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 1000만원 있어도 못쓴다…울면서 불법알바 뛰는 K유학, 왜 [K유학의 그늘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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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숙 평택대 유학생지원센터장(교양학부 교수)과 베트남 출신 유학생들. 전 교수는 결혼이주여성 최초로 국내 대학 전임교수가 된 사람으로 평택대에서 유학생 학업지도, 체류 관리 업무를 하고 있다. 손성배 기자

전정숙 평택대 유학생지원센터장(교양학부 교수)과 베트남 출신 유학생들. 전 교수는 결혼이주여성 최초로 국내 대학 전임교수가 된 사람으로 평택대에서 유학생 학업지도, 체류 관리 업무를 하고 있다. 손성배 기자

“당근에서 사고 판 물건이 무엇인지, 누구한테 산 건지, 상대방의 휴대전화 번호까지 입출금내역 확인서에 써서 제출해주세요.”

경기 평택대학교 유학생지원센터는 매주 유학생 126명 전원을 단체나 개별 상담해 개개인의 통장에 최소 1000만원 이상 잔고가 남아있는지 확인한다. 잔고가 그 아래로 떨어져 출입국당국에 적발되면 한국 체류 자격을 잃고 불법체류자가 되기 때문이다.

학령 인구 감소로 외국인 유학생 유치를 생존 전략으로 삼은 지방대학들이 ‘잔고 증명과의 전쟁’ 중이다. 재학 중인 유학생이 잔고 증명을 어겨 적발되면 불법체류 신분으로 학적을 박탈당하고, 각 대학은 중도 이탈률이 높아져 비자발급 제한 대학으로 지정돼 새로 유학생을 받을 수 없다. 최근 5년간 잔고 유지를 못 했거나 재정증명서를 위조하는 등 출입국관리법 26조(허위서류 제출 등) 위반으로 적발된 유학생은 667명이다. 이 중 68명이 강제퇴거 또는 출국명령 조치를 받았다.

국내 체류 유학생 22만명…불법 체류율 20% 육박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등에 따르면 국내 체류 외국인 유학생(학사 및 대학원, 어학연수생 포함)은 지난해 22만6507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2003년 1만2314명에서 20년 만에 18.4배 늘었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각국의 국경 통제로 유학생 증가세가 주춤했던 2020년(15만3361명) 이후 3년 동안 7만3000여명(47.7%) 급증했다.

반면에 유학생 불법체류자 수도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 2018년 1만3945명(8.7%)에서 2020년 2만8240명(18.4%)로 급증하더니 2021년 3만2530명(19.9%) 이후 유학생 불법 체류율이 15~20%를 오가고 있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K유학생 22만명 시대에 그늘이 드리운 건 정부가 정원 미달로 재정난을 겪는 지방대학들에 유학생 유치만 장려하고선 노동시장과 연계한 인력 활용 대책은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 8월엔 “오는 2027년 유학생 30만명 시대를 열겠다”며 ‘스터디 코리아 300K 프로젝트’까지 발표했다. 그러면서 기존 유학생 비자 발급을 위한 재정 증명(통장 잔고) 기준을 수도권 대학 학위과정 2만 달러→2000만원, 지방대학 학위과정 1만6000달러→1600만원, 어학연수 과정 1만 달러→1000만원으로 완화했다.

달러에서 원화로 기준을 바꾸면서 예치금 액수가 조금 줄었지만 잔고 증명이 불법체류를 부추긴다는 지적도 현장에서 나온다. 중도이탈 방지를 위해 도입된 잔고 유지를 위해 유학생을 시간제 알바로 내몰고 있다는 것이다. 예치금은 국내 체류 기간 원칙적으로 찾을 수 없고, 비자 연장을 할 때도 재정 증명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비자 브로커에 돈 주고 학비도 선불…예치금에 손 대

유학생 입장에선 이 통장 잔고를 비상금으로 쓰고 싶다는 유혹에 시달린다. 입국 직후 6개월 동안 아르바이트를 할 수 없는 어학연수생들은 유혹에 빠지기 쉬운 쌈짓돈이다. 지난해 11월 27일 한신대의 우즈베키스탄 어학 연수생 22명 강제출국 사건은 인권침해 논란으로도 비화했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당시 강제출국된 오이디노이(23)의 남편인 에르킨 존(30)은 “비자발급 대행 학원(브로커)에 서비스 요금으로 3500달러를 줬고, 등록금·기숙사비 1년치(약 1000만원)를 한 번에 냈기 때문에 재정 증명 잔고를 찾아도 되는 줄 알았다”고 억울해했다. 현재 이 사건은 국가인권위원회와 경기 오산경찰서가 각각 진정과 고발장을 접수해 조사 중이다.

한신대 유학생 강제출국 논란의 당사자 남편인 우즈베키스탄 출신 에르킨 존(30)이 지난해 12월 오산경찰서에 출석해 조사를 받기 전 한신대 교직원들과 나눈 텔레그램 대화창을 보이고 있다. 손성배 기자

한신대 유학생 강제출국 논란의 당사자 남편인 우즈베키스탄 출신 에르킨 존(30)이 지난해 12월 오산경찰서에 출석해 조사를 받기 전 한신대 교직원들과 나눈 텔레그램 대화창을 보이고 있다. 손성배 기자

합법 유학생 취업허가 9.4%…90% 이상이 불법 알바

K유학생 22만 시대의 더 근본적 문제는 유학생이 공부가 아니라 돈을 벌려고 한국에 온다는 점이다. 알바로 한 달에 버는 수입 150만~200만원은 본국의 대졸 초봉이나 교사·공무원 급여의 3~5배다. 유학생도 평점 3.0 이상을 얻으면 장학금 혜택도 받을 수 있지만 학점은 학사경고(1.75점 미만)를 받지 않는 최소한을 유지한 채 알바에 매달리는 건 이 때문이다.

평택대 영화과 3학년 레티튀(21·베트남)는 “평일 저녁엔 곱창집에서 내장을 씻고, 일요일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해서 학비와 생활비를 번다”며 “재정 증명 계좌에 돈은 절대로 빼면 안 된다고 들어서 아예 건드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소프트웨어과 4학년 찬부렁(23·베트남)도 숯불구이집 아르바이트와 외국인 기숙사 근로장학생으로 일과 학업, 취업 준비를 병행한다.

하지만 현장에선 “불법 알바가 대부분”이란 말이 나온다. 실제 합법적인 ‘유학생 시간제 취업허가’를 받은 유학생은 지난해 2만1437명(9.4%)에 불과했다. 취업허가를 받으려면 사전에 아르바이트 사업장과 근로계약서를 작성해 신청해야 하는 등 허가 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K유학은 결국 유학생과 유치 대학이 ‘강제 출국’ ‘비자 제한’이란 시한폭탄을 안고 지탱되고 있는 셈이다. 잔고를 유지 못 한 유학생은 학위도 받지 못하고 본국으로 쫓겨나고, 대학도 유학생 중도이탈률이 10%가 넘으면 벌칙을 받는다. 순천대 관계자는 “학교는 잔고를 위반한 학생을 적발해 제적할 수밖에 없고, 제적된 학생이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숨어버리는 일도 종종 있다”며 “학교가 관리 책임을 모두 지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법무부 출입국 당국도 대학들의 민원이 빗발치자 현행 비자발급 제한 제도 대신 ‘유학생 초청 삼진아웃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행 잔고 증명 요건은 완화하되 출입국관리법 및 관련 규정을 3회 위반하는 대학에 대해 3년간 유학생 신규 초청 및 편입학 등 유학생 유치를 중단하게 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다만 법무부 관계자는 “재정 증명은 유학생의 체류 기간 연장 평가 항목이기도 하고, 긴급 출국 시 비용 부담을 지우는 수단이기도 하다”며 “일정 수준 이상의 잔고는 필요하다”고 밝혔다.

평택대 영화과 3학년 베트남 출신 유학생 레티튀(23)가 학교 근처 식당에서 고추를 썰고 있는 모습. 손성배 기자

평택대 영화과 3학년 베트남 출신 유학생 레티튀(23)가 학교 근처 식당에서 고추를 썰고 있는 모습. 손성배 기자

K유학 22만명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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