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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사지로 못 내몬다" 우크라 3040, 부상에도 전장으로 [우크라전 2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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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종종 한국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인터넷 뉴스에 ‘이제 그만 협상하라’는 댓글이 달린 걸 보면 속상합니다. 그 말은 우리에게 ‘러시아에게 먹히라’는 뜻이나 마찬가지니까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출신으로 한국에서 24년째 사는 올레나 쉐겔(43·사진) 한국외국어대 우크라이나어과 교수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의 목표는 현 점령지를 가져가고 (우크라이나에) 친러 정권을 세우는 것으로, 이번에 점령당하면 우크라이나는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며 이처럼 말했다. 쉐겔 교수는 유학을 위해 지난 2001년 한국에 왔고, 수차례 양국 간 회담을 통역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24년째 거주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키이우 출신의 올레나 쉐겔 한국외대 우크라이나어과 교수. 강정현 기자

한국에서 24년째 거주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키이우 출신의 올레나 쉐겔 한국외대 우크라이나어과 교수. 강정현 기자

그는 최근 북·러 간 군사 협력을 언급하며 “한국도 안심해선 안 된다. 우크라이나에선 유럽으로 피란을 갔지만, 삼면이 바다인 한국은 어디로 대피하겠느냐”고도 말했다. 실제 전쟁이 잦아들면 곧바로 조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유럽에 머물고 있다는 그의 부모님 이야기는 6·25 전쟁 당시 휴전선 인근에 터를 잡고 고향으로 돌아갈 날만 기다리던 우리 실향민들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오는 24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2년이 된다. 우크라이나군은 현재 포탄 등 무기 고갈로 개전 이후 가장 위태로운 상황이다. 지난 17일 동부 격전지 아우디이우카를 빼앗겼다. 러시아에 영토 20%를 점령당한 채 휴전선(약 238km)의 약 9배에 이르는 2000㎞의 전선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인들은 여전히 승리하겠다는 투지가 강하다. 참전한 쉐겔 교수의 가족도 두세 차례씩 부상을 겪고도 다시 전장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인터뷰는 이달 초·중순 그의 자택이 있는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두 차례에 걸쳐 진행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유럽 사람들이 지난 17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세계 최대 안보 분야 뮌헨안보회의에서 우크라이나 국기를 들고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유럽 사람들이 지난 17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세계 최대 안보 분야 뮌헨안보회의에서 우크라이나 국기를 들고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키이우에 살던 가족은 지금 어디에 있나.
"70대 부모님 두 분과 30대 여동생과 3세 조카는 프랑스에 머물고 있다. 2년 전 러시아가 침공했을 때 키이우를 빠져나갔다. 부모님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폴란드와 크로아티아에 계셨는데, 지금은 파리로 피란 간 여동생이 보조교사 일자리를 구해 같이 지낸다. 부모님께 한국행을 권했는데 너무 멀다고 못 오시겠다고 한다. 유럽에 있어야 전쟁이 잠잠해질 때 바로 우크라이나에 갈 수 있다면서…. 키이우를 많이 그리워하신다." 
주변에 입대한 사람들이 많은가.
"여동생 남편은 전쟁이 나고 바로 입대해 전선에서 싸우고 있다. 사촌 여동생들의 남편들도 대부분 동·남부 전선에 있다. 2년간 다들 두세번씩은 다쳤는데도 전장으로 돌아갔다. 모두 30~40대인데 '20대 젊은이들을 사지에 내몰 수 없다', '한 번이라도 전투를 경험한 내가 낫다'고 한다. 마음이 아프면서도 고맙다. 의약품을 계속 보내고 있다. 한 번에 수십만 원씩 들지만, 항공 화물로라도 보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지난 14일 우크라이나 남동부 자포리자 지역의 비공개 위치에서 곡사포 발사를 준비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지난 14일 우크라이나 남동부 자포리자 지역의 비공개 위치에서 곡사포 발사를 준비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해 6월 시작한 대반격이 큰 성과를 내지 못한 듯하다.  
"대반격은 장기적인 계획인데, 서방 언론에서 금방 잘될 것처럼 보도한 측면이 있다. 동·남부 전선이 너무 길어 병력과 무기·물자가 많이 부족하다. 대반격 초기엔 서방 지원이 많았는데, 지난해 말부터 무인기(드론)·포탄 등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반면 러시아는 북한·이란에게서 무기를 계속 받고 전시경제 체제를 구축했다. 특히 지난해 9월 동원령을 내렸고, 죄수 용병까지 고용했다. 사촌 동생 남편들 말로는 러시아군은 우리 군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총알받이로 죄수 용병을 내세운다고 한다. 우리 병사들이 방어하기 위해 나서면 위치가 노출되고, 그때 러시아 정예 병사들이 포와 드론으로 공격한다고 한다." 
군납 비리 등이 불거지면서 젤렌스키 대통령에 대한 비판도 커졌다는데.
"부패를 근절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 젤렌스키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 많이 떨어졌다. 안드리 예르막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 젤렌스키 측근이 권력을 남용해 특정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등 부패 의혹을 받고 있어 더 논란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왼쪽)이 지난 9일 발레리 잘루즈니 전 총사령관에게 영웅 메달을 수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왼쪽)이 지난 9일 발레리 잘루즈니 전 총사령관에게 영웅 메달을 수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젤렌스키와 갈등을 빚던 발레리 잘루즈니 총사령관이 최근 해임됐다. 
"잘루즈니는 우크라이나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인물 1위다. 그러면서 정치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말이 나왔고, 젤렌스키와 갈등설이 불거졌다. 둘이 악수하고 껴안으면서 헤어졌지만, 수뇌부 갈등이 다 드러나서 우크라이나에선 이 상황을 안 좋게 보고 있다."
올렉산드르 시르스키 총사령관이 부임했는데, 병사들 반응은.
"두 사람은 매우 다른 스타일이다. 잘루즈니는 병사들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고 무리하게 희생시키지 않지만, 시르스키는 희생하더라도 필요한 작전을 수행한다고 한다. 전선에 있는 친척들은 불안해 하지만, 시르스키가 성과를 낸다면 사기가 올라갈 것이다. 조만간 추가 병력 동원령도 내려질 것이다. 다들 이제는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지난 8일 발레리 잘루즈니 총사령관 해임 이후 새로운 총사령관으로 임명된 올렉산드르 시르스키 지상군 사령관. EPA=연합뉴스

지난 8일 발레리 잘루즈니 총사령관 해임 이후 새로운 총사령관으로 임명된 올렉산드르 시르스키 지상군 사령관. EPA=연합뉴스

전선에서 성과가 생기면 서방 지원이 더 활발해질까. 
"미국 상원에서 80조원 규모의 추가 지원 예산안이 통과돼 다행이다. 그래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젤렌스키가 서유럽을 순방했지만, 분위기가 크게 바뀌진 않을 것 같다. 우크라이나는 11월 예정인 미국 대선을 관심 있게 보고 있다. 종종 인터넷에서 '이제 협상해라', '서방 지원 그만해라' 등 댓글을 보면 속상하다. 그 말은 '러시아에 먹히라'는 의미다. 소련에 70년간 지배당하면서 우리 언어·문화 등을 말살시키는 역사를 겪어봤다. 이번에 점령당하면 우크라이나는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최근 협상을 원한다고 했다.  
"(푸틴의 제안은) 우크라이나 없이 미국하고만 협상하자는 뜻이다. 우크라이나인들은 용납할 수 없다. 러시아는 본토와 크림반도를 연결해 육로 회랑을 만든 점령지를 가져가고, 친러시아 정권을 세우는 게 목표다. 둘 다 수용하기 어렵다. 이렇게 협상한다 해도 러시아가 언제 또 공격할지 모른다. 푸틴이 죽으면 기회가 될 수 있다. 교체 혼란 시기에 유리한 조건으로 휴전 기회가 마련될 수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9월 13일 러시아 극동 아무르 지역의 보스토치니 우주비행장에서 회담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9월 13일 러시아 극동 아무르 지역의 보스토치니 우주비행장에서 회담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전쟁이 장기화할까.
"전쟁이 시작됐을 때부터 우크라이나 국민은 이 전쟁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각오했다. 한국도 안심해선 안 된다. 러시아는 지난해 북한에 무기를 받는 대가로 군사 기술을 준 것으로 보인다. 그때 전쟁 위협을 강하게 느꼈다. 우크라이나에선 유럽으로 피란을 갔지만, 삼면이 바다인 한국은 대피할 곳이 없지 않나. 또 막상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미국과 국제사회가 얼마나 도와줄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2년 전 개전 직후, 집에 대피 가방을 하나 쌌다. 지난해 9월 김정은과 푸틴이 만나 협력하는 것을 보고 차에도 하나 구비했다. 재난 긴급 키트와 생수 등을 넣고, 여권·주민등록증 등 주요 신분증을 복사해놨다. 현금도 달러·유로·엔·원화 등 다양하게 넣어놨다."
개전 초에 비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관심이 많이 줄었다.
"개전 초엔 한국 언론에서 인터뷰를 많이 요청했다. e메일이 500~600개에 달했고, 거리에서 나를 알아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관심이 꺼졌다. 우크라이나에 가지 못하지만 이곳에서 우크라이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주한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반전 시위를 하고, 지난해 말엔 서울에 우크라이나 컬처센터를 세워 우크라이나 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올레나 쉐겔 한국외대 우크라이나어과 교수가 지난달 6일 서울 모처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문화의 밤' 행사에 참석했다. 사진 우크라이나 컬처센터 페이스북

올레나 쉐겔 한국외대 우크라이나어과 교수가 지난달 6일 서울 모처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문화의 밤' 행사에 참석했다. 사진 우크라이나 컬처센터 페이스북

쉐겔 교수는 타라스 셰우첸코 키이우 국립대를 나와 서울대에서 국어국문학 석사, 우크라이나 국립과학원에서 우크라이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6년 한국·우크라이나 정상회담 등 수차례의 정부 간 회담을 통역했고,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이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공생과 이별의 갈림길: 총알이 없는 전쟁(2014)’ 등의 논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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