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이병헌도 병적으로 봤다…'주말의 명화' 그리운 당신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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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의 명화’ 그 이후

문화비타민

문화 감수성 업그레이드! 주말이 오기 전 문화부 기자들이 처방해 드리는 ‘비타민’을 섭취하세요. 따끈따끈한 OTT콘텐트와 영화·드라마는 물론, 아이돌부터 K클래식·미술·문학·출판까지. 문화부 기자들이 다양한 예술 장르의 트렌드와 그 뒷얘기를 전합니다. 이번엔 OTT 시대에 영화 편성을 확대한 EBS 이야기입니다. 추억의 시네마 천국은 ‘안방’에 있었습니다.

“조조할인은 우리 차지였었죠이젠 주말의 명화 됐지만 가끔씩 나는 그리워져요” 가수 이문세의 노래 ‘조조할인’(1996) 가사를 단번에 이해했다면 당신도 ‘주말의 명화’ 세대다. ‘주말의 명화’는 MBC에서 1969년부터 2010년까지 41년간 방송한 영화 프로그램이다. 감독 봉준호는 “병적으로 찾아봤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영화감독을 꿈꾸게 한 프로그램”이라고 했고, 배우 이병헌은 “5~6세 때 아버지와 ‘황야의 7인’을 보고, 커서 카우보이가 되겠다고 다짐한 적이 있다”고 추억했다.

과거 TV가 시네마 네트워크 역할을 했다면 지금은 넷플릭스, 티빙, 웨이브, 디즈니플러스, 왓챠 등 OTT가 그 자리를 대체했다. ‘시성비’(시간의 가성비)를 따진다면 언제든, 빨리 감기로도 볼 수 있고 유튜브에선 20분 요약 콘텐트로 줄거리를 파악할 수 있다.

EBS는 추억의 극장 영화부터 세계의 유명 외화까지 고루 선별해 보여준다. 위부터 영화 ‘넘버3’‘용의자’‘까미유 끌로델’‘탑건’. [중앙포토]

EBS는 추억의 극장 영화부터 세계의 유명 외화까지 고루 선별해 보여준다. 위부터 영화 ‘넘버3’‘용의자’‘까미유 끌로델’‘탑건’. [중앙포토]

한국영상자료원이 2022년 유튜브에 올린 ‘세대사이’ 영상에 따르면 70대는 TV로 고전 영화를 시청한다는 반면 10대는 “유튜브나 OTT로 영화를 본다”고 답했다. 세대별로 생각하는 고전 영화도 달라서 50~70대는 좋아하는 고전 영화로 ‘마부’(1961), ‘만추’(1966), ‘얄개 시리즈’(1977, 1982)를 떠올렸고, 20~40대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 ‘넘버3’(1997), ‘살인의 추억’(2003) 등을 꼽았다.

컬처코드연구소와 경희대 K-컬처·스토리콘텐츠연구소가 공동 편저로 엮어낸 『K컬처 트렌드 2024』는 “지금까지 영화가 대중적이고 공동의 경험에 가까운 것이었다면 이제는 사적인 경험이다. 하나의 영화를 다 같이 보고 토론하는 장은 사실상 와해됐다”고 진단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취향 존중 시대에도 EBS는 꾸준히 영화 프로그램을 방송한다. 오히려 편성을 확대해 ‘금요극장’(금 밤 12시50분), ‘세계의 명화’(토 오후 10시35분), ‘일요시네마’(일 오후 1시25분), ‘한국영화특선’(일 오후 10시55분) 등 고정 프로그램 4개를 운영한다. 특히 ‘세계의 명화’는 1995년부터 방영돼 내년에 30주년을 맞는다.

EBS 글로벌콘텐츠팀은 “각 프로그램의 특징을 살리면서도 TV를 우연히 틀었을 때 볼 만한 영화 위주로 선정한다”며 “현재의 삶과 연결성이 있는 캐릭터가 등장하고 스토리텔링의 완결성을 갖춘 영화여야 한다는 공통적인 기준이 중요해졌다”고 설명했다.

‘심야영화관’ ‘토요시네마’를 선보였던 OBS도 기존 고정 프로그램 형태는 아니지만, 주말과 공휴일 등에 편성하는 ‘시네마’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국회방송 등 케이블 채널에서도 종종 영화를 보여준다. 그렇지만 지상파의 특선영화를 비롯한 전체적인 TV 영화 편성은 줄고 있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전문가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영화를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정민아 성결대 교수(영화평론가)는 “훌륭한 영화라도 관객 평점 때문에 선택받지 못하는 현상이 생기고, 어렵게 기회를 잡은 젊은 감독들은 생존을 걱정한다”며 “평점이나 유튜브 리뷰를 보고 영화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경로를 통해 영화에 대한 정보를 취할 수 있어야 한다”고 『K컬처 트렌드 2024』를 통해 강조했다.

취향의 파편화 시대에 내가 몰랐던 취향을 발견하게 하는 것도 TV 영화의 긍정적인 효과다. 제목만 알았던 고전 영화를 EBS 영화 프로그램에서 보고 수업 지도안을 짜는 데 도움을 받았다는 초등학교 선생님 이야기, 1988년 대학 시절 ‘탑건’을 본 아빠와 2022년 ‘탑건: 매버릭’을 본 딸이 EBS에서 방영하는 톰 크루즈의 영화 ‘레인맨’(1989)을 함께 보며 오후를 즐겼다는 SNS 글 등은 EBS 영화 편성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시청 반응이 된다.

EBS 권혁미 팀장은 “가족들이 주말 밤엔 ‘세계의 명화’를 보면서 영화에 얽힌 추억을 나눈다는 SNS 메시지도 봤다. 영화를 통해 세대 간의 소통을 이끌어내고자 했던 기획 의도와 맞아 떨어진 사례들”이라고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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