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정김경숙의 실리콘밸리노트

협업을 부르는 종소리, 땡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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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정김경숙 전 구글 글로벌커뮤니케이션 디렉터

정김경숙 전 구글 글로벌커뮤니케이션 디렉터

땡땡땡! 언제 종을 쳐본 적이 있었던가? 미국 수퍼마켓 체인 중 수년째 고객만족도 1위인 트레이더조(일명 ‘트조’)에서 일하면서 1년 간 종을 엄청 쳐댔다. 구글 본사가 있는 마운틴뷰 트조 매장에는 각 계산대 앞에 종이 하나씩 달려있다. 트조 계산대 직원(캐셔)들은 무슨 암호인 양 종을 각기 다르게 울려댄다. 땡, 땡땡, 땡땡땡, 땡땡땡땡.

고객만족 1위 수퍼마켓의 비결
빠른 고객응대 위해 종소리 소통
종 울리면 하던 일 멈추고 달려와
‘남의 성공=내 성공’은 불변법칙

실리콘밸리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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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 종 한번. 계산대에 고객들의 줄이 길어지니 계산대를 비운 사람은 바로 계산대로 돌아오라는 소리다. 트조는 계산대를 유기적으로 운영한다. 가령 계산대가 10개지만 좀 덜 바쁜 시간에는 너덧 군데서만 캐셔가 일을 하고, 나머지 캐셔들은 제품 진열 같은 일을 한다. 그러다가 종소리 한번 땡하고 울리면 재빨리 계산대로 달려온다. 우리 매장에서는 계산대 앞에 고객들이 두 명 이상 서 있는 모습을 못 본다. 고객들이 기다리지 않도록 캐셔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땡땡. 종 두 번. 캐셔에게 뭔가 도움이 필요한 거다. 예를 들면 고객이 달걀 10개들이 한 케이스를 샀는데, 케이스를 열어 확인해보니 계란 하나에 금이 가 있다. 직원은 앞에 있는 종을 두 번 울린다. 그 소리를 듣고 한 동료가 “Two bells!”라고 외치며 달려온다. 종을 친 동료의 부탁을 받고 달려온 동료는 매장선반으로 달려가 새 계란을 갖다 준다. 봉지에 담긴 사과 중 멍든 사과를 발견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종소리를 듣고 달려온 동료가 새 사과 봉지를 갖다 준다. 고객이 집에 갔더니 계란이 깨져 있다든가, 사과가 멍들어 있다면 얼마나 속상하겠는가. 트조 직원들은 고객 입장에서 고객보다 더 까다롭게 제품을 살핀다.

땡땡땡. 종 세 번. 계산대 직원이 매니저가 필요하다는 소리다. 환불이나 교환을 요청하는 고객이 오면 종을 세 번 울린다. 매장에는 매니저가 서너명 일하고 있다. 매니저들은 해당 계산대로 달려와 환불해 준다. 트조는 묻지 마 환불 정책을 갖고 있다. 이유 안 물어본다. 정말 다 먹고 온 과자봉지를 가지고 와서 “너무 매워서 먹기 힘들었다”고 말하는 고객에게 돈을 돌려준다. 포장지에 ‘very spicy’(매우 매움)라고 적혀 있는데도 말이다. 너그러운 환불정책으로 손해가 많이 날 것 같으나 그렇지 않다. 3달러짜리 제품 하나 환불하러 온 고객들 대부분 카트 한가득 다시 쇼핑하고 간다. 신뢰가 있기 때문에 맘껏 쇼핑한다.

땡땡땡땡. 종 네 번. 아, 이건 보통 사건이 아니다. 매장에 일하는 모든 직원(거의 40명가량)이 하던 일을 멈추고 즉시 계산대 쪽으로 와야 한다는 신호다. 모든 직원이 즉각 합심해야 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지난 1년 동안 딱 두 번 들었다. 한번은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쇼핑객들이 갑자기 쏟아져 각각의 계산대 줄이 10m를 넘어섰을 때다. 종소리가 네 번 울리자 매장 곳곳에서 일하고 있던 매니저들과 모든 직원이 계산대로 와서 계산을 돕거나 장바구니에 물건 넣는 일을 했다. 또 한 번은 매장 물건을 훔쳐가려던 도둑이 주변 고객에게 들키자 와인 세병을 매장 바닥에 던져버리고 달아났다. 매장 곳곳이 산산이 조각난 와인병 유리 조각으로 덮이고, 엎질러진 와인으로 벌겋게 물들었다. 그러나 네 번의 종소리에 순식간에 달려온 모든 직원이 미끄럼주의 푯말, 빗자루, 쓰레받기, 걸레, 와이퍼, 바닥 청소기 등을 갖고 와서 청소해 5분도 안 되어 무슨 일이 있었나 싶게 다시 깔끔해졌다.

트조의 이 종소리 시스템은 협업문화의 정수를 보여준다. 자기가 맡은 일로 바쁜 상황인데도 다른 동료들을 도우려고 다들 안달 난 사람처럼 보인다. 특히 도움이 필요한 캐셔가 땡땡하고 두 번 종을 울리면 그 소리를 듣고 동시에 달려오는 직원이 서넛은 된다. 물론 가장 빨리 외친 사람이 와서 도와주게 돼 있다. 그러면 한발 늦어 헛탕친 동료들은 가장 빨리 달려간 동료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 들면서 “You won!(네가 이겼다)”면서 웃으며 돌아간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내가 구글에 다니면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도 이런 협업 문화였다. 내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모두 같이 성공해야 한다. 트조에서는 모든 직원이 시간대별로 캐셔 역할을 돌아가면서 하기 때문에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때 달려와 주는 동료가 얼마나 고마운지 안다. 그렇기 때문에 종소리 두 번을 들으면 질세라 하던 일 멈추고 무조건 달려오는 거다. 남의 성공이 내 성공이 되는 기업문화가 있어야 조직이 성공한다. 20만명에 가까운 거대 기업 구글이나 200명도 안 되는 작은 조직인 수퍼마켓도 예외가 아니다.

정김경숙 전 구글 글로벌커뮤니케이션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