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선2035

존경받는 직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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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정진호 기자 중앙일보 기자
정진호 경제부 기자

정진호 경제부 기자

중·고등학교 때까지 기자는 존경받는 직업 중 하나였다. 사회 발전에 이바지하고, 다른 사람에게 존중도 받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목표로 기자가 됐다. 현실은 달랐다. 기자라는 명함을 받아들고 나선 이후 존중보단 비난의 시선을 더 많이 받았다. ‘기레기’라는 말은 이제 너무 흔해 모욕죄도 성립하지 않는다.

어떠한 직업 뒤에 상대방을 높여 부르는 의미의 ‘님’이라는 의존명사가 자연스럽게 따라붙는 직업은 많지 않다. 흔히 쓰는 사장·부장·차장 뒤에 ‘님’은 직업이 아닌 직함 뒤에 붙이는 것일 뿐 직업과는 다르다. 요리사님, 은행원님, 가수님 등 직업 뒤에 하나씩 님을 붙여보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다.

지난달 29일 대한민국 정부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우리 곁으로 돌아와 주세요’ 유튜브 영상. [유튜브 캡처]

지난달 29일 대한민국 정부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우리 곁으로 돌아와 주세요’ 유튜브 영상. [유튜브 캡처]

기레기라고 불리기 이전에 기자님이라는 말이 쓰이던 때도 있었다. 민주화 등 사회 발전 과정에서 기자의 역할이 있었음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개인의 이익만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한다는 게 직업에 ‘님’이 붙는 전제다. 성직자들을 목사님·스님 등으로 부르는 것을 고려하면 직업윤리를 지키기 위해 높은 도덕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도 이 같은 존중 표현의 전제임을 알 수 있다.

의사는 그냥 의사님도 아니다. 무려 ‘의사 선생님’이 통용되는 호칭이다. 그 어떤 직업보다도 더 많이 존경받았다는 뜻이다. 어린 시절 본 위인전집엔 슈바이처 의사가 빠지는 일이 없었다. 전집이 30권이든, 50권이든 몇 권으로 구성됐건 간에 슈바이처 의사는 꼭 포함됐다. 같은 맥락에서 의료인 나이팅게일도 마찬가지다. 생명을 살리는 일이 그만큼 숭고해서다.

의사 파업 이후 의사 선생님은 ‘의새’가 됐다. 심지어 N번방 사건의 범죄자 조주빈을 빗댄 ‘의주빈’, 이스라엘에서 민간인을 학살한 하마스와 합친 ‘의마스’라는 단어까지 등장했다. 의사가 존경받은 이유는 환자의 생명을 지킨다는 직업윤리가 숭고해서다. 이 전제가 무너졌을 때 그 반발도 더 크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기자가 그랬다.

김민철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포털 뉴스 댓글을 통해 본 “기레기 현상”’에서 “기레기라는 표현이 언론에 대한 불신을 넘어 기사를 쓰는 기자에 대한 공격으로 나타난다”며 “저널리즘 윤리를 저버리는 기자에 대한 반감의 표현”이라고 설명한다. 기자가 가진 권한을 공정하게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독자의 의심으로, 내 직업은 존경을 잃었다.

상대적으로 센 업무 강도나 많지 않은 월급, 이런 것보다 기자 하기 어려운 건 기레기라는 시선이다. 재작년 검찰을 그만둔 A 검사는 사직 이유를 묻자 “처음 만난 사람한테 검사라고 소개하는 게 꺼려져 거짓말까지 했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에 존경받는 직업이 몇 남지 않았다. 의사는 계속 그런 직업으로 남을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