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발니 옥중사…'푸틴이 아낀 살인마' 맞교환 작전 엎어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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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의 최대 정적’ 알렉세이 나발니(47)가 시베리아 교도소에서 사망하자, 독일에 수감 중인 ‘러시아 살인자’ 바딤 크라시코프의 석방 가능성이 사라졌다는 보도가 나왔다. 크라시코프는 ‘푸틴의 총애를 받는 암살자’로 불리는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요원으로, 2021년 독일에서 종신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다.

러시아의 살레하르트에 설치된 나발니 추모비에 러시아 시민들이 헌화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의 살레하르트에 설치된 나발니 추모비에 러시아 시민들이 헌화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나발니, 석방 직전 살해됐다"

26일 로이터통신은 러시아 소식통의 발언을 인용해 나발니의 사망 직전, 미국과 독일·러시아 3국이 나발니와 러시아에 억류된 미국인 2명을 크라시코프와 3대 1로 교환하는 데 원칙적으로 합의한 상태였다고 전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나발니가 사망하면서 독일이 합의를 틀었고 크라시코프의 석방은 요원해졌다고 보도했다.

독일 신문 빌트도 “나발니는 불과 몇 주 혹은 몇 달 안에 크라시코프와 교환될 수 있었다”고 전했다. 미국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 역시 서방 관리를 인용해 “나발니를 포함한 수감자간 교환 협상에 대한 논의가 미국‧독일 간에 진행 중이었다”고 확인했다.

매체는 나발니 외에 수감자 교환 대상이 러시아에 구금 중인 월스트리트저널(WSJ) 기자 에반 게르시코비치와 미 해병 참전용사인 폴 휠런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도 전했다.

러시아에서 간첩 혐의로 체포된 월스트리트저널 기자 에반 거시코비치의 일러스트. AFP=연합뉴스

러시아에서 간첩 혐의로 체포된 월스트리트저널 기자 에반 거시코비치의 일러스트. AFP=연합뉴스

이런 보도들은 앞서 러시아의 ‘반부패단체’의 회장인 마리아 페브치흐가 유튜브 영상을 통해 “지난 15일 (나발니 석방에 대한) 협상이 최종 단계에 이르렀다는 확인을 받았고, 다음날 나발니가 살해됐다”고 주장했던 내용 중 일부와 맞아떨어지는 면이 있다.

페브치흐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나발니가 포함된 3대 1 수감자 교환에 대해 지난달 초에 제안받았다. 해당 제안을 푸틴 대통령에게 전달한 인물은 러시아 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라고도 적시했다.  

이어 “푸틴은 크라시코프를 구할 유일한 방법이 나발니와 교환하는 것이란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면서 “다만 나발니의 석방을 용납할 수 없다는 ‘완전히 비합리적인 증오심’에 휩싸여 협상의 칩(나발니)을 제거하는 비이성적 행동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페브치흐는 해당 주장에 대한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러시아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의 생전 모습. AP=연합뉴스

러시아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의 생전 모습. AP=연합뉴스

"獨, 크라시코프 절대 꺼내주지 않을 것"

애초 수감자 교환 협상은 독일의 참여가 관건이었다고 FT는 전했다. 크라시코프는 FSB 소속의 전문 암살자로, 2019년 독일 베를린의 한 공원에서 체첸 반군의 야전 사령관 출신인 젤림칸 칸고슈빌리를 총으로 쏴 살해했다. 당시 독일 법원은 크라시코프가 러시아 당국의 지시에 따랐다고 판결했다.

이후 미국 정부는 러시아에 억류된 자국 시민의 석방을 위해 독일 정부에 크라시코프를 교환 카드로 사용하자고 여러 차례 설득했지만, 독일은 크라시코프를 풀어줄 수 없다며 완강히 거절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근 몇 달 동안 나발니의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됐고 그를 교환 대상에 집어넣자 독일이 입장을 바꿔 크라시코프를 교환하는 협상에 합의했던 것이라고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2020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바딤 크라시코프의 재판 모습. AP=연합뉴스

2020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바딤 크라시코프의 재판 모습. AP=연합뉴스

하지만 나발니가 석방 전에 급사하자, 독일은 다시 크라시코프를 내줄 수 없다는 입장으로 강경 선회했다. FT는 미국 관리의 발언을 인용해 “독일은 게르시코비치·휠런과 크라시코프를 교환하는 협상에는 냉담하다”며 “러시아가 후원하는 살인자를 풀어줄 만한 가치가 있는 상대는 더 이상 없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어 매체는 “독일 정부는 어떤 협상에도 크라시코프를 꺼내주지 않을 것이며, 그의 상황은 이전보다 훨씬 악화됐다”고 전했다.  

앞서 푸틴 대통령은 이달 초 터커 칼슨 폭스뉴스 전 앵커와의 인터뷰에서 게르시코비치 WSJ 기자의 교환 석방 가능성에 대해 “협상의 문은 열려 있다”면서 맞교환 대상으로 ‘강도를 처단하고 미국의 동맹국에 수감된 남자’를 언급했다. 크라시코프를 지목한 것이다. 전에도 푸틴은 크라시코프를 “애국자”라 부르며 애정을 공공연히 드러내왔다.

지난달 9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이 미국 폭스뉴스 진행자 터커 칼슨과 인터뷰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달 9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이 미국 폭스뉴스 진행자 터커 칼슨과 인터뷰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나발니 장례식, 푸틴 국정연설 같은날?

한편 한때 행방조차 알 수 없었던 나발니 시신은 사망 8일만인 지난 24일 가족에게 인계됐다. 현재 나발니의 장례식을 언제, 어디서 진행할지에 대한 다양한 추측이 쏟아지고 있다. 텔레그램 채널 브리프(Brief)는 “푸틴이 국정연설하는 날인 29일 나발니의 장례식이 열릴 수 있으며, 묘지는 (모스크바 외곽인) 보리소프스코예와 코반스코예 등 두 곳이 거론되고 있다”고 전했다.

또다른 텔레그램 채널(VPC-OGPU)은 나발니의 시신을 모스크바로 이송한 것으로 추정되는 영상과 장례식 날짜 및 장소에 대한 정보를 게재했다. 이 매체 역시 장례식 날짜가 29일로 예정됐고, 보리소프스코예에서 실시될 것이라고 전했다. 묫자리는 이미 800만 루블(약 1억1600만원)에 거래됐다고도 했다.

지난해 갑작스러운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한 러시아의 용병조직 바그너의 수장이었던 프리고진의 추모비에 화한이 놓여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해 갑작스러운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한 러시아의 용병조직 바그너의 수장이었던 프리고진의 추모비에 화한이 놓여 있다. EPA=연합뉴스

나발니의 동료이자 반부패재단 대표인 이반 즈다노프는 한 유튜브 채널에서 당국자들이 나발니의 유가족들에게 장례식을 ‘프리고진 스타일’로 진행하라는 압박했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의문의 비행기 추락사를 당한 프리고진의 장례식은 그의 고향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공동묘지에서 비공개로 진행됐다. 철통 보안 속 추모객들 없이 유가족들과 가까운 친지만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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