정부 땐 정치권의 총선 공약 비용을 발표해 포퓰리즘 견제에 나서기도 했다. 재정을 탕진한 문재인 정부에서 기재부 책임이 크지만 그래도 김동연 부총리는 최저임금 인상 속도 조절을 놓고 청와대와 싸웠다. ‘홍백기’ 소리를 듣던 홍남기 부총리도 말년엔 “이 나라가 기재부의 나라냐”는 구박을 견디며 버티기도 했다. 지금 기재부는 용각산처럼 아무 소리가 나지 않는다. 심지어 민주당이 현 정부를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는 웃지 못할 상황인데도 기재부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이러니 정말 “영혼 없는 곳간지기” 소리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