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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변호사 죽음에 대만이 흐느꼈다…83년생 '희소병 투사' 누구

중앙일보

입력

인권과 장애인 권익을 위해 싸워온 대만 천쥔한 변호사가 11일 세상을 떠났다. 사진 대만 민주진보당 페이스북 캡처.

인권과 장애인 권익을 위해 싸워온 대만 천쥔한 변호사가 11일 세상을 떠났다. 사진 대만 민주진보당 페이스북 캡처.

희소병 환자와 장애인 권익 보호를 위해 앞장서 온 대만의 천쥔한(40) 변호사가 세상을 떠났다.

15일 중앙통신 등 대만 매체들은 천쥔한이 지난 11일 감기로 인한 합병증으로 숨졌다고 보도했다. 전날 갑작스럽게 건강 상태가 나빠진 뒤 응급실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지만 하루 만에 숨을 거뒀다.

1983년생인 천쥔한은 대만에서 '희망의 아이콘'으로 불려왔다. 그는 1살 때 희귀한 유전질환인 척수성 근위축증(SMA) 진단을 받았다. 전신마비로 항상 휠체어에서 특수 조종기를 입에 물고 생활해야 했다. 대학 시절엔 화재로 다리가 절단되는 아픔도 겪었다.

하지만 결코 학업을 포기하지 않았다. 대만 최고학부인 국립대만대학교에 입학해 법학과 회계학을 전공한 그는 2006년 변호사 시험에 수석 합격하고 회계사 자격도 취득했다.

대만 천쥔한 변호사 생전 모습. 사진 대만 중앙연구원법률학연구소 홈페이지 캡처.

대만 천쥔한 변호사 생전 모습. 사진 대만 중앙연구원법률학연구소 홈페이지 캡처.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 로스쿨을 거쳐 미시간대에서 법학 박사 학위까지 취득했다. 미국에서 치료받을 기회를 얻었지만 천쥔한은 대만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환자들을 위해 활동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귀국 이후 대만 중앙연구원법률학연구소에서 국제법·국제인권법 등을 연구하면서 장애인을 위한 정책 마련에 노력했다.

특히 그는 SMA 환자들이 수억 원대에 달하는 치료제 비용을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현실을 비판했다. 국민건강보험 측이 치료제 3종을 급여 대상에 포함했지만 지급요건이 까다롭다는 점을 비판했다. 비싼 돈을 내고 치료제를 쓴 뒤에 한 푼도 돌려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천쥔한의 노력으로 국민건강보험 측은 현재 고가의 치료제를 직접 구매해 각 병원에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대만 총통 선거 유세 활동 당시 천쥔한 변호사. 사진 대만 민주진보당 홈페이지 캡처.

대만 총통 선거 유세 활동 당시 천쥔한 변호사. 사진 대만 민주진보당 홈페이지 캡처.

정계에도 뛰어들었다. 민진당은 지난해 천쥔한을 입법위원 선거 전국부분구(비례) 후보 16번으로 공천했다. 당시 라이칭더 총통 선거 후보는 “아픔을 딛고 기적을 일으켰다”고 평가하면서 “민진당이 시민 사회와 연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공천 이유를 설명했다. 다만 민진당은 입법위원 선거에서 득표율 36.16%로 13석을 확보하는 데 그쳐 천쥔한의 입법원(국회) 입성은 물거품 됐다.

천쥔한의 곁에는 늘 어머니가 있었다. 천쥔한은 어머니 없인 책장 한장도 넘길 수 없었다. 지속된 병원 생활로 몸과 마음이 지친 천쥔한이 “더는 버틸 수 없다”는 쪽지를 남겼을 때도 그에게 삶의 의지를 일깨워줬다. 아들을 위해 미국과 일본 각지를 돌아다니며 치료제와 병원을 찾았다. 대학 시절 화재 사고로 두 다리마저 잃고 인공호흡기 없이는 한숨도 잘 수 없는 아들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지켜왔다.

대만 천쥔한 변호사와 그의 어머니(왼쪽) 모습. 사진 샤오메이친 부총통 당선인 페이스북

대만 천쥔한 변호사와 그의 어머니(왼쪽) 모습. 사진 샤오메이친 부총통 당선인 페이스북

명절인 춘제 기간 전해진 부고 소식에 대만 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민진당 라이칭더 총통 당선인은 “희소병에도 포기하지 않은 용감한 투사”라고 평가하면서 “우리 사회가 그의 정신을 기억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중당 커원저 주석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그동안의 노력에 감사하며 법 개정을 통해 희소병 환자와 장애인 권리 보호를 실천하겠다”고 밝혔다. 국민당도 “소외 계층을 위한 목소리를 냈던 천쥔한의 정신이 영원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성명을 냈다. 천쥔한의 소셜미디어 계정 마지막 게시물엔 조의를 표하는 누리꾼들의 댓글이 이어졌다.

천쥔한의 장례식은 유족 뜻에 따라 조용히 치러졌다. 천쥔한의 어머니는 “조용히 이별할 수 있도록 취재는 자제 부탁드린다”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알렸다. 천쥔한은 16일 신주현 생명기념공원에서 영원한 안식을 얻었다. 그의 마지막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오는 27일 공개 추도식이 거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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