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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 "헌법에 직업 그만둘 자유"…법조계 "그 자유, 무제한 아니다"

중앙일보

입력

전공의 집단 사직과 관련해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김택우)가 “모든 국민은 직업 선택의 자유를 가진다고 돼 있고, 직업을 그만둘 자유도 포함된다”는 헌법상의 근거를 제시하면서 법적 논쟁에 불을 지폈다. 의협이 불법 파업을 주도하는 등 의료법 위반을 방조·교사한 게 아니며 전공의 개인의 선택이란 취지다. 보건복지부의 업무개시명령 조치에 대해선 “정부는 이미 사직해 직장이 없는 의료인들에게 강제 근로를 교사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건강 직결…정부명령, 과잉금지로 보기 어려워”

주수호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이 21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의협 비대위 정례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주수호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이 21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의협 비대위 정례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법조계에선 기본권이라 하더라도 제한 없이 무한정 허용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국민건강이라는 공적 가치와 균형을 따져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기본권의 한계를 명시한 헌법 제37조 제2항이 있어서다.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헌법학자인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집회·결사의 자유가 있다고 해서 모든 집회가 무제한으로 허용되지 않는 것과 같다”며 “기본권에 대한 제한이 정당한 제한인지, 직업선택의 자유를 주장하는 것이 권리의 남용은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이 문제에선 가장 중요한 기준이 공익적 필요성”이라며 “전공의 집단 사직은 환자들의 생명·건강과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기본권 제한이 불가능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21일 오전 서울경찰청에서 서민민생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빅5' 병원 전공의 사직서 제출과 관련해 김택우 대한의사협회 비대위원장과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을 의료법 위반·유기치사상·업무방해 등 혐의로 고발하기 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1일 오전 서울경찰청에서 서민민생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빅5' 병원 전공의 사직서 제출과 관련해 김택우 대한의사협회 비대위원장과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을 의료법 위반·유기치사상·업무방해 등 혐의로 고발하기 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본권을 제한할 때 뒤따르는 법 원칙에 관해서도 설명했다.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법이 헌법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필요한 과잉금지의 원칙이 대표적이었다. 정부가 의료 현장을 이탈한 전공의들에게 내린 업무개시명령의 ①목적이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공공복리에 비춰 정당한지 ②방법이 효과적이고 적절한지 ③전공의들의 피해(기본권 제한)를 최소화하는 다른 방법은 없었는지 ④법을 통해 보호하려는 공익과 그로 인해 초래되는 불이익을 비교했을 때 보호되는 공익이 크거나 둘 사이가 균형적인지를 따져봐야 한다는 내용이다.

장 교수는 “이 외에도 기본권 침해나 행정 작용이 법률에 근거해야 하고(법률유보원칙),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 등 총 세 가지가 뒤따라야 한다”면서 “의사 수가 지나치게 늘어 전공의들이 직업적 이익을 잃게 되는 것도 무조건 부정할 일은 아니지만, 헌법상 생명권을 포함한 국민 행복추구권이나 의료법 목적인 국민건강의 보호·증진과 경중을 따진다면 후자가 더 중요하다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의대생 2000명 증원, 국민손실이라면 따져봐야” 지적도

'빅5' 병원을 도화선으로 전공의들의 집단사직 확산의 전운이 감돌던 18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 반대 포스터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빅5' 병원을 도화선으로 전공의들의 집단사직 확산의 전운이 감돌던 18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 반대 포스터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반면에 “전가의 보도처럼 정부가 업무개시명령을 제한 없이 할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이라는 견해도 있었다. 서울고법 부장판사 출신인 이범균 변호사는 “정부의 안(案)처럼 의사를 2000명이나 증원했을 때 실질적인 국민적 손실은 어떤지를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며 “만약 정부의 정책이 의료체계를 망가뜨리는 것이라면 그 정책을 강행하기 위해 전공의들을 처벌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직장 상사의 직무가 위법이라면 그 지시에 따랐을 뿐이라 해도 하급자의 직무가 정당화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설명이다.

업무개시명령과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부할 수 없다’는 의료법 59조 제1~3항은 2020년 의사총파업 당시 위헌법률심판이 청구됐지만 각하됐다. 업무개시명령은 정부가 재량권을 행사했을 때 비로소 발생하는 것일 뿐 법 조항 자체가 위헌적이진 않다는 이유 등에서다. 의료법에 대해 잘 아는 또 다른 변호사는 “정부의 설명처럼 의료법이 공공단체와 개인의 관계를 규정한 공법(公法)이라 하더라도 공법상 명령이 항상 적법한 것은 아니다”며 “사실오인이나 평등·비례의원칙 등에 비춰 재량권 일탈·남용이 있었는지 검증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사건 수사 경험이 풍부한 한 법조계 관계자는 “정부와 의사단체가 규범, 즉 옳고 그름의 영역으로만 다투고 있는 양상”이라며 “최후의 수단으로 법리를 따져볼 순 있겠지만 의대정원 증원은 정책적 사안인 만큼, 정책 내용에 대한 논의를 재개하는 게 가장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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